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8) 솔골, 솔미산, 송곡, 송미산
소나무가 흔한 골짜기
‘솔골’은 흔히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나 마을로 생각한다. 자연스런 귀결로 한자로 쓸 때는 송곡(松谷)으로 뒤쳐 말한다. 동해시에는 솔골이 두 곳이다. ≪동해시 지명지≫(2017)를 보자.
솔골/송곡 (동해)중앙등학교가 있는 곳 일대의 골짜기로서, 진골 입구가 된다. 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인데, 송골은 한자 松에 ‘골’이 덧붙은 것이다.(268쪽)
솔골/솔이골 광희고등학교 뒤에 있는 조그마한 골짜기로서 객당 아래쪽이 된다.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한자로는 松谷으로 적는다.(289쪽)
눈길을 돌려 동해시 서쪽인 비천동과 달방동에 가면 ‘솔미산’이 있다. 산이 ‘소나무 형상’이라서, ‘소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싶다.
솔미산 매봉산에서 남서쪽으로 남면치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산. 이 산은 비천동과 신흥동, 그리고 강릉시 옥계면의 분기점 역할을 한다. 산이 소나무 형상을 하고 있어 ‘솔’에 산을 뜻하는 ‘뫼’가 붙어 이것이 솔미로 변천하였고, 다시 여기에 山이 덧붙은 것으로 추정한다.(141쪽)
솔미산/송미산(松美山) 아랫달방의 서쪽에 위치한 산. 경도 129도 위도 37도 29분에 위치한 산이다. 솔미산은 원래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솔+뫼’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것이 음 변화하여 ‘솔미’가 되었고 한자어 山이 덧붙은 것이 솔미산이다. 솔미산은 종종 ㄹ음을 탈락시켜 소미산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한자 지명으로는 송미산이라 한다. 예전에 산 정상에 헬기장이 있었다.(169쪽)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라서 솔골이라고 하는 데야 다른 말을 해봐야 군말일 뿐이다. 그렇지만 소나무와 아무 상관없이 [솔] 소리 탓에 ‘소나무’와 얽은 유래도 꽤 많다.
땅이름에서 보는 ‘솔’은 크게 세 가지 뜻으로 본다.
첫 번째는 소나무를 가리키는 ‘솔’이다. 옛기록을 보면 솔, 소나모, 소나ᇚ으로 적었다. 이때 ‘솔’을 산 꼭대기를 뜻하는 ‘수리’로 보아 소나무는 산 정상 부근에서 자라거나 높이 자라는 나무라는 해석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가늘고 뾰죽한 잎이 달리는 나무라서 ‘솔’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말밑이 흐리터분하긴 해도 솔밭, 솔버덩, 솔수펑이, 솔잎, 솔가리 따위 말에서 쓴 ‘솔’은 ‘소나무’를 말한다. 솔골이나 솔뫼에서 ‘솔’을 ‘소나무’로 보면 얼마든지 송곡이나 송미산처럼 쓸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높은 곳, 맨 꼭대기를 가리키는 고구려말 ‘수리’에서 생겨난 ‘솔’일 수도 있다. ‘수리’가 땅이름에서는 사리, 살, 서리, 설, 소리, 솔, 소래, 소루, 시르, 시루, 술, 싸리 따위로 바뀌면서 언뜻 보아서는 본래 뜻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높은 데 있는 마을이나 높은 산으로 해석해볼 여지가 있지만 솔골이나 솔미산 앉음새로 보면 이렇게 보긴 어렵다.
세 번째는 ‘솔’을 좁다, 뾰죽하다, 가늘다, 작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솔길, 솔바람, 솔곶(송곳의 옛말)에서 ‘솔’은 모두 좁다, 가늘다, 뾰족하다, 작다는 뜻으로 썼다. 솔내, 솔고개도 소나무와 별 상관 없이 좁다란 내, 좁다란 고개라서 붙인 이름일 수 있다. 강화도 불은면 덕성리와 김포시 대곶면 송마리 사이에 ‘손돌목’이라는 여울이 있다. 폭이 좁아 물살이 세찬데다 숨은바위가 많은 물목이다. ≪용비어천가≫에 ‘손돌(窄梁ㆍ착량)’으로 나오는데 한자를 풀면 ‘좁은 도랑’이다. 따라서 ‘손돌’은 ‘좁은 목’이라서 ‘솔돌’이라고 하다가 ‘손돌’로 소리바꿈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땅 곳곳에 있는 솔섬은 어떤가. 한자로는 송도(松島)로 쓰는데 정말 소나무가 많은 섬이라서 솔섬일까? 그보다는 작은 섬이라서 솔섬이란 이름을 얻었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땅 모양새로 보면 솔골(송곡, 송골)은 골이 가느다랗고 좁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보아야 옳다. 솔미산(송미산)은 ‘솔+뫼’로 볼 수 있는데, ‘솔뫼’는 솔게 뻗은 산이거나 둘레에 있는 큰 산에 견줘 작은 뫼라서 붙인 이름일 수 있다. 그림씨 ‘솔다’에서 ‘솔’은 가늘고 좁다, 작다는 말이다. 지금도 ‘너르다’의 반대말로 ‘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테면, 소매가 솔다, 솔아 빠진 방, 자리가 솔다고 했다.
비천동 솔미산은 매봉산(604.8m) 줄기가 남면치와 큰빈내 사이로 길다랗게 흐르다가 멈칫한 산(560m)이라고 한다면, 달방동 솔미산(495m)은 달반니산(달팽이산, 600m)과 소말산(607m) 사이로 산줄기가 길쭘하니 삐져 나온 낮은 산이다. ‘솔뫼’가 ‘솔미’가 되면서 ‘산’이라는 뜻이 흐리터분해지자 ‘솔미산’이 된다. 더욱이 ‘솔다’는 ‘솔아, 소니, 소오’처럼 씨끝바꿈을 하기 때문에 ‘소미산’과 같은 이름이 얼마든지 생겨날 법하다. 그리고 한자로 적으면서 ‘송미산’으로 둔갑했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말에는 말밑이 흐리터분해지면서 본디 뜻에서 빗나간 땅이름이 적지 않다. 솔골, 솔뫼, 솔내, 솔섬 같은 땅이름이 똑 그렇다. ‘솔’이란 소리가 우리에게는 소나무를 가리키는 ‘솔’과 겹치는 데다 소나무는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친숙한 나무여서 ‘솔’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소나무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바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솔바람’을 찾으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으로, 다른 하나는 ‘소슬(蕭瑟)바람’과 어슷한 말로 “가을에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며 부는 으스스한 바람”으로 뜻매김해놓았다. 그런데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솔바람일까 하는 물음이 인다. 어찌씨에 ‘솔솔’이 있다. 틈이나 구멍에서 조금씩 가볍게 새어나오는 모양이나 바람이 보드랍게 부는 모양, 가는 비나 눈이 잇따라 가볍게 내리는 모양, 냄새나 가는 연기 따위가 가볍게 풍기거나 피어오르는 모양 따위를 말한다. 그리고 ‘솔솔바람’은 “부드럽고 가볍게 계속 부는 바람”이라고 했다. 내 생각이지만 솔바람은 솔솔바람과 비슷한, 가느다란 바람 줄기가 이어지듯 불어서 솔바람이지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으로 보는 뜻매김은 억지스럽다.
솔쟁이 소루쟁이의 다른 이름. 소루쟁이는 ≪향약채취월령≫에 ‘소을곶(所乙串)’이 말밑이다. 솔곶>솔옷>소로쟝이>소루쟁이>소리쟁이로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뿌리가 송곳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으로 본다. 더러 씨가 여물면 ‘소리’가 난다고 해서 소리쟁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리의 옛말은 ‘소라ᆡ’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라ᆡ에서 ‘솔옷’이 나오긴 어렵다.
솔봉이 나이가 어리고 촌스러운 티를 벗지 못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