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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 Nov 02. 2023

가진 것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소소한 행복의 존재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를 낳았다. '선천적 기관협착'이란다. 병명도 어려워 처음엔 외우기도 힘들었다. 이 병은 한 마디로 기도가 좁아서 숨쉬기 힘든 병이다. 생명하고 직결된 병이기도 하다.


이 아기는 언제, 어디서 잘 못 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이렇게 하더라. 이 순간의 좌절감, 원망, 두려움, 절망감 등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만 떠올랐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왜! 내 아기가 아픈 건데?
왜! 내가 뭘 잘 못해서?



8개월을 병원생활을 했다. 그 시간 동안 중환자실만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생명의 위협을 참 여러 번 넘긴 우리 아들이다. 아들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아침, 저녁으로 면회하는 시간을 위해 하루 종일 병원에서 지냈다. 하루는 신랑이 면회는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바람 좀 쐬러 가자고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신랑이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그러기로 하고 드라이브를 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천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발달된 곳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지나가는데, 엄마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하하 호호 수다를 떨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 하나.


왜 난 평범하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도 할 수 없는 거지?
이건 지극히 평범한 거잖아.
그게 왜 나한테만 허락되지 않는 건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조울증과 공황장애 증상이 심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자,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를 원망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원망은 원망을 낳는다



신기한 건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향해 원망할수록 그 마음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결국 나 자신을 집어삼켜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지지 못한 것들만 눈에 들어오고 마음은 비교로 인해 피폐해져갔다.



과연 이렇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래?



내가 변화하게 된 단 하나의 질문이다. 죽기 직전에 후회로만 남는 삶을 살기 싫었다. 조울증이 심하던 시절,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생을 마감하려던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그땐 아팠으니까 그랬던 거라고 딱 단정 지었다. 왜? 지금은 결단코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살래?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다. 잘 살고 싶었다. 그 '잘'이 뭐일지 또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우리 아들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프지만 이렇게 예쁜 아들이 있는데,
난 우리 아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네...




그렇다.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아들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

힘들면 눕고 쉴 수 있는 집이 있었다. (심지어 자가였네;;^^;;)
걷고 싶으면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었다.
예쁜 꽃을 보면 예쁘다고 느낄 마음이 있었다.
육아를 도와주시는 부모님이 계신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있었다.
글을 쓸 용기가 있다.
.
.

생각해 보니 참 많았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행복을 느낀다. 이거면 되지 않을까? 살면서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게 최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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