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깨우고 마음을 잇는 소리의 시간
어릴 적, 혹은 성인이 된 어느 시절. 누구나 인생의 특정 시점에 반복해서 들었던 음악이 있다. 특별한 날은 물론,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하루에도 그 노래는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다. 무심히 흥얼거리던 가사와 반복되는 멜로디는 머릿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사색에 잠긴 채 오래된 음악을 꺼내 듣는다. 혹은 술기운에 마음이 느슨해질 무렵, 무심코 재생된 한 곡이 나를 다시 그때로 이끈다.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멈춰 있던 기억의 문이 활짝 열린다. 음악이 흐르던 공간과 감정, 거리의 공기까지도 생생히 되살아난다.
물론 그 기억이 모두 밝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린 감정이나 오래된 후회가 따라온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지금의 나를 만든 삶의 일부다. 음악은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과 외로움까지 품어내며, 우리 존재의 결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조선의 학자 추사 김정희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으로 독서, 음주, 사랑을 꼽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여기에 꼭 하나를 더하고 싶다.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독서가 주는 사유, 술이 주는 해방감, 사랑이 주는 떨림을 모두 담아내는 예술이다. 듣는 순간 몸과 마음이 동시에 움직인다.
음악과 함께하는 삶은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다. 출근길 한 곡의 음악이 하루의 시작을 밝혀주고, 퇴근길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 준다. 혼자 있을 땐 위로가 되고, 함께할 땐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단절된 순간에도 음악은 우리를 감정으로 이어주고, 무너졌던 마음은 선율 속에서 천천히 회복된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언어가 달라도 음악은 사람을 이어준다는 사실이다. 같은 가사를 몰라도 같은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리듬에 맞춰 함께 움직이며 우리는 하나가 된다. 전쟁과 갈등, 차별과 불통의 시대일수록 음악은 경계를 허무는 가장 순수한 언어다.
오늘 저녁도 나는 조용히 잔을 기울이며 옛 노래를 꺼내든다. 그 안에는 내 젊음이 있고, 나의 실수와 열정, 후회와 환희가 있다. 음악은 다시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음악은 기억의 열쇠이며, 감정의 다리이고, 우리 모두를 하나의 선율로 잇는 인생의 네 번째 즐거움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