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삼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들이 보기에는 거지 중에 상거지라고 말하겠지만 봉두난발한 모습은 록가수 ㅈㅇㄱ과 아주 흡사했고, 거지치고는 키도크고 풍채가 있어서 오빠 한번 믿어봐~노래가사에 걸맞은 사람이다.
어쩌다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그렇지, 목간 한번 깨까시하고 봉두난발 수염도 밀어버리고, '아방가르드가을 컬렉션파리지엥베이직 버버리 코트' 를 걸치기만 하면 주윤발 비스무레한 삘이 느껴지는 상남자스톼일 이다.
선글라스 대신 벙거지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전체적인 얼굴은 볼 수가 없었지만 왠지 나랑야쿠르트 한잔 나누고픈 갬성오지는삼촌으로보였다. 특히나 그래부렀냐? 어째부렀냐? 말할 때마다뚝배기가 툭툭 깨지는 촌말도 쓰지 않고 서울의 고오급 언어를 구사하는버버리표 삼촌이라서 내 맘에 쏘~옥들었다.
"저어기, 우리 삼촌 맞어유?
"누가그리말하던?"
"울 언니가그러던디유.집에서 쫓겨나서 이곳에잠시 사는거라고유?"
"허허~내가 니 삼촌인지는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고,
네 집에 남은 밥 없냐? 한 숟갈만 가져와다오.
너희 부모님, 몰리 가져와야 한다. 알았지?"
삼촌이 배고프다는 말씀에 마침, 아부지가 잔치집에 가셔서 드시지 않은 고봉밥을 덜어내고, 누렁이 주려고 남겨 놓은 된장국과 꽁치 반토막, 내 몫의 고구마까지 살뜰히 챙겨 가져다주었다.
아버지 지갑에 189,000원이 있다 할시, 오만 원짜리를 털면 하수, 만원을 털면 중수, 삼천 원을 털면 안 들킴.
이렇듯나는 인생 유년에 팔자에 없는소녀 가장이 되었다. 한창 클 나이에 먹을 것을 아껴 삼촌을 가져다주는 바람에 통통한 볼살이 쪽 빠져서 흐물흐물 해파리가 되었다. 아부지는아부지대로 찌개 냄비를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왕건이를 건지려 했지만 빈 낛시질만 할 뿐이었다. 누렁이까지 삐쩍 골아서 우리 집 식구들은 갑자기 마녀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이유 없이 말라갔다. 굿을 한다 손 치더라도 새끼무당으로는 어림택도 없이 큰 만신굿을 해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어이~ 돼야지 고기 좀팍팍 썰어디비 넣고 찌개를 끓여야지, 시방, 이게 뭐시당가? 멀국만 흥건해가지고.이래 가지고 쟁기질 허겄어?"
"?? 요새요상허네요, 돼야지 고기 양껏 넣고 끓여놓았는데 텃밭에 간 사이에 엎어졌나, 자꾸 반찬도 없어지고,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에요. "
밥상에앉은 아부지와 어무이,솥단지를씹어먹어도 될만치 먹성 좋은 오빠들, 한창 키가 자랄 나이인 언니들과 나까지... 모두 밥을 먹을 때마다 침울 해져서 점점 미스테리한 집구석으로 변해갔다.이러다 우리 집 식구들이 바가지를 들고 동냥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삼촌도 먹여 살려야 하고, 누렁이도 그렇고, 그렇다고 내 밥을 다 줘버리면 그럼 난 흙집어먹고 사나?
집구석을 절단 내면서까지 소녀가장으로서의헌신에도불구하고삼촌은 딱히 나를 달가워하는 눈치는아니었다.얻어먹긴 하되, 밥덩이 앞에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였다.나는 그게 얻어먹는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까지 되~~게,존~~~ 나, 멋져 보였다.
아무리 상그지꼴을 하고 있더라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삼촌은발가락이 드러나 발등만 남아있는 양말을 신고 있었다.그걸 보는 순간 소녀가장은 또 울컥했고, 서울 이모가 아부지생신 선물로 가져온양말 한곽이 생각났다.
날이 어둑해졌지만 얼른가져다줄 요량으로 몰래집을 나섰다.
다리밑, 삼촌의거적때기집을 찾아가려면 마을을 벗어나 외진들판을 지나고 언덕아래 자갈과모래가 깔린 개울가로 내려가야했다.
내가 막 언덕 아래에 도착할 즈음거적대기문이 제쳐지며그림자 하나가 조심히 걸어 나왔다.
순간, 들키면 큰일이다 싶어 언덕으로 다시 올라가 몸을 숨겼다.
"조심히 들어가소."
"야~내일 또 올께라~ 밥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셔요."
삼촌이 여인과 주고받는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여인은
보자기로 덮은 소쿠리를 옆에 끼고있었다. 그녀는 내가 숨어서 바라보는 줄도 모르고 옷고름을매만지고 치마도 추켜올리며주변을 살피다가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아부지 양말을 되돌아 가져오면서
'누구더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디?
잡힐 듯 말 듯, 고개만갸웃거렸다.엄니가 왕건이가 사라진 찌개냄비를 바라보던 그 표정 그대로였다.
그리고 난,소녀 가장을때려 쳤다.
아부지의 고봉밥이 되살아났다.김치찌개에는되야지고기가 넘쳐나서 밥 먹을 맛이 났다.침울하던 밥상은 투닥투닥 부딪치는 숟가락 소리로 쿵쿵 짝~ 리듬을 탔다. 누렁이도 피둥살이 올랐다
겨울이 들이닥칠 무렵 김장을 하러 동네아줌니들이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아니,세상에~ 소문 들었는가?아, 거 있잖혀. 저기다리밑문둥이랑꽃깔봉 최과부년 하고 눈이 맞아서 도망가부렀디아~~."
"머시여? 문둥이랑,최과부가? 언제?"
"한 칠팔 여드레는 되얐는갑 서. 알고 보니 그 문둥이신세가 짠해더만. 원래 부잣집 도령인디, 몹쓸 병에 걸려서 집을 나와버렸디야.
과부댁이랑 혼사치르고 무슨 섬에 들어가서 치료받는담서 인사하고 떠났다는디? "
나는 동네아줌니들의 수다를 듣자마자 달음질하다시피 다리밑을 찾아가보았다.
텅 비어있었다. 미처 삼촌에게 전하지 못한 양말 한곽이 내손에서 흘러내렸다.
"언니, 삼촌이 섬으로 갔다던데, 어딘 줄 알아?"
"?? 무슨 삼촌, 삼촌이 언제 왔간디?
"아니~두 달 전에 언니가 삼촌 왔다고 나한테 가보라고 했잖혀."
"이 가시나가 미칬나?무슨 얼어 죽을 삼촌이야? 저리 가! 나 숙제해야 해."
2024년 4월, 이제 중년의 나이를 지나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언니가 살고 있는 동해 바닷가를 구경하면서 드라이브를 했다.
"야~저기 니 삼촌 지나간다."
"어디??"
차창밖으로 온몸에 주렁주렁 살림살이를 매단 채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우리 윤발이 삼촌은 참 명이 길기도 하다.
어디, 삼촌만 지나가랴.
유년이 지나가고 순수가 지나간다.
세월이 지나간다.
(먼 훗날 모니카벨루치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에 나오는 어린 소년 레나토가 꼬맹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