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바위와 개자리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56) 구석말, 개자리, 거북, 가장자리

by 이무완

[일러두기] ‘가ᇫ’이나 ‘’처럼 붉고 굵게 쓴 글자는 아래아(ㆍ)로 홀소리를 적은 글자다.


구석, 거북바위가 되다

≪동해시 지명지≫(2017)에 ‘구석말’이 나온다. ‘구석’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잘 드러나지 않는 귀퉁이 같은 데를 떠올린다. 구석말은 구석진 데 있는 마을로 생각할 법한데, ≪동해시 지명지≫는 ‘후미진 데 있는 마을’이 아니라 ‘거북 바위가 있는 마을’로 설명한다. 그대로 옮겨본다.


동해공업고등학교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풀미골 어구에 있는 마을로서, 거북 모양의 바위 즉, 구암(龜岩)을 일명 구석(龜石)이라 한 데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구석(龜石)’에 ‘마을’이 결합하여 생긴 이름이다.(50쪽)


사람 이름이고 땅이름이고 좋은 뜻을 담으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 ‘구석말’도 소리가 어금지금한 거북 구(龜) 자를 써서 거북과 얽어 놓았지만, 내 보기엔 소리나는 대로 ‘구석에 있는 마을’로 뒤쳐 생각함이 옳다.

구석말.jpg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망상동 '구석말' (지도출처: 국토정보지리원)


장수와 행운을 상징하는 거북

‘구석’을 거북 바위 이야기로 얽어놓는 데는 우리 조상들이 용, 봉황과 함께 거북을 매우 상서로운 동물로 보아온 우리 정서와 관련이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평안남도 대안시 강서대묘 벽화에 거북과 뱀을 섞어놓은 듯 ‘현무’를 그렸다. ≪예기≫에 ‘현무는 거북’이라고 했고, 북쪽을 다스리는 신령스런 존재로 보았다. ≪물명고≫(유희, 1820)에는 등딱지 안으로 머리와 꼬리, 발 넷을 숨길 수 있다고 해서 ‘장륙’이라고 했고, 거북, 거복, 남성(南星)이라고도 했다. ≪삼국유사≫ <구지가>와 <해가사>에도 거북이 나오고, 고주몽 이야기나 바리공주 이야기에도 나온다. 그만큼 옛 사람들은 거북을 친근하면서도 신령스런 동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구암, 구석, 구미(龜尾), 구산(龜山), 구포(龜浦), 구천(龜川) 같은 우리 땅 곳곳에 ‘거북’이 들어있다. 거북의 옛말은 ‘거붑’이다. 거북은 ‘’('ㅏ'는 아래 아(•)임)에서 말미암은 말로 짐작한다. 이 말이 ‘거미ㆍ거무ㆍ검ㆍ거붑’ 따위로 바뀌는데, ‘붑’에서 [ㅂ] 소리가 거듭 나는 까닭에 ‘거북’으로 바뀐다.

구숙리.jpg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개자리'(가좌동, 구숙리)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구석에 있는 마을, 구숙리

말난 김에 강릉시 성산면에 ‘가좌리’라는 데가 있다. 백여 년 전 ≪조선지형도≫(1917)에는 ‘구숙리’로 적었다. 구숙동이 가좌리로 둔갑한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마을로 내려오는 산줄기의 모습이 마치 ‘개가 누워 자는 형국(狗宿形)’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개자리는 가좌리[可坐里]라고도 하는데, 마을에 많이 살고 있는 강릉 김씨들이 개자리는 어감이 좋지 않고, 또 개가 누워 있는 형국이어서 마을이 번성하지 못한다고 하여 ‘가히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으로 고쳐 쓰고 있다.(디지털강릉문화대전 ‘개자리’)


≪조선지지자료≫엔 ‘狗宿洞(구숙동)/자리’(강릉 성산면 관음리)로 나온다. ‘개자리’는 [가+에+자리]로 쪼갤 수 있다. 이때 ‘개’는 ‘犬(견)’과 ‘狗 (구)’의 새김인 ‘가히’가 아니라 ‘가장자리’는 ‘가ᇫ’이라고 했다. 물가, 냇가, 바닷가, 길가에서 보는 뒷가지 ‘가’다. 개의 옛말은 ‘가히’다. 지금도 나이깨나 있는 어른들은 개는 ‘가히’, 강아지는 ‘가ㆁ지’라고 한다. ‘개자리’는 [가ᇫ+에+자리]가 ‘가에자리→ 게자리→ 개자리’로 바뀌어온 듯하다. 이 말을 구실아치가 ‘가히자리’로 잘못 알아듣고 ‘개가 자는 마을’로 ‘창씨개명’하듯 둔갑시킨 셈이다. 뒷날 ‘가좌리’로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가히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으로 고쳤다지만, 그 밑바닥엔 ‘가좌리’가 ‘개자리’가 아닌 ‘가ᇫ(에)자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마을 앉음새도 그렇고, ‘구숙’은 후미진 자리를 가리키는 ‘구석’과 소리로 보면 어금지금한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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