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Jan 19. 2024

귀인이 내 옆에 있다

그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어라

 아주 가까이 살고 있었지만 귀인 인 줄 몰랐다. 귀인을 알아보는데 25년이 걸렸다. 전주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한 곳.

백년가게 로선정되어'김치명장'의 칭호를 받았지만 세상의 평가에 무 반응이다. 일 년에 서너 번씩 가게에 들러 콩나물 국밥을 먹었다. 하지만 주인에 대한 기억이  없다. 직원들과 똑같이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히 서빙을 하기 때문이다.


국밥집에 있던 통나무 의자가 절간으로 들어왔다. 의자가 온 뒤로 25년이 흘러서야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눴다. 가끔 뵈었던 그분이 바로 국밥집 대표님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밖에서 듣던 어마어마한 명성에 비해, 너무나 평범한 맏언니 모습.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겸손함이 배인 까닭이다.


 주말이면 유독 국밥집 앞에만  줄을 선다. 주변에  유명한 맛집이 밀집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듯 콩나물국밥 집으로 몰려든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 비단 음식 한 가지 비법만은 아니리라.


함께 공연장에 간 적이 있었다. 캄캄한 야외에서 열리는 대사습 심청전 공연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 코트를 입고서  먼발치에 앉아 있었다.

저 멀리 무대에서 심봉사가 대뜸


"머시냐, 니는 얼른 000에 가서 모주나 댓 병 받아 오니라. 내가 눈은 멀었어도 거시기, 입맛은 고오~급잉께, 000 모주 아니면 안 마시는 거 다 알제."


 해진 대본을 건너 뛰어 즉석으로 대사를 바꿨다. 춥고 배고픈 무명의 예술인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나중에 알았다. 국밥집의 후원을 받았던 예술인들이 장인이 되고, 명창이 되었다. 오늘날 전주 예술을 찬란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무심코 신문을  펼쳐 보다가 그대로 심장이 굳어 버렸다.  

많이 본, 아니 조금 전까지  통화한 그분께서 활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글을 읽어 내려 갈수록  얇은 신문지가 파르르 흔들거렸다. 간신히 신문 을 움켜쥐며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손님이 주무시는 동안에도 펄펄 끓고 있는 육수처럼 글 솜씨 또한  진국이다. 

겨우 네 살 차이 건만 다시 태어난다면 모를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의 사람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자!

 오늘 일은 오늘!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국밥집에서!

 쓰잘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 것!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반드시 주인이 가게를 꼭 지키는 것!


 철칙이라고 했다. 

국밥과 가족이 세상에 전부라고 했다.

 콩나물 국밥이 인생이라고 했다.

 글쓰기는 평안이라고 했다.

 그래서 25년을 가까이 살면서도 사사로이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돌아보건대, 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매 삶에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치열하게 살지는 못했다. 그저 적당히, 남이 나한테 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주고받으며 '착하면 당한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살았다.

귀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지금의 명성이 최선을 다하는 치열한 삶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치열하다'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귀인을 통해 깨달았다. 


 '괜찮아~이 정도면 됐지 뭐.' 하는 사람보다, ' 더 잘할 수 있지? 더 분발해 봐!'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격려해 주는 사람이 삶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 귀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하던가? 나를 일깨우고 각성시키는 사람이 바로 귀인이지.

나는 제대로 귀인을 만났다.

수양산 버들이 광동 8십 리라고, 국밥 집 큰 나무 아래,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간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 발로는 열심히 국밥을 끓이고, 다른 한 발로는 열심히 베풀고 후원한다. 자전거 페달을 쉼 없이 굴리고 있다.


 귀인을 미리 알아보았더라면 나의 삶이 엄청 변화하고 발전했을 텐데, 때 늦은  후회를 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기약하며 가장 먼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덮어둔 노트북(windowXp)을 십 년 만에 꺼냈다. 이미 고장이 나 있었다. 나중에~ 다음에~하면서 미루다 보니 새로 장만하는데 6개월, 전원을 켜는데 1년이 걸렸다. 이런 게으른 천성을 죽비로 호되게 내려친 분이 바로 귀인이시다.


내 나이 육십에  다시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치열한 삶. 그대로를 보여주는 귀인을 너무나 닮고 싶어서ᆢ호랑이 그리는 연습을 하다 보면 고양이는 그릴 수 있다던데ᆢ 그 고양이를 그릴까 싶어서.

대표님~저 브런치 작가됐어요.

일 년간 치열하게 써볼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