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반항
"엄마, 미안해요. 시험 망쳤어요..."
수능을 보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할 말이 없었다. 수시 제도가 있어서 난 수시 2학기에 K대학에 조건부 합격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 조건부란 수능 4등급 이상을 의미했다. 그런데 시험을 다 보고 나온 난, 그 4등급이 안 될 거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어머니는 일단은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는데... 하... 언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망조였다. 이건 그냥 재수를 해야 할 각이었다. 어머니도 가채점 결과를 보고 더 이상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기껏 붙어놓은 대학을 수능 하나로 날려야 할 판이었으니 말이다.
"엄마 엄마! 나 붙었어요! 수능 3등급이에요~!"
최종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도 난 3등급이었다. (이렇게 성적을 다 들통 내는군... 카) 최종적으로 K대학에 붙은 것이다.
"엄마, 00아줌마랑 있어. 나중에 얘기해."
축하한다는 한마디가 없으셨다. 사실 엄마는 K대학을 마음에 차지 않아 하셨다. 그래서 어쩌면 재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지독히도 하기 싫은 공부를 어머니 때문에 간신히 해왔다. 더 이상은 못한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그랬기에 나는 K대학에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여기라도 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어머니 덕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신입생이 된 난, 더 이상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착각 속에서 나오고 싶지도 않았고 나올 생각도 없었다.
"혜준아~ 우리 이번 수업 빠지고 노래방 가자!"
"그래~! 가자!"
"혜준아~ 다음 수업 출첵만 하고 나와서 포켓볼 치러 가자~!"
"그래~! 가자!"
놀러 가자고 하는 친구들의 제안을 단 한 번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마치 그동안 못 논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신나게 놀. 기. 만. 했다. 수업을 빼먹고 넓은 광장에서 즐기는 낮술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노는 것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것, 그것이 나에겐 대학 생활이었다. 당연히 성적은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됨과 동시에 나의 반항도는 훌쩍 높아져 버렸다. 이때부터는 어머니가 성적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던, 어떻게 생각하시던 더 이상 나는 두렵지 않았다.
대학생활이 삶의 끝이 아니건만, 그때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마치 내 삶이 대학교에서 끝나는 것 같이 놀았다. 모든 것을 불태워서 말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래도 대학생활에 꿀같은 추억들이 남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