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May 10. 2024

개털 핑여사가 잘 먹는 법

거지인가, 진상인가

안녕, 나 핑여사야.

남들은 날 보고 핑크공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술 더 떠 핑크여왕이라고 말들 하는데, 난 그냥 수수한 여사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

초면에 반말은 이해하셔. 초파일이 다가와서 바빠죽겠는데 그랬어요~, 어쨌어요~, 길게 이야기할 시간 없거든.


내가 이래 봬도 절 보살 30년이야. 한때는 말이야. 집 나간 서방 놈이 독실한 불자여서 함께 팔짱 끼고 여러 절 수없이 다녔다네. 그때는 서방 놈이 돈푼깨나 있어서, 아차차~ 자꾸 옛 버릇이 나와서 자꾸 '놈'이라고 부르네. 서방님이랑 시주 좀 하고, 스님네들에게 보이차도 한잔씩 얻어먹고~그때가 참 좋았더랬지. 그래서 내가 어느 절에 고추장 단지가 몇 개 있는지 빠삭하게 잘 안다니까.


 우선 절밥보다 서방 놈이 집을 나갔느냐가 더 궁금하다고?

그 인간이 참을성이 없어서 그래. 나 같은  여왕님을 모시고 살려면 진득하니 참을성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사람은 '참지 않기'가 유행인지 서방 놈도 못 참더라고.


 여왕놀이 한 김에 재테크의 여왕까지 하고 싶어서  마이너스대출, 아파트 담보, 시부모님 논밭까지 땡겨서 주식, 코인에 집어넣었지. 선산까지  왕창 시원하게 말아먹었어. 여왕놀이가 쉽지 않더군. 그래서 쫓겨났어. 지 개털이야.


여하튼, 초파일만되면 어느 절부터 가야 할지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나대고 있어. 정신 차리고 동선을 잘 짜야해. 올 한 해 오만복을 듬뿍 받고 만사형통하려면 말이야.

동에서, 북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갈까?

아니면, 북에서 서쪽, 남으로 돌까?

오라는 곳은 없지만 갈 곳이 많은 곳이 절이야.


초파일이 뭐 하는 날이겠어.

나처럼 불쌍한 사람에게 더 많이 자비를 베풀라는 날 아니겠어. 그러니 이런 날은 진상짓을 해도 다들 조캐조캐(좋게 좋게) 넘어간다니까. 돈 없는 여인이 머리카락을 팔아 등불을 켰는데, 그 등불만이 가장 밝빛났다고 하잖아. 하루에 세 군데 절을 가야만 정통으로 기돗빨 받는다 하니 이번엔 에서 가장  , 가나사부터 일찍 들러야겠어.

 , 잊지 마. 가방은 무조건 큰 걸로, 그 안에다 시장 가방 하나 더 준비하는 것도 꿀팁이야. 그리고 고무줄  절복 바지 하나만 입으면 끝장나는 거야. 없으면 운동복 바지 입어도 돼.


가나사에 아침 일찍 도착하면

아직 행사 전이라 법당은 한가한데 공양간은 난리도 아냐. 오늘은 도시락을 준비한대.

오곡찰밥, 연근조림, 우엉볶음. 두부조림, 콩자반, 생채, 방울토마토와 샤인머스캣. 와우~시중가 만 원짜리 저리 가라 구성이야.


바빠죽겠어서 누가 누군지 몰라. 절복 바지도 입었겠다 아무 자리 나 쑥 끼어들어서 일하는척해. 그냥 막 들이대. 그러다 도시락 몇 개를 들고 나와. 바로 그 자리에서 가방에 넣으면 절대 안 돼. 일단 가지고 나와서 가방에 넣어야 예의야.

떡도 마찬가지야. 봉지 봉지 담는 거 거들면서 몇 개 들고 나오면 돼. 어지간하면 오늘 같은 날은 다 봐주더라고.

 그리고 미련 없이 다음 절로 고고~


다라사는 한마디로 내 이야, 밥.

00사는 전주시에서 가장 실속 있는 절이면서 웅장해. 신도들도 짱짱해서 어수룩하게 했다가는 쪽이 팔리는 수가 있어.

여기도 아침 8시부터 봉사를 시작하는데, 봉사자들 먹으라고 미리 김밥도 100개씩 주문해 놓았더라고. 맘대로 몇 개 집어넣어. 먼저 집는 게 임자야.

 해마다 비빔밥을 준비하는데, 이미 비빔밥 맛집으로 문나서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냐. 주지스님 스케일이 남달라서 비빔밥에다 향긋한 연꽃 차, 떡볶이,  한 병씩, 앵겨주고, 재질 좋은 천가방에다 떡이랑 염주, 경전까지 나눠주는 곳은 이곳밖에 없어.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 가방은 밥 다 먹고 나갈 때 한 사람씩 나눠주는데, '우리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저기 휠체어에 앉아있다'라고 하면 한 개를 더 주더라고. 그럼 다시 끝줄에 서서 또 받는 거야. 어느 여시 꼬빼기가

"아까 받지 않으셨나요?"

물을 수 있으니, 등 접수받는 곳에서 사인펜 하나 빌려서 '아내의 유혹' 점 하나만 찍으면 아무도 몰라. 사인펜 안 돌려줘도 돼. 수북이 많으니까, 살림에 보태 써.


 체험하는 곳에서는 컵등, 염주. 팔찌, 손수건까다 공짜야. 이것저 마구마구 쓸어 담다 보면 어느새 가방이 빵빵한 거야. 그러면 나만 아는 곳에다 미리 짱박아놓고 보조가방을 꺼내서 다시  줍줍해. 살림살이가 아주 그냥 널렸어, 널려.

그렇게  점심을 다 먹고 나면 끝나냐고?

아니, 아니~

신도님들이 우르르 떠날 것을 대비해서 노래자랑 대회를 여는데, 또 이게 기가 제일 많아. 나, 사실, 노래자랑에 나오고 어서 초파일을 무진장 기다렸어.


절간에 곡차가 없는 게 흠이지만 잔치집에서는 신나게 흔들어 제켜주는 게 또 예의 아니겠어. 불자님들은 얌전 내기밖에 없는지 부르는 노래가 노사연의 만남, 개똥벌레, 다 건전가요 뿐이더라구. 식상해. 


밥도 먹었겠다. 졸음도 쏟아지는데 이런 때는 빵빵한 걸로 풍악을 울려줘야 밥값 하는 거 아니겠어. 안 그랭?  심신오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개다리 막춤도 추고, 총도 빵빵 쏴주고 말이야,

 '찰~랑 찰~랑~찰랑대는~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

찰랑찰랑 가슴도 막 털어주면 스님네 죄다 까무러쳐. 인기상은 무조건 나야 나. 대상은 십만 원 상품권, 인기상은 팔다 남은 달마 액자가 전부지만 이것도 괜찮아. 나중에 당근에 팔면 이만 원은 거뜬해.

그렇게 놀다가 저녁 5시쯤 되면 이제 그 옆에 있는 마바사로 가면 돼.


마바사는 비구니 사찰이라 아주 정갈해.

저녁공양 드시라고 또, 잔치국수 한 사발에다 떡이랑 과일에  한방차까지 한 쟁반 가득 차려 주네?

인심이 어찌나 좋은지, 떡이란 떡은 봉지 봉지마다 큰 소쿠리째 쌓아 놓고 맘껏 가져가라고 다 내놓네? 가는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협찬이 들어왔는지, 아이스크림을 몽땅 내놨네?

 어헛!  나라가 망하네, 이민 가네, 해도 여기는 태풍성대가 따로 없구먼.

 소쿠리째 가져가면 양심불량이라, 브라보콘 종류로 서너열 개, 마구마구 쓸어 담으면 언제나 후회를 하곤 해. 가방 하나 더 가져올 걸 하고 말이야.  


초파일 아침 일찍부터  이 절 저절 돌아다니며 쓸어 담은 것들을  방바닥에 펼쳐보면 거창해. 이게 다 얼마야? 쏠쏠해서 기부니가 아주 아.

너무 많아도 처치곤란이야. 이런 땐 나눔의 실천이야. 반은 남기고 반은  가지고 나가는 거야.

당장 옆에 있는 호프집으로 떡장사를 하러 갈까 싶지만 다리도 아프고 해서 참았다니까. 컵등이랑 떡, 부채, 염주, 도시락, 천가방, 등을  챙겨서 가장 먼저 편의점 사장한테 가져다주었지.


"사장님~오늘 초파일인데 절떡을 잡수셔야만 일 년 내내 무탈하고 소원성취 된답니다. 제가 일부러 00사까지 아침 일찍 올라가서 사장님 생각나서 받아왔어요. 따님이 고3이라서 신경 쓰이더라고요."


"아이고~세상에나. 오늘이 초파일인 줄 도 모르고 있었네요. 잘 먹을께요. 영험이 있다 하니 더 고맙네요.  이거라도 받으세요."


하면서 요플레 복숭아맛 4 ×2줄을 가방에 담아주더라고. 이렇게 미장원, 꽃집, 야채가게, 족발집을 들르면 떡값의 몇 배가 다시 빵빵하게 되돌아온다는 거야.

이게 인연법 아니겠어. 뿌린 데로 거두는 법이지.


아쉬운 게 있다면 명절도 추석, 설날 두 번인데

부처님 오신 날은 기념하면가신 날(열반재일)은  기념하지 않는 거야?

 일 년에 한 번은 감질나서 못살겠어. 그랭?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었으면 참 좋겠다. 그치?


그리고 말이야, 작년에 서쪽에 있는 절에 갔더니

밖에 있는 미륵전 앞에 과일이랑 떡을 그득그득 쌓아놓았더라고. 과일 중에  망고가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 거야. 느끼하게 '날 한번 먹어봐? 우~~'요러면서. 한 개에 5천 원이 넘는 고급 과일이라 사 먹지도 못하고 있었거든. 법당 안에서는 보살들이 불을 켜고 지키고 있어서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자꾸 망고 저 자식이 날 잡솨봐, 하길래, '그려 소원대로 좝솨주마' 하고 가방에 챙겨 넣었지. 그리고 지나가는데, 어떤 산적같이 생긴 아자씨가  내손을 꽉 잡는 거야.

'오호라, 네놈이 나한테 홀딱 반했구나? 하여간, 여왕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니깐. 서방 놈도 도망가 버리고 마침, 힘깨나 쓸만한 노예가  필요했거덩. 요즘 남자들은  참 저돌적이라니까. 브레이크 없이 기냥 막 들이대는데, 그럼 까짓 거 살아주지 뭐.'

그래서 나도 바로 콜!

"살께요." 해버렸지.

"????"

그러자 산적이 도끼눈을 하고서는 내 가방을 낚아채며 망고를 꺼내는 거야.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흐~개망신. 씨씨티비로 다 봤나 봐. 젠장 그걸 미처 생각 못했네.


암튼 초파일엔 부지런해야 해.

그대들은 어느 절부터 갈래? 나랑 절에서 같이 밥 먹을래? 내가 쏠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