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배운 손빨래의 철학
“당신은 마지막으로 손으로 빨래해 본 게 언제인가요?”
스마트 세탁기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요즘, 손에 힘을 주어 비비고 헹구던 그 감각은 어느새 우리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편리함은 모든 것을 대신하지만, 그 편리함이 항상 ‘최적’일까?
그날, 목욕탕에서 본 장면
운동을 마치고 동네 목욕탕에 들렀을 때였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선배들이 구석에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속옷과 운동복을 조심스럽게 비비고, 땀을 씻어내듯 헹구는 모습.
처음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왜 굳이 저렇게까지? 궁상 아닌가?’
‘집에 세탁기도 있을 텐데.혹시 와이프가 싫어하셨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빠르게 편견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손빨래가 내 일상이 되었다.
나는 맞벌이 부부다. 세탁은 주로 이틀에 한 번, 아니면 주말에 몰아서 한다.
하지만 여름철 땀에 절은 운동복과 속옷은 하루만 지나도 고약한 냄새가 배고 만다. 그 옷들이 다른 세탁물들과 함께 방치되면, 냄새는 악화되고 아무리 최신 세탁기를 써도 찌든 땀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혼자 살면서 이런 문제가 더 명확해졌다.
운동복 하나 세탁하려고 세탁기를 돌리기엔 낭비가 크다. 그래서 나도, 형님들처럼 목욕탕 한쪽에서 손빨래를 시작했다.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비벼본다.
검은 물이 빠져나오는 걸 보며 묘한 만족감이 든다.
뽀드득, 뽀드득. 그때 나는 “아, 이게 진짜 빨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운동복에 밴 냄새는 사라졌다.
그리고 집 안에서 퍼지던 눅눅한 빨래 냄새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최신 세탁기는 스팀살균, 자동세제 투입, 건조까지 다 해낸다. ‘가전제품계의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기능들이 항상 내 삶에 맞는 최적해는 아니다.
운동복 한 벌을 위해 전기와 물을 쓰는 대신, 손으로 5분만 투자하면 더 빠르고 더 위생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깨끗하게 만들었다는 감각은 기계가 절대 대신해주지 못한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가
빨래터에서 옷을 삶고, 비비고, 헹군 이유는
단순한 전통이나 낭만이 아니라
그 시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실용적인 지혜였다.
그 장면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손빨래가 세탁기를 대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불이나 수건, 대량 세탁은 당연히 세탁기가 제격이다. 기계는 여전히 위대하다.
하지만 손빨래도 그 나름의 기능과 미학이 있다.
한쪽을 무조건 버릴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병행하는 지혜,
그것이 지금 시대에 더 적절한 선택 아닐까.
오늘도 운동 후, 나는 조용히 손빨래를 한다.
하루를 정리하며, 땀을 씻어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건 그냥 ‘빨래’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를 정돈하는 ‘작은 의식’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손의 감각,
삶을 다시 만지는 일.
기술이 주는 편리함도,
손이 주는 감각도
모두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한다.
우리는 그 두 세계를 넘나드는
‘중간지대’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