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의 시대, 글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가

by 윤수호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시대다. 사람들은 늘 바쁘고, 콘텐츠는 점점 짧아진다. ‘빨리’, ‘간단히’, ‘요약해서’는 이제 콘텐츠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생존 전략이 되었다. 숏폼과 릴스는 이를 정면으로 대변한다. 몇 초 안에 주목을 끌지 못하면 사라지고, 다음 화면으로 넘겨진다. 더 자극적인 장면, 더 강렬한 편집, 더 웃기거나 충격적인 장치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글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길고 무거운 책은 점점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서점에 나란히 진열된 두꺼운 문학 전집보다, 스마트폰 안에서 스크롤 한 번으로 읽히는 ‘짧고 센’ 문장이 더 환호받는다. 대중교통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고, 모두 영상 속으로 고개를 파묻는다. 우리는 더 이상 사색하며 읽기보다, 흐름에 휩쓸려 넘기고 반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 시대에 글은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짧고 굵게’라는 전략은 이제 글에서도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 모두가 킬포인트를 찾는다. 기승전결은 불필요하다 여겨지고, 문장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글이 마지막 남은 ‘사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상은 시선을 사로잡지만, 글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글은 독자의 내면에 말을 건다. 말 없는 속삭임으로, 오래 머무는 질문으로.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서 나를 마주하고 나의 속도를 점검하는 일이다. 생각 없이 소비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글은 유일하게 ‘곱씹을 수 있는 매체’다. 글은 천천히 읽히고, 그만큼 깊이 침투한다. 그것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분명히 독자의 내면에 잔상을 남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다.


글을 읽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곧 생각하는 힘이며, 깊이의 감각이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비춰보는 관계의 확장이기도 하다. 숏폼은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글은 뿌리를 파고든다. 빠르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흐름을 거슬러 멈추는 일이며,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되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글에 멈춰 서고 싶은가?

우리는 모두 스크롤의 강물에 떠밀려간다. 그러나 그 흐름 한가운데서도, 사유할 수 있는 ‘한 문장’을 붙잡고 싶다.

급할수록 천천히 써야 한다.
혼란할수록 더욱 조용히 읽어야 한다.
숏폼의 시대에도, 여전히 글은 우리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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