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골, 새능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51) 능골, 새능골, 논골, 논산, 논현

by 이무완

능골, 능이 있었다

흔한 땅이름으로 ‘능골, 능말’이 있다. 한자로는 능동(陵洞)이나 능곡(陵谷)이다. 이런 마을에는 판박이처럼 아무개 능이 있었다는 유래가 달린다. 다음을 보자.


능곡동은 능터가 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묘를 이 마을에 쓰려다가 지금의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 예장하였는데, 그 후부터 능터를 잡았던 곳이라 하여 ‘능골’이라 하였다. 능골이 능곡으로 불리다가 능곡동이 되었다.(디지털시흥문화대전 능곡동)


서울 성북구 정릉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 즉 정릉을 품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그 이전의 지명은 사을한리(沙乙閑里)였는데 이는 우리말의 ‘살한이’를 한자 음으로 옮긴 것으로 사을한리는 다시 사아리로 약칭되기도 했지만, 신덕왕후의 정릉이 이곳에 옮겨지면서 ‘능말’, 즉 능동(陵洞)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지역N문화 정릉동)


여간한 무덤을 가리켜 ‘능’이라고 하지 않는다. 임금이나 왕비, 그도 아니면 방귀깨나 뀌던 사람이 무덤 임자쯤 되어야 하고 그게 역사 사실로 뒷받침될 때, 누구도 그게 아니라고 토 달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날 여기에 큰 무덤이 있었다거나 어느 임금이 무덤을 쓰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거나 하는, 흐리터분한 유래를 전하는 땅이름은 대개 뒷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때가 많다.


여기에 능이 있었다고?

동해시 동호동에 ‘능골’이 있다. ‘새능골’이라고도 한다. ≪동해시 지명지≫(2017)를 보자.


논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능이 새로 생긴 골짜기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인데, 밭에서 지금도 기와 조각이 발견된다.(112쪽)


딴 이름으로 논골 아래에 새로 능이 생겼다고 했고 ‘새능골’이라고 했고, 능(무덤)이 있어서 ‘능골’이라고 했다는 설명은 지나치게 게으르고 허술하다. 나름 근거로 ‘기와 조각’을 들었다. 하지만 능을 언제 어느 자리에 썼는지, 그게 누구 무덤인지 답하지 않는다. 더욱이 능과 기와 조각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람. 기와가 있으니 그 자리가 집터라거나 절터라면 한다면 몰라도 기와 조각이 있으니 능이 있었다는 말은 어처구니없다.

암만 그래도 ‘능골’은 무덤 때문에 생겨난 땅이름이 아니다. 내 보기에 ‘능’은 산자락이 길게 늘어졌다고 해서 ‘능골’이 되었다. 새능골은 ‘새로 능이 생겨난 골’이 아니라 산줄기 사이로 늘어진 데라서 ‘사이능골’이라고 했다가 ‘새능골’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산줄기가 길게 늘어진 곳이라고 해서 ‘늘골(늘+골)’이나 ‘는골’이라고 하다가 ‘는골>능골>논골’로 소리 바뀜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우리 땅은 산이 많고 자연히 산줄기가 들이나 바다로 늘어진 데가 많다. 그 흔적들이 늘뫼, 느릅재, 느랏재, 논산, 논노개(논현) 같은 땅이름으로 남았다. 묵호등대가 있는 마을인 논골이나 능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인 ‘논골’이나 모두 산줄기가 느릿하게 늘어진 곳이다.

이쯤 쓰고 나니 좀스럽게 이딴 말밑이나 시시콜콜 따지고 앉았냐고 나무라는 말이 들리는 듯도 하다. 틀린 말 아니다. 다만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는 이런 자그마한 이야기라도 제대로 알려 줄 의무가 있다, 어른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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