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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 부두, 부덱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3) 부들밭골, 부두밭골, 부덱, 부데기

by 이무완

부들이 많은 골짜기라고?

≪동해시 지명지≫(동해문화원, 2017)를 보면 ‘부두밭골/부들밭골’이라는 땅이름을 쓰는 데가 두 곳이다. 삼화동 부두밭골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석회석 채석장으로 40여 년 골짜기를 파헤치고 산을 허물어낸 까닭이다. 지금은 ‘무릉별유천지’라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동해시 지명지≫ 설명을 보자.


부두밭골/ 부들밭골 본말 뒤켠 서쪽으로 난 골짜기. 마을 서낭당이 있는 곳이다.(어달동, 91쪽)


부두밭골/ 부들밭골 구 삼화사 뒷골에서 쇳돌굴 밑까지의 골짜기. 수분이 많은 곳이라 부들(자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풀의 한 종류)이 많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곳 위쪽에 고분이 많아 많은 유물들이 1977년에 삼화사를 이전할 때 발굴되었다. 현재 채석장이다.(삼화동, 211쪽)


부들이 많이 자라서 부들밭골이 되었다고 한다. 말 짜임을 보면 ‘부두(부들)+밭+골’이다. 부들이 많이 자라서 ‘부들밭골/부두밭골’이 되었다는 말이다. 지역말로 보면 ‘부들’은 [부둘]처럼 소리내기도 하거니와 배달말에서 홀소리 바뀜이야 꽤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미심쩍은 마음이 든다. 부들은 어떤 곳에서 잘 자라나.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부들’을 찾으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들목 부들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연못가, 낮은 지대의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가운데 줄임) 우리나라 전역에 나며 유라시아 온대 및 아열대, 호주 등에 분포한다.(뒤 줄임)


부들은 물이 흔한 데서 잘 자란다. 옛사람들은 부들 잎과 줄기를 잘라 돗자리나 멍석, 부채를 매거나 짚신을 삼고 도롱이를 엮었다. 부두밭골은 과연 부들이 잘 자랄 만한 곳인가 보자. ≪조선지형도≫를 보면, 두 곳 모두 골짜기라고 했지만 물이 고이기는커녕 흘러내리기 바쁜 산등성이다.

부두밭골.jpg 부두밭골/부들밭골 (앞: 삼화동 부들밭골, 뒤: 어달동 부들밭골, 지도출처: 조선지형도(1916~1917))

삼화동 부두밭골은 “구 삼화사 뒷골에서 쇳돌굴 밑까지의 골짜기”다. 이때 쇳돌굴은 일제강점기에 자철석을 캐려고 뚫은 굴인데 “구 삼화사 뒷산의 높은 봉우리 기슭”(동해시 지명지, 211쪽)이다. 1977년 쌍용양회(현 쌍용C&E)가 부두밭골을 비롯한 옛 삼화사 뒷골을 석회석 채굴장으로 삼으면서 삼화사가 무릉계곡 안쪽으로 옮겨가고 40여 년 석회석을 캐냈다. 지금은 폐광산인데 호수로, 정원으로, 전망대로 바꿔 관광지로 바꿔놓았다. 어달동 부두밭골이라고 다르지 않다. 잿마루(담벵이재)에서 어달마을로 내려가는 산중턱으로 부들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물가도 아닌 곳에 부들이 많이 자랐다는 설명은 암만 봐도 어색하고 게으르다.

청옥호.JPG 석회석을 캐내고 생긴 곳에 물이 고여 생겨난 호수(무릉별유천지)

불 댄 밭, 부대기, 부데기

1926년 11월 29일치 ≪조선일보≫ 2면 <생계가 망연한 평남일대 화전민 > 기사를 보면, ‘부대기 농사, 부대기 농토’라는 말이 나온다. 또 1965년 11월 15일치 ≪동아일보≫ 4면 <이성계(231)>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볼 수 있다.


비록 이 늙은 것도 마수령 속에서 부데기를 일으켜 두더지 모양 땅을 파먹고 산다 해도 햇빛을 싫어하는 두더지는 아니오이다. 나도 어느 땐가는 밝은 햇빛을 보고 싶어하는 고려왕조의 백성이라오.


‘부대기’는 뭐고, ‘부데기를 일으켜 두더지 모양 땅을 파먹고 산다’는 말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맥락으로 보면 산골짝 불 댄 땅을 일구어 짓는 농사를 말한다. 우리 입에 익은 말은 ‘화전(火田)’이다. 마침 동해와 삼척 말에 ‘부덱(이)/부데기’이 있다. ‘부덱(이)’은 불을 질러 일군 밭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불 댄 땅에서 짓는 농사를 말하기도 한다. ‘부덱밭’이란 말은 사전에 없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대밭’이 흔적처럼 남았다. ‘부대밭’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농업] 주로 산에 있는 초목에 불을 지르고 그 자리를 파 일구어 농사를 짓는 밭”으로 나온다. 부지깽이, 부젓가락, 부삽, 부집게, 부싯돌 같은 말에서 보듯 부대밭은 ‘불댄밭’에서 받침소리가 떨어지면서 ‘부대밭’이 되었으리라.

지역말 ‘부덱(이)/부댁(이)’는 ‘불덴/불댄’에 이름씨 만드는 뒷가지 ‘-이’가 붙여 ‘부덱이/부데기/부댁이/부대기’ 꼴로 바뀐 듯하다. 그래서 말인데, 부두밭골은 ‘부들’이 아니라 ‘화전’과 관련한 땅이름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 땅 70퍼센트가 산지 아닌가. '부덱(이)/부댁(이)'으로 밭을 일구던 골이라서 ‘부덱밭골/부댁밭골’이라고 했다가 소리바꿈으로 ‘부들밭골/부두밭골’ 같은 땅이름을 지어내었으리라.

부대기와 부데기.jpg 1926년 11월 29일치 <조선일보>에 화전(火田)을 '부대기'로 쓴 대목이 보인다.


부두밭은 산밭이다

물론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국토교통부 ‘디지털트윈국토’에서 ‘부두골’을 찾으면 스물일곱 곳, ‘부들골’이 두 곳이다. 공통점을 들라면 모두 산지다. 이는 부들골이나 부두골이 ‘부들’이라는 물가에서 자라는 풀하고는 그다지 얽힘이 없다는 반증 아니겠나.

산(불, 부리)을 가리키는 옛말에 ‘붇’이 있다. 산(붇)에 있는 밭이라면 ‘붇+으(의)+밭’이나 ‘붇+어(의)+밭’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사잇소리인 [으]나 [아/어]는 매김토씨 ‘의’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소리내면서 나타난 꼴이라고 하겠다. 글자로 엄밀하게 받아적던 때가 아니고 대개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땅이름이기에 닳고 닳으면서 말이 둥그러지게 마련이다. 이런 땅이름은 대개 말로만 전해올 뿐 문자로 받아적을 때는 본디 말밑이 무엇인지 흐릿해진 다음일 때가 많다. 또, 배달말을 한자로 적으면서 한번 뒤틀리고 다시 한자 땅이름을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귀에 들리는 대로 입으로 전하면서 거듭 뒤틀리면서 본디 말밑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땅이름은 차고 넘친다.

부들밭과부두밭.png

[부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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