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산기슭 토굴에 살고 계신 老 스님께서 신형, 흰색 코란도 밴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 모습에 반하여 과감히 질러버린 my forever rando. 2003년 12월 출고하여 2021년 6월 15일 폐차하기까지, 18년의 세월 동안 22만 7천 km를 달려왔습니다. 혹시 바가지를 씌울까 봐차계부를 꼼꼼히 관리하면서 my lover rando와 함께한 길고 긴 인생의 여정.
그때는 rando처럼 젊고 패기만만했고 세상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운과 노력이 따라준다면 소원하는 건 모두 이룰 것만 같았습니다. 남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차 안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 견해가 다른 사람과 조용히 통화를 하다가 나중엔열이 받아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딸아이 유학생 선발 소식도 운전하는 도중에 들었고, 아버님의 부고 소식도 차 안에서 들었습니다. 이렇게 천하무적 rando와 함께 때로는 웃고, 때로는 좌절하며 인생의 굴곡을 함께 견디며 흰머리 숭숭한 모습으로, 소낙비와 찬바람과 따스한 봄날을 온몸으로 맞으며 지냈습니다.
한가로운 날에는 저수지 가에 rando를 세워두고 음악을 들으며 쉬었고,누군가 저를 설명할 때 ‘절에 살고 코란도 타고 다니는 여자, 몰라?’ 하면 ‘아~’하고 금방 알아차려 주셨지요. 한때는 ㅇㅇ스님, ㅁㅁ스님과 rando삼총사가 되어 누가 더 오래 타나 시답잖은 내기도 걸었습니다.
후진하면서 하필 순찰 차량을 들이받아, 상대 차량은 푹 찌그러졌지만 제 rando는 흠집 하나없이 멀쩡해서 역시 짱짱하게 잘 만들었구나, 대 만족을 했으며, 18년 동안 딱 두 번의 경미한 접촉사고만 있었습니다.
넓은 짐칸은 트럭 한 대 부르지 않을 정도로 실속 있었고, 경유를 사용하여 기름 값도 많이 절약되었습니다. 자동차세도 무척 저렴했고요. 타이어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사과 박스를 실어나르고 누구 하나 다치지 않도록 rando는 나와 이웃들을 철벽보호 해주었습니다.
“아직도 녹색 번호판이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녹색 번호판을 달고 있어. 완전 고물이 고만.”
전북 XX나 2 XXX. 2003년 출고 당시에 붙여 두었던 녹색 번호판이 세 자릿수로 바뀐 지가 십여 년이 흘렀지만 저는 그대로였고 필수품인 블랙박스조차 달지 않았습니다. 키를 돌려야만 시동이 켜지던 자동차들이 스마트키로 바뀌고, 열선과 냉풍이 들어오고, 전기 차가 대세인 세상이 도래하였 것만 나의 rando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rando를 생산하던 자동차 회사는 매출부진으로 여러 다국적 기업에 팔리며, 국제적 미아 신세이지만 우리는 끄떡없었습니다.
시동을 켤 때면 엔진 공회전 소리가 어찌나 날카롭게 찢어지든지, 정차해 있으면, 핸들이 덜덜 떨려 와서 양손으로 운전대를 붙잡아야 했으며 어질어질해서 바로 내리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따라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수리점에 맡기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제 주변에서 하나 둘 새로운 신형 차량으로 갈아타면서 rando와 같은 노후 차들은 점차 도로에서 사라졌고, 급기야 친환경대책으로 ‘노후 경유차는 서울 및 대도시에 진입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를 받았지만 나와 rando는 마치 저항하듯 더더욱 엔진소리 요란하게 누비고 다녔습니다.
“앞으로 더 타신다면 엔진을 통째로 들어내야 합니다, 그나마 생산 중단 된 지 오래여서 폐차장에서 쓸만한 것을 구해와야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 중고차 시세가 5~6십 정도인데 비용은 이백만 원이 훌쩍 넘을 것 같네요. 이제 탈 만큼 타셔서 본전은 뽑고도남았을 것 같은데 차라리 소형차 중고라도 구입하시지요.” 내가 rando를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더 이상 부품이없어서,어질어질해서,
정부의 서슬 퍼런 으름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잘 만들어진 탓에 그럭저럭 20년은 타고도 남았을 rando를 헐값에 팔아넘긴 것은 알량한 허. 영. 심. 때문이었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셔서 마중을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손님은 rando를 지나쳐 옆에 있던
중형세단 옆에 서 계셨습니다. 오는 내내 rando는 쇳소리 요란하게 발광을 하는 바람에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죄송스러워 얼굴이 다화끈거렸습니다.
외제 승용차 즐비한 주차장에 허름하게 서 있는 나의 rando. 귀부인처럼 차려입고생판 어울리지 않는 18년 중고 차량을 끌고 가자니 우울해져서 택시를 잡아 타거나 고장을 핑계로 남의 차를 얻어 타기 일쑤였습니다.
앞으로 저의 모습도 rando처럼 신형 자동차는 꿈에서까지 타보지 못하고 고치고 또 고치며, 너덜너덜 구차하게 살아갈 것만 같아서 rando를 보면
이미 정이 떠난 냉랭한 부부사이처럼 되고야 말았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보란 듯이 새 차를 구입하면 제 인생도 한층 업그레이드될것같았으며
신형 자동차 무리에 합류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기름만 넣으면 세상 끝까지 달릴 줄 알았던 rando와 시절 인연이 다하여 오늘 영영 이별을 했습니다. 사람이나 반려 동물에게만 피가 흐르는 줄 알았는데 한낱 기름먹는 쇠덩어리에게도 아주 깊은 정이 흐르고 배인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금속에도 사람 못지않은 뜨거운 피가 절절히 흐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운전석과 시트, 차량의 앞뒤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볼을 대어 보았습니다. 시동이 꺼져 있음에도 따스했습니다. 손바닥에 물기가 서려있는 것은 나의 눈물일 뿐이지 rando가 흘리는 눈물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정말 작별을 고합니다. 18년 동안 차 안에 쏟아놓은 무수한 이야기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숱한 언어들이 휘발되어 사라지려 합니다.
그나마 이만큼이나 절약하며 어려운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rando 덕분입니다. 25년 동안 산중을 오가는 왕복 2시간의 출퇴근 거리를 무탈하게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모두 rando 덕분입니다.
30대의 젊은 청춘이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 rando와 함께 했던 긴 여정에 뜨거운 눈물로 작별을 고합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라! 했건만, 핏덩이 아이를 몰래 남겨두고 외간 남자를 따라 떠나는 모습이랄까요.
제가 기껏 해줄 수 있는 일이란, rando를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막걸리를 구석구석 뿌려주며 ‘고맙다. 그간 고생 많았다. 이제 푹 쉬렴.’ 인사를 전하며 폐차장까지 직접 차를 몰아 배웅해 준 것이 고작입니다.
몆 시간 후면 제 몸이 산산조각이 되는 줄도 모르고 주인을 끝까지 안전하게 모셔준 my lover rando. 산더미처럼 쌓인 폐차장에 rando를 내 팽개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외진 시골길에는 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my lover rando, my family rando, good bye, forever rem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