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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r 08. 2024

개구리 사는 이야기

우물 안이 좋아라

     

  나는 천생 시골 촌뜨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십여 년 동안 내 고향 00을 떠나본 적이 별로 없다. 강원도 설악산 일대와 경주 불국사 등은 수학여행으로 구경할 수 있었으며, 제주도는 대학 졸업여행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것도 타보았다.


 우스갯소리로 가방끈이 길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짧았더라면 영영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애완견까지도 다 가본다는 해외여행은 나한텐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여행을 싫어한다거나 거창하게 애향심이 무지 강해서는 절대 아니다. 누가 여행을 싫어하겠는가. 지금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구름이 흘러가는 대로 바람에 나를 맡겨 자유로운 영혼으로 떠다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성격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바로 말하면 내 고향 가까이에 명산대천이 에둘러 있어서이다. 산에 오르고 싶은 날엔 모악산으로, 바다가 그리우면 격포 앞바다, 길을 가다 아무 데나 차를 세우면 끝없는 지평선이 넘실거리고, 천년고찰, 진안 마이산과  무주구천동…. 내가 살고 있는 곳 한 시간 거리 안에 있을 건 다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갈 곳, 볼 것, 천지이다.


  어느 해, 여름 휴가를 맞이하여 지인과 함께 작심을 하고 충남에 있는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갔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00에서 사십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친김에 안면도와 개암사 일대를 돌아보며 세상인심 구경도 할 겸해서 이박삼일 돌아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오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니 안절부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곧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여 손을 가만히 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지인에게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셋이 먹다가 셋 다 죽어도 모른다는 꽃게 찜도 내팽개치고 00으로 되돌아와 버렸다.

 

곧장 집으로 들어가면 모처럼 큰맘 먹은 여행이 싱겁게 끝나버릴 것 같아서 바로 집 근처 찜질방에서 이박삼일 동안 네 활개를 펴고 뒹굴다가 햇빛 좋고 바람이 좋을 때면 밖으로 나가 바닷가 일대를 구경하면서 보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낯선 곳에 가면 설레거나 즐겁고 흥겨워야 하는데 웬일인지 거꾸로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경계근무를 서는 보초병처럼 눈에다 힘을 꽉꽉 주고 주위를 살피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특히 지갑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싶어 진땀이 다 나도록 손가방을 움켜쥐고 다닌다. 어디 그뿐이랴. 주차해 놓은 차가 망가트려지는 건 아닌지, 혹 운수 사납게 시비에 말려들지는 않을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봉변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낯선 지방의 음식에 급체나 토사곽란이 일어날까 싶어 제대로 숟가락도 뜨지 못한다. 운전 조심은 또 어떻고….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초초하다 보니 구경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시간이 갈수록 생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속이 더부룩하여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 그 지방에서만 살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것들을 어지간해서는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지 못해 일행을 재촉하며 안달이 난다.


그렇게 도망치듯 돌아오는 길에 00 몇 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수십 년 간 해외에서 살다가 고향 마을에 처음 다니러 오는 사람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에 다다를수록 서서히 긴장이 풀려 참았던 식욕이 맹렬히 솟구치면서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닌 말로 나 같은 사람은 큰 볼일, 작은 볼일, 방귀조차도 내 고향에 와서야 맘 놓고 편안히 해결할 정도이다.


  일단 내 지역 안에서는 볼펜 한 자루 만을 들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외상을 하여도 ‘흐흐흐’ 웃으며 받아 줄 것만 같고, 택시비가 없어도 또 그냥 ‘흐흐흐’ 웃으며 태워 줄 것만 같은 후덕한 너그러움. 웬만한 시비나 봉변을 당해도 전화 한 통이면 저절로 해결될 것만 같고, 싸움꾼도 아닌데 홈그라운드인양 어깨와 목에 힘이 실리고, 목소리가 우렁우렁 커지는 느낌이다.


 실상은 그렇게 ‘흐흐흐’ 했다가는 도리어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며,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배경도 없거니와 내가 목에 힘을 주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이런 나를 보고 촌뜨기니, 우물 안 개구리니, 하고 놀려도 나는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혈기로 뭔가 한 가락 해본답시고 맥없이 기어 나가서는 뱀에게 잡혀 먹힐 염려도 없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영영 돌아올 수 없어 우물 쪽을 바라보며 눈물지을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느니, 폐쇄적이라느니, 욕을 해대도 나는 끄떡하지 않는다. 잘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넘치고 넘쳐나서 탈이라면 탈일 지경인 세상이다. 또 내가 잘난 체 나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는가.

 

 우물 안에 꼭꼭 숨어서 기분 따라 자유형, 배영 골라가며 유유히 헤엄을 치며 살고 있으면 그것도 눈꼴이 시어지는지 나라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트집을 잡는다. 헝! 그런 말, 마시라! 아무리 우물 안에 납작 엎드려 있어도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월말이면 어김없이 청구서와 고지서가 우물가에 수북이 쌓인다.


비록 우물 안에 살고 있지만 내가 가진 만큼 사용한 만큼 납세의무를 성실히 지키면서 음식물과 생활쓰레기는 딱딱 분리하여 내어놓는다. 국경일에는 알량한 우물가 귀퉁이에 태극기도 걸어놓으며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에겐 ARS로 성금을 낸다. 다큐를 보며 눈물을 흘릴 줄도 알고 지구촌 아이들에게도 작은 돈이지만 후원을 하며 지낸다.


  잘난 게 하나도 없어 아직까지는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참다운 공헌과 봉사는 못하고 있지만, 공공질서를 어기거나 교묘히 법을 이용하여 부당한 것을 취하거나 남을 헐뜯어 나를 내세우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고 산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아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기며 산다.


  어떤 이는 더 이상 따질 게 없으면 또 이렇게 비윗장을 건드린다.

  “그려, 너 잘났다, 잘났어. 우물 안에서 × 찍어 바를 때까지 살아라.”

  초라하고 볼품없는 우물 안에 앉아 있어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대충은 눈치로 안다. 그 작은 창공으로 구름이 지나가고 나비도 지나간다. 별과 달이 뜨고 풀벌레가 울며 꽃잎이 떨어진다. 그래, 나는 우물 안이 참 좋다.

  누가 장난으로 돌멩이만 던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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