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큼 사람을 옥죄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한 때 완벽주의에 취해 있을 때가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완벽주의를 버린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대학생 때 팀별 과제가 주어지면 같은 팀원들을 믿지 못해 결국 모든 자료를 받아서 혼자 마무리를 하면서 밤을 새우곤 했다. 회사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맡은 부분의 마무리까지 꼭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했다. 대신 확인해 준다고, 피곤할 테니 들어가 보라고 동료들이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모든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혼해서도 그랬다. 완벽한 결혼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 8년에 걸쳐 사람은 결코 바뀌질 않는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그렇다. 나의 완벽주의는 결혼과 동시에 조금씩 금이 가지 시작했고, 결국은 깨져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완벽주의가 깨진 것이 글을 쓰는 데에는 상당히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글에는 완벽이란 없다고 생각하니까. 누구나 잘 쓰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잘 쓰고 싶으니까. 그런데 애초부터 완벽한 글이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이다. 완벽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단언컨대 결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글을 써도 나보다 더 잘 쓴 거 같은 글들이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나는 아픈 아이를 낳았다. 그 순간부터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육아생활이란 건 철저하게 짓밟혀버렸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무조건 아이를 살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풀메이크업을 하지 않고서는 집 앞에 슈퍼마켓도 가지 않던 내가 간신히 세수만 한 맨 얼굴에 머리는 대충 틀어 올린 채, 해져버린 티셔츠를 입고 지냈다. 완벽주의라는 게 하등 쓸모없는 감정이라는 걸 배웠던 기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첫 책을 빠르게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글에 대한 압박감이 없었으니까.
어차피 초보 작가가 쓰는 글, 누가 기대를 하겠어. 맞춤법이나 안 틀리면 다행이지.
이런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그래서 그런가. 사실 지금 다시 읽어보라고 하면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글을 쓴다. 어제보다 나은 글을 써 내려가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완벽주의 때문에 글쓰기를 못하고 있는가? 내려놓자. 그리고 무조건 많이 쓰자. 만약에 완벽한 글이 정말 있다면 다작만이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바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