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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r 01. 2024

 순덕이 보살  

친구를 조심하라

 순덕이 는 칠년 전부터 전라도 어느 절간에서 살고 있다.

처녀 적부터 봉사활동으로 신심을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총무소임을 맡아 절일을 거들며 지내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대 사찰답게 내노라하는 스님네들이 수행 정진하는 도량인지라 행동과 말씨, 옷차림새까지 여간 조심되는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순덕이도 사십이 다 된 지금엔 절물이 스르르 배어들어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보살님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었다. 순덕이는 ‘보살님’ 소리를 들을 적마다 속으로 뜨끔 하면서도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수 있는지 새삼 놀라곤 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숙이를 선두로 여고 동창생 대여섯명이 몰려들어 고적한 절간이 접시 깨지는 소리로 기왓장이 들썩들썩 했다.

“야, 어매야. 정말 네가 갸? 순덕이 맞냐?.…….”

“오매오매, 진짜로 많이 변해부렸다~잉. 정말 세상에! ”

“ 어매, 네가 다 절간에 살어야? 참, 알다가도 모르것~다~잉. ”

大보살 순덕이의 지금 모습이 통 믿기지 않은 듯 넋을 놓고 바라보느라 제 정신들이 아니다. 순덕이는 예의 보살님다운 자비로운 미소를 우아하게 지으며

“얘들아, 왜들이래. 이렇게 찾아와줘서 반갑구나, 우선 녹차나 마시며 이야기 하자꾸나.” 하며 다구를 꺼내들었다.


머리카락 한올 내려갈세라 단정하게 빗어 정갈하게 쪽을 져 올리고 풀 먹인 물잠자리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순덕이는 오늘따라 화장까지 잘 받아서인지 사극에 나올법한 마마님 꼭 닮은 폼새이다.

만약 이 모습을 장금이가 보았더라면 ‘에고 순덕이 형님’ 하면서 꼬랑지를 탈싹 내렸을 것이로다.


친구들은 순덕이가 옹알옹알한 다구들을 민첩한 손놀림으로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차를 우려내자 그 마저도 황홀한 듯 바라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신의 모습에 홀딱 반한 친구들에게 차를 따르면서 순덕이는 가소로운 눈길을 보냈다

‘천박한것들 같으니라구. 허연 허벅지가 드러나 보이는 반바지 차림에 울긋불긋한 화장하며, 먹을 것, 못먹을 것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입에 털어 넣어가지고서는 뒤룩뒤룩 살찐 꼬락서니허구는. 이것들이 내 친구들이라니. 다른 스님, 보살님네 들 보기 부끄럽구만.’


초여름 간간이 산들한 바람이 불어오고 대나무 숲 우거진 산중엔 뻐꾸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는데 불면 날아갈까 단아한 순덕님이 우려낸 녹차 맛 에 ‘곗돈이며 밀린 공과금, 온갖 시름 다 떨쳐버리고 나도 여기 와서 한번 살아 볼끄나...’ 무엇에 홀린듯 헤어나지 못할 지경일진데.

그때 딱! 딱! 딱! 등을 때리는 죽비, 경숙이의 말 한마디.

“아 참, 생각났다 생각났어.”

그러고는 다짜고짜 순덕이를 향해

“ ‘야’ 너, 고등학교 수학여행 갔을때 그 사건? 생각나니? ‘야’ 너, 기억 안나? 거 있잖아 , 너 하마터면 퇴학 당할뻔 했잖아. ‘야’ 순덕~아, 너 정말 기억 안나?...”

어라? 웬 신라의 달밤, 간장독 깨지는 소리란 말인가.

웅변대회, 백일장 대회를 휩쓸던 내 영광 찬란한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순덕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사건을 유일하게 기억해 낸 썩을 경숙이년.

<나는 지난여름에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는 공포 영화 제목처럼, 그것도 하필 여고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이 자리에서 꼭 그 일을 끄집어 내야만 하겠는가 말이다.


처진 눈을 안 처진 척 아이라인을 두껍게 칠한 미선이가 그래도 처진 눈을 빛내며 “아니, 왜 뭔 일 있었어? ‘야’ 가 뭔일 저질렀어? 그래서 이렇게 절간에 숨어 사는거야?” 하면서 기름을 붓는다.

절집 개 삼년이면 목탁을 두드리고 십년이면 사십구재를 지낸다(?) 고 순덕이가 어깨 넘어 스님네한테 배운 대로 섬섬옥수 고운 손으로 우려진 녹차는 갑자기 쓰디 쓴 독차로 변해갔다.

경숙이 주둥이에서 무슨말이 나올것인가 !

 친구들 못지 않게 궁금해진 뻐꾸기도 울던 울음을 뚝 그치고, 천왕문을 지키던 4大 천왕님들도 관광객 눈을 피해 각자 들고 있었던 칼과 용, 삼지창, 비파를 슬며시 내려놓고서 귀를 쫑긋 거렸다.


“야, 그때 정말 ‘야’ 대단했었다야.”

속초 역전파래나 머래나 그자식들하고 붙었는데, ‘야’ 가 붕붕 날드라 날어. 그때 ‘야’ 가, 아마 합기도 3단인가 되었을껄. 삼단 되돌려차기로 붕붕 날아다니는데.. 말도 마라, 말도 마. 나중엔 ‘야’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선생님들께서는 졸업반인데 퇴학을 시킬수도 없고, 일이 더 커질까봐 여행도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다친걸로 쉬쉬하기로 했잖냐.”


친구들은 경숙이와 그때의 ‘야’인 순덕이를 번갈아 바라보느라 멍해 있는데 경숙이의 다음 말이 더 걸작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뉴스를 볼때마다 무슨 조직 폭력배니, 강력범죄 소탕이니, 떠들어 대면 혹시 ‘야’ 얼굴 나오는가 싶어 유심히 지켜본다니까.”

 경숙이가 침을 튀기며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순덕이의 모시옷이 저절로 풀이 죽어 후줄근해졌다.


경숙이는 자기 주둥이 때문에 보살 이십년, <봉사활동포함>가락의 순덕이가 간장을 뒤집어썼는지, 모시옷이 걸레쪽이 된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직격탄을 날렸다.

“야, 녹찬가 머신가 잘~마셨다. 근디 나는 주니까 먹지, 돈 주고는 못사먹겠다야.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한잔 듬뿍 타 마시는게 백번낫지, 쏘주잔 만한데다 홀짝거릴려니까. 영 비위에 안맞는다야. 그나저나 네가 탈(?)없이 절간에서 늙어(?) 가는것 같아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야. 딴 생각(?)말고 조용히(?)잘 지내거라.”

하며 우르르 일어서는게 아닌가.


처음 순덕이의 용모수려 단아한 모습에 반하여 호들갑을 떠나 싶었더니 천만에, 등에 용문신이라도 새겨진 여 깡패가 되었을줄로 짐작한 모양이었다. 그런 순덕이가 어쨌든 간에 마음을 다 잡아 절간에 산다는게 통 믿기지 않아서 요란을 떤 것이였다.

이야기를 죄다 엿들은 뻐꾸기는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안 들은척 응큼을 떨고, 사천왕님들도 내려놓은 물건들을 각자 주섬주섬 챙겨들고서는 흠, 흠,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우그려 뜨리지만 속으로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순덕이는 보살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지금이라도 당장 뒤쫓아가서 경숙이년을 예전 실력을 발휘하여 묵사발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처럼 붕붕 날아들던 몸도 녹이 슬고 大보살 체면도 있고해서 모처럼 빼입은 옷가지를 버릴까봐 참고 있으려니 쪽 진 머리 정수리에서 피식피식 김이 올라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듯 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되자 순덕이도 법당에 들어섰다.

‘말끝마다 보살대신 ‘야’ 로 부른 경숙이년, 미운마음 일어난 거 참회합니다.’ - 일배-

‘불한당 같이 쳐들어 와서 내 과거를 까발린 경숙이년, 욕한거 참회합니다, -이배 -

‘다시는 경숙이년 안 만나게 해 주십사 기원 드립니다., -고두배-

순덕이가 그 큰 궁뎅이를 들고 일어나 법당 문을 나가자

‘쯧쯧쯧. 저 어리석은 중생을 어이할꼬.’

대웅전 부처님 혀 차는 소리만 빈 절 마당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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