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과 손돌목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9) 손목, 손돌목, 솗다, 솔디기판, 속소리

by 이무완

손목, 섬과 섬 사이에 있는 목

앞섬에서 농경지를 가로지르던 다리 아래쪽 일대를 가리킨다. 웃섬과 개안, 아랫섬으로 통하는 분기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동쪽은 아랫섬, 서쪽은 땅끝, 북쪽은 앞섬, 남쪽은 웃섬에 접해 있다. 손목은 ‘섬에 있는 목’이라는 뜻의 섬목에서 변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321쪽)


지금은 동해항에 들어가 옛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송정동 전천에 있던 ‘손목’을 설명한 대목이다. ≪동해시 지명지≫(2017)는 ‘섬에 있는 목’이라고 해서 ‘섬목’이라고 했다가 소리바꿈으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보았다. 정말 그럴까. 지금으로선 어떤 곳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917년에 나온 ≪조선지형도≫를 보자.

≪조선지형도≫(1917)로 짐작해본 손목의 위치

손목은 이름에서 보듯 ‘손+목’ 짜임새다. 뒤엣말 ‘목’은 나들목, 건널목, 노루목, 잘루목, 바람목 같은 말에서 보듯,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엣말 ‘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있다. ≪동해시 지명지≫는 ‘섬→ 손’으로 바뀌었다고 별다른 설명 없이 말해 놓았다. ‘승내다(성내다)’, ‘승질머리(성질머리) 같은 지역말 버릇으로 보면, ‘섬’은 [손]보다 [슴]으로 소리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섬’에서 훌쩍 뛰어 ‘손’으로 소리바꿈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솔’은 ‘너르다’의 반대말인 ‘솔다’의 말줄기로 보는 해석이 한결 타당하다. 폭이나 자리가 ‘좁다’고 할 때 ‘솔다’고 하는데, 동해ㆍ삼척에서는 ‘소잡다, 솗다’고 했다. 졸참나무를 ‘속소리나무’라고 하거나 적은 돈을 걸고 하는 내기판을 솔디기판, 속닥판, 송사리판이라고 했는데, 모두 ‘솔다’에서 비롯한 말로 볼 수 있다.


손돌과 손돌목

말 만듦새로 보건대 ‘손목’은 경기도 김포시와 강화군 사이에 있는 ‘손돌목’과 거의 같다. 물론 손돌목은 뱃사공 손돌의 억울한 죽음이 얽힌 곳이라고들 전하기 때문에 손돌이 죽은 여울이라서 붙여진 땅이름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다들 알겠지만 그 이야기 졸가리만 들어보겠다.


고려 때 강화로 피난을 가던 임금이 탄 배의 사공인 손돌이 풍파를 피하여 가자고 하다가 의심을 받고 억울하게 죽었다. 그 후로 음력 10월 20일 무렵이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를 손돌바람이라 하게 되었으며, 그가 죽은 여울목을 손돌목이라 하게 되었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손돌전설’)


듣자니 경기도 김포시에서는 손돌이 죽은 날을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심지어 덕포진 언덕엔 무덤까지 그럴싸하게 써놓았다. 하지만 손돌목은 ‘손돌’은 성이 손(孫) 씨인 ‘돌(乭)’이라는 뱃사공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유학자 이승희(1847∼1916)는 ≪한계유록≫(1914) <강화일기>에서 고려 고종이 강화에 들어온 때는 음력 7월로 음력 10월에 손돌이 모는 배를 탔을 리 없다고 하면서, 이때 “착(窄)은 ‘손’으로 읽고 량(梁)은 ‘돌목(석항)’으로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15세기 자료인 ≪용비어천가≫에 보면, 왜적이 강화도에 쳐들어와 전함을 불지르며 기세를 올린 일을 적으면서 ‘착량(窄梁)’이라고 쓰고 ‘:손·돌’이라고 읽을 수 있다고 해석을 달아놨다. 착량(손돌목)은 “강화부에서 남쪽으로 30리쯤에 있다(窄梁 在今江華府南三十里許)”고 말한다. ‘량(梁)’은 ‘돌 량’으로 새기는데, ‘돌(石)’이 아니라 좁고 작은 개울을 뜻하는 ‘도랑’이나 물이 흘러 들어오거나 나가는 어귀인 ‘물목’을 뜻한다. 울돌목, 손돌목, 노돌목(명량)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손목, 좁은 목

‘손돌’도 사람 이름이 아니라 뭍과 섬 사이에 있는 좁다란 물목을 가리키는 ‘착량(窄梁)’이라고 했다. 손돌목은 좁아든 바닷목이다. 본디 솔목이나 솔돌목이라고 하다가 손돌목으로 되었으리라. 같은 맥락에서 손목도 손돌목과 어금지금한 말로 보아야 한다. 솔은 목이라고 해서 ‘솔목’이라고 하다가 소리바꿈으로 ‘손목’이 되었다.

배달말 한입 더

굽잇길 굽이진 길.

까막길 까마득하게 먼 길.

낭길 낭떠러지를 끼고 난 길.

사릿길 사리를 지어 놓은 것처럼 구불구불한 길.

생길(生길) 길이 없던 곳에 처음으로 낸 길.

오솔길 폭이 좁은 호젓한 길.

한길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넓은 길. ≒큰길

지돌잇길 험한 벼랑에서 바위 같은 것에 등을 대고 겨우 돌아가게 된 길.

지름길 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

에움길 굽은 길. 또는 에워서 돌아가는 길.

곱길 두 곱이나 걸리는 길. 또는 거리가 두 곱이나 되는 길.

돌길 돌아가는 길.

돌림길 곧장 가지 않고 멀리 피하여 가는 길.

토막길 원줄기에서 몇 갈래로 갈라져 나온 짤막한 길.

눈구멍길 눈이 많이 쌓인 가운데의 길.

생눈길 생눈판인 길. 또는 아무도 가지 아니한 생눈판에 처음으로 내는 길. ≒숫눈길

확길 (지역말) 생눈을 지나간 자국이 마치 디딜방아 확과 같이 파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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