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병원다움을 잃어가는 순간
“요즘은 피부과에서 염증 치료도 잘 안 해요.”
지인의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겪고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었다. 며칠 전 얼굴에 생긴 염증으로 동네 피부과를 찾았고, 통증과 가려움으로 인해 빠른 처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병원에 들어선 순간, 내가 생각한 ‘진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기실은 붉은 조명을 받은 듯한 미용 광고와 안내문으로 가득했고, 창구 앞에는 주름 개선, 잡티 제거, 리프팅 시술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붉게 부어오른 내 얼굴을 문질러가며 순번을 기다리던 나는, 진료실에 들어서서 “염증 치료를 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요즘은 이런 간단한 염증 치료는 안 해요. 미용 시술 위주라…”
심지어 다른 병원을 권유받았고, 진료는커녕 증상에 대한 질문 한마디 없이 돌아서야 했다. 순간, 내가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술 클리닉’에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미용 시술이 아닌, 피부 염증 치료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건 하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병원은 이제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물론 외모 관리와 피부 미용을 위한 의료적 접근은 필요하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피부과는 특성상 피부 질환뿐 아니라 미용 목적의 시술 수요도 높다. 그러나 문제는 이 미용이 병원의 주가 되어버렸고, 치료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현실이다.
최근 피부과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미용 시술은 단시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고, 예약제 운영도 용이하다. 반면, 여드름이나 습진, 접촉성 피부염 등 기본적인 피부 질환은 수가가 낮고 시간 대비 수익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일부 병원은 “진료는 주 1~2회만”, “미용이 아니면 대학병원으로”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병원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병원은 본래 ‘치료’의 공간이다. 단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공공성과 윤리를 지닌 공간이다. 단기적 수익을 위해 치료 기능이 축소되거나 외면된다면, 병원은 더 이상 병원이 아닌 셈이다.
더불어 피부질환은 외형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개인의 일상과 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가벼운 증상’으로 취급하기엔 그 고통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건 저희가 안 해요”라는 한마디로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은, 단지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치료받을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료계 내부의 자성도 필요하다. 미용 진료가 병원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생존이 본질을 잊는 생존이라면, 그것은 결국 의료의 신뢰를 갉아먹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치료와 미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공공성과 시장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병원이 병원다워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리는 시대다. 치료가 중심이 되는 진료 문화, 의료의 본질을 지키는 병원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기대하는 의료의 모습일 것이다.
당신은 최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기억이 있는가?
혹시 병원에서 ‘돌봄’ 대신 ‘상품’을 권유받지는 않았는가?
이 질문에 망설임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의료의 방향을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