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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an 16. 2024

저 산은 나를 보고 표범처럼 살라 하네   

겨울 날의 수행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 눈이 녹고 녹아 마침내 망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테의 강에 다다른다면 눈 녹은 푸른 강물을 한 움큼 떠다가 차茶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집니다.


잊을 것 다 잊고 못 잊을 것도 다 잊고,

버릴 것 다 버리고 못 버릴 것도 다 버리고,

그리하여 푸른 강물에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모름지기 차茶라도 좋아하고 볼일입니다


 계속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의 백련꽃 향기가 마침내 눈꽃으로 化하여 내리는 것은 아닐는지요.

지난 시간, 그대가 알게 모르게 지어 놓은 복과 덕이 하늘에 이르러 착한 그대에게 선물처럼 내리는

 눈송이아닐는지요.

그리하여 이 눈길을 사박사박 밟으시는데 당당하려면 모름지기 착하게 살고 볼 일입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러 법당으로 걸어가는 길ㅡ
   어느 한 사람 밟은 적 없는 순백純白의 길 하나-
   달빛에 창창히 빛나는 눈부시게 순결한 그 길-
   차마 밟지 못하고 꼼짝없이 서 있습니다. 

귀밑을 스쳐 지나는 차가운 바람은 저에게 묻습니다.
 세상천지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 없는, 시린 마당에 어쩌자고 서 있는 것이더냐!
 세상천지 아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이 길을, 너는

 어쩌자고 홀로 가는 것이더냐!


  한 겨울의 수행은 사람의 인내력을 자주 시험 합니다.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몇번을  망설이게하고  빙판에 승용차 바퀴가 빙글 돌아 아찔한 순간을 겪게 합니다.


   청국장 오글오글 끓고 있는 방안이 그립지 않은 사람 그 누가 있겠는지요.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렇듯 아주 소소한 것으로부터의 절연을 뜻합니다.

 먹을 것 못 먹을 것 다 먹어 가면서, 있는 잠 없는 잠 다 자가면서, 할 말 못 할 말 다 해가면서, 시간이 남고 한가할 때, 태풍 치는 날 눈보라 치는 날, 날씨 가려 가면서 ᆢ하는 게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내내 수건 한 장이 다 젖도록 대성통곡을 하는가 하면, 피가 나도록 벽에다 이마를 찧으며 , 이 길이 아닌가 싶어 보따리를 열두 번은 쌌다가 풀었다 절망하면서 안갯속을 헤맵니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은 세상 진리를 다 깨달은 도인인 양 폼을 잡으며, 그렇게 울고 웃으며 가는 게 보통의 일입니다. 가슴 시리도록 슬프고 고독한 일이며, 끝없이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을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행. 복. 해. 지. 기. 위. 해. 서.
   가장 먼저 나의 마음이, 가족이, 이웃이, 사회가, 이 세상이…….
   내 몸속에 있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이 마음 하나부터가 행복의 첫 시작인 줄 알았더라면, 이것이 부처님 법인 줄 진작에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돌고 돌아 삶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밥을 삼키는 목숨 하나가 이토록 애절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하여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며 고고하고 늠름하며

순수로 빛나는 날카로운 결기를 지닌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말입니다.
조용필은 노래 부릅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저는 이렇게 살고 계신 수행자 분들을 매일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털신을 신고 가야 할 절이 있으며, 법당이 있고, 법문 듣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지금 내가 무릎 꿇고 합장하며 앉아있는 자리가 바로 진리의 자리이며,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할 곳이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저는 이 사실을 어느 겨울 저녁날, 꼼짝없이 서 있었던 그날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조용필은 계속 목이 터져라 노래합니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면서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왜, 수행하느냐 묻지를 마십시오.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는 게 도와주는 일입니다.
 시리디 시린 겨울, 가난한 사람들에겐 가슴 미어지는 계절입니다. 내 사는 집, 대문은 단단히 닫아걸고서 ‘방안은 설설 끓고, 고구마도 한 소쿠리 쪄놓고, 쌀 있겠다, 김장했겠다, 이제 다 얼어 죽어도 나는 몰러~ 아이고 따숴라~ 오매 좋은 거~ 극락이 따로 없구먼…….’ 설마 이렇게 웃고 계신 분은 안 계시겠지요


 저 대문 밖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어느 한편에서는 오들오들 떨며 눈물짓는 사람은 없는지, 굶주린 고양이가 새끼들을 죄 몰고 나와 밥을 달라며 현관문을 긁어대는 소리를 외면하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내 등 내 배 따습거든 상대적으로 등 시리고 배고픈 이웃은 없는지 한번 더 살펴볼 일입니다.

   수행하는 뒷모습 만으로도 착하고 착한 그대!
   그대의 수행으로 이토록 세상이 아름답고 고요한 것을.
   그대의 수행으로 이토록 세상이 따스하고 행복한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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