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Jan 26. 2024

임이 오시는지

점집 순례

 몇 년 전, 정초부터 동양 철학인 명리학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독서도 할 겸 호기심 반, 으로 시작한 책 읽기는 늦가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약 이십 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 사주는 전생의 업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을 말한다. 윤회설을 믿는 나에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내 사주가 궁금해서 생긴 것 과 다르게(?) 어지간히 빠치고 돌아다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사주를 들이밀 때마다 노상 듣는 얘기는 ‘사슴이 끄는 금으로 만든 수레를 타고서 온갖 귀인들의 도움으로 평생을 복 받으며 잘 산다’(金與錄)’라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금수레는커녕 나날이 빚만 수레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신경성 두통과 불면증, 만성적인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어서 금수레고 나발이고 간에 우선 당장 사슴뿔이라도 잘라서 보약을 해 먹어야 할 판이니, 내밀었던 복채 생각에 병이 더 도질 지경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기갈이 심해져서 저 멀리 도사들의 명당 터인 계룡산 심원사 계곡으로, 흑석골 앉은뱅이 철학관, 굴다리 방앗간 옆 지리산 도령, 어전터널 애기동자, 앉아서 천리, 서서 만리를 본다는 꽃깔봉 선녀보살..... 유명하다는 곳은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한 해 한 해, 복채로 내버린 돈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중형 승용차 한 대 값은 넘었을 것이다.


 혹시 이것도 사주 중독증인가 싶어 넌지시 옆 사람을 찔러보면 웬걸, 이십 대 초반 아가씨들 조차 각자 유명하다는 도사님 한 둘은 다 꿰차고 있었다. 수시로 집안일을 상의하거나 꿈 해몽까지 부탁하며 가까이 지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사도니, 미신이니 하며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으려는 독실한 신도 들조차,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쫓아다니는 것이 보통의 삶인 것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다른 날에는 멀쩡하다가 비실비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발동이 걸린다. 보통 사람들은 동동주 한잔과 파전이 그립다던데, 어김없이 점 보러 가는 이 들리곤 하니 대체 이 귀신은 무슨 수로 떼어낸다 말인가.

 머리에 꽃을 꽂고서 헤벌레 웃고 다니는 광녀보다는 좀 나아(?) 보이긴 하지만 점잖은 자리에서 트림이나 방귀나 다 같이 쪽팔리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내가 비 오는 날마다 우산을 쓰고 그토록 점집을 순례 아닌 순례를 다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화투장 비광에 그려진 파란 우산을 쓴 빨간 옷의 귀인이 언제쯤이면 내 앞에다 돈 가방을 척 허니 던져 주고 갈까, 싶어 안달이 나서 점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태껏  허벌나게 다녀온 점집은  다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아무개한테 전화를 걸어 ‘어디 잘 보는데 없나?’ 하고 운을 떼면, 사람도 문자도 전화도 잘근잘근 씹어대기 좋아하는 인간이 이런 일에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침을 튀기며 용하다는 곳을 추천해 준다. 자기가  말해서 왔다고 하면 복채도 깎아 줄 거라면서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미리 점집에 예약까지 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솔깃해져서 다른 아무개한테 전화를 걸어 점심이나 먹을 겸, 아무개가 추천한 곳에 한번 가보자고 속내를 내비치면

 ‘여봐! 니는 아직도 갸, 말을 믿니? 잘 본다고 해서 가 봤더니 내가 발가락으로 짚어도 그 정도는 보겠더라.’ 

 둘 다 사기꾼이라며 까락까락 흉을 본다. 그러고 나서는 진짜로 족집게 도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내 팔을 잡아 끈다. 족집게는 여자들만의 미용 도구인 줄 알았는데 족집게 도사를 옆에 두고 사는 것을 보면 요긴하긴 한가 보다. 아니면 그 족집게랑 고춧가루가 묻었던지, 다단계처럼 한 사람 끌고 가면 수당이라도 받는 것 인지, 족집게 명예 홍보 대사인양 먼저 설레발을 친다. 또, 혹시나 싶어 미친 척 따라가는 내가 미친년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점집을 찾아가는 목적은 거의 똑같지 않을까 싶다. 언제쯤이면 운수대통 할까? 이사를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남편한테 애인이 생긴 건 아닌가? 얼굴에 있는 점을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제 꿈에 이빨이 톡 부러지는 꿈을 꾸었는데 혹시 오늘 내 다리가 작씬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만 원 내외의 복채로 자기 일생을 송두리째 걸어 본다는 게 우습고 저 자리에 앉은 사람은 과연 자신의 앞날을 훤히 꿰뚫고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진짜 살아온 내력을 들여다본 듯 좔좔 읽어낼 때면 소름이 끼친다.

그래 그렇게, 빨간 옷의 비광 귀인을 어서 빨리 만날 생각으로 용하다는 곳을 찾아가면 또 그놈의 만져 보지도 못한 금수레가 어쩌고, 수레 끄는 사슴이 암놈 입네, 수놈 입네 저쩌고...

 앉은자리에선 조금은 위로가 되는가 싶지만, 돌아 나오는 순간 소금 한 됫박을 씹은  허무가 씁쓸히 배어 나온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쪽! 소리 나게 잘 맞춘다고 조잘거리니, 친구 밥 사 먹여야지, 족집게가 했던 을 되씹어 이야기하느라 커피 한 잔 마셔야지, 기름 값 들어, 시간 뺏겨, 복채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거기다 살을 풀어야 하네, 굿을 해야 하네, 겁을 주면 접시 하나만 깨져도 정말 그런가 싶어 잠도 오지 않는다. 차라리 비 오는 날 누워서 잠이나 퍼 잤으면 돈도 안 들고 걱정도 없을 터인데 미련한 중생인지라 비 오는 날이면 또 그분이 오신 것 (占神)처럼 벌떡, 또 다른 족집게를 찾아가고 싶은 것은 무슨 조화 속이란 말인가?


그렇게 비님 오시는 날마다 돌아다녔으면 성의를 봐서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과의 탈을 쓴 돈 상자, (이왕이면 오만 원권) 하나라도 던져 주었더라면 이리 야속 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레에 금은커녕 빚이 쌓이고 쌓여 바퀴가 주저앉아서 꽃보다 귀한 사슴이 도망갈 지경에 이르러서야 점집의 발을 뚝 끊어버렸다.

대신 금 수레 끄는 사슴뿔은 혹시 몰라서 나중을 위해 고이 아껴두고(?) 싸디 싼 뉴질랜드산 녹용으로 몸보신을 한 후에서야 명리학이란 책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생의 업장 그대로의 모습이 지금의 사주팔자 라 한다면 똑같은 사주로 태어난 사람 중에 누구는 임금이 되고 누구는 걸인이 되는 것은 부모와 태어난 환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부귀빈천, 길흉화복, 운의 방향이 고리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빼어나게 잘난 사주여도 막상 인간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는 자신뿐 아니라 외부의 조건에 의하여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사주 따로, 이론 따로, 현실 따로, 따로국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고속도로처럼 잘 나가는 사람은 원래부터 사주가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처럼(?) 못나고 어긋나고 부서지고 깨지며 찌그러진 사주는 정녕 바꿀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미리부터 절망하거나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사주팔자는 관상만 못하며, 관상은 또 심상만 못하다 했으니 이는 거꾸로 말하면 마음을 잘 다스리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얼굴의 상이 바뀌고 얼굴의 상이 바뀌면 사주팔자도 너끈히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오행(木 火 土 金 水)과 음양(陰陽)을 파악하여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부축하는 방법으로 중화를 이루여 균형을 잡아 주는 게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의 팔자를 알기 위해서는 나처럼 책을 사서 연구하거나 또 용하다는 곳을 찾아야 하는 악순환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팔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명 짧고 돈 많은 영감님도 아니고, 과부댁도 아니다. 로또 복권도 아니다.

 바늘이 흔들리면 실을 꿸 수가 없듯이 흔들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다스리는 게 가장 확실한 팔자를 고치는 방법이다. 요동치고 천불이 나는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점차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횟수가 줄어들기 마련이고 쉽사리 어떠한 유혹과 욕망에도 휘말리지 않게 된다.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면 베푸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되어 전생의 업장과 현세의 죄과를 소멸시켜 나중엔 사주팔자의 글자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노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사주팔자 역시 자신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음을, 일 년 여 동안 책을 읽고 난 뒤의 내 나름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빨간 옷 입으시고 검은 우산을 쓰신 오매불망 나의 고운 귀인님은 언제나 오 시련 고. 하필 금값이 폭등해서 못 오시는고.

수레를 끌 사슴들이 씨가 말라서 못 오신다면 택배로 부쳐도 되는뎅.     

네이버참조


이전 01화 귀인이 내 옆에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