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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r 29. 2024

푼수가 우물에 빠진 날

불교 동아리 모임의 총무를 맡은 지도 어언 십여 년이 지났다. 약 삼십여 명  정도의 회원이 모이다 보니 바람 잘 날 없이 시끄럽지만  속속들이 개인 사정을 나 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회장은 마이크 잡고 인사말과  지갑을 여는 일 외에는 할 일이 별라 없다. 그러한대도 시켜만 준다면 서로 하려는 눈치이다. 성가신 일, 궂은 일은 총무가 다 알아서 한다. 회원들의 경조사에 회장과 총무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대세는 회장 몫이고, 실세는 총무 몫이다. 


어느 조직이든 회장과 총무의 관계가 무던하면 그 조직은 결속력이 높아서 단합도 잘되고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장과 총무사이가 틀어지면 웬수도 이런 수가없다.

회장 편, 총무 편, 서로 갈려서 물어뜯고  잡아먹어서 난리이다.  깽판이 나다 못해 급기야 고소 고발까지 이어져서  진흙탕 싸움이 되는 걸 많이 보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모시고? 있는 노빠꾸 회장님은 무던한 편이다. 그러니 장기 집권을 하는 것이다.


"이거 특별하게 들어온 입장권인데 내가 일이 생겨 못 가게 생겼네. 총무가 알아서  소리 안 나게 처리하셔."


뭐든 완장과 감투는 쓰고 볼일이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던 오페라 공연 티켓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한우 고기를 보더라도 A+ 보다는 A++이 훨씬 더 값지듯이 그냥 vip아닌 vvip티켓이다. 그것도 4장이나 된다


 "어휴~회장님, 우리가 어디 장사  한두 번 하던가유? 걱정 붙들어 매시쇼잉.

자알~처리할께유. 충성!"


티켓에는 vvip240,000원이라고 쓰여있다. 백만 원 가까이 되는  거금이다.

이것을 몰래 당근에 웃돈 받고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머리를 흔들며  나를 제외한 명에게 은밀히 전화를 건다. 가장  일 순위는 묻고 따지고 할 것 없이 나한테 제일 잘하는 사람이 최우선 순위이다.

자신의 부모나 형제, 가족에게는 인간성 파탄자라 할지라도, 싸가지가 바가지라고 소문 나서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무조건 나한테 잘하는 사람이 최고이다.


 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총무님  생각나서 사 왔다면서 회원들 몰래 챙겨주던  실크 스카프, 향수, 원산지 커피ᆢᆢ.

그네들에게 신세를 갚을 최고의 찬스이다.


 내게 최고로 잘하는 사람을  추려내서

은밀하고 조용하게 말을 건넨다


" 잘 계시지요? 그냥 제 이야기 조용히 듣고만 계셔요. 이번에 소리전당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거 아시죠? 시내에 온통 플랭카드로 도배를 해놓았더라고요. 노빠꾸 회장님께서 티켓을  아주 어렵게 구했는데 4장밖에 없어요.  그동안 제게 너무 잘해주셔서  특별히 생각나서 연락드렸어요. 꼭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꼭 비밀이에요."


를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강조한다.


노빠꾸 회장님이 총무 맘대로 하라고 했으니 내가 당근에 팔든지, 내 사돈의 팔촌까지 부르던지, 무소 불위의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지만 이런 짜잔한 일로 구설수에 오르면 총무 모가지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한다. 이렇게 종종 공연 티켓이나 기관 단체에서 보내주는 소정의 기념품도 이런 식으로 짬짜미해서 나눠가지곤 한다. 다같은 한통속이라고 할까? 특혜라고 할까?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은 꼭 그 조직의 회장과 총무에게 '싸바싸바 '를 아주 잘하다 보니 언제나 일 순위에 뽑히는 행운을 안겨준다. 이런 맛에  총무를 하는 것이다.


 찍어서  명만 추려내어  전화를 거니,

 '이런 성은이 망극가 있나?'

담그던 김치 다라이도 내 팽개치고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모여들었다.


무슨 비밀결사대 마냥 서로 목소리를 낮추며 히히 낙락 하며 소리의 전당 앞에서 밥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하는데,

어째~조용하다 못해 공허한  바람이 분다.

분명 이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차량이 몰려와서 아수라장이 될 텐데 너무~요하다.

대 공연장 입구의 휘황찬란한  조명등도 꺼져 있어서 어둑하다.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총무가 몰래  티켓을 가로등에 비춰보니 이런~ 이런~ 변있나? 오늘이 아닌 다음 주 일요일 공연이다.

그걸 직감한 순간, 총무는 과장되게 오버 액션으로  먼저 선방을 날리며 징징거린다.

"아이고~~ 언니들 큰일 나 불었어유.

어떡하면 좋아유?제가 치매끼가 중증인가봐유.

요즘 어쩐지 자동차 키랑 지갑도 자주 잃어버려서 혹시나 했는데 치매가 확실한가봐유, 오늘 공연인 줄 알았는데 담주 일욜이네유. 언니들한테 죄송해서 어쩌쥬? 앞날이 구만리인데 벌써 치매가 걸렸나봐유? 징징~"

총무가 갑자기  이 난리 부르스를 치며 선방을 날리니까 뭐라 혼내지도 못하고 뻥쪄있다. 모두의 표정이 사자성어로 '대략 난감'이라고 쓰여있다.


비밀 결사대 네 명 중에서 김치다라이 팽개치고 달려오신 A언니가 점잖게 한마디 한다.


"아이고, 난 또 뭐라고... 그나마 날짜가 안 지났으니 천만다행일세. 일하다 보면  그러는 수가 있어. 담주에  다시  만나면 되지.  이깟일로 징징거려. 징징 뚝!"


옆에 있던  B언니가 명언을 남긴다.

"난 오페라 공연 보다 우리 총무가 나를 특별히 불러준 게 고마워서  나왔지 뭐야.  오페라 그까짓 것 안 보면 어때.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데이트하며 노니는 게 행복이지. 오페라가 대수야."


역쉬, 똑똑 새 언니답게 말도 참 예쁘게 하신다.  


 사실 노빠꾸 회장이 티켓을 건네주었을 때부터  이미 단이 날 징조가 보이긴 했다. 날짜는 대충 살피고는  vvip 240,000원 숫자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근에 몰래 팔까? 누구를 부를까나? 이런 궁리만 하다가 개망신을 스스로 자초하게 된 것이다.

vvip티켓으로 거만을 떨다가  우물에 빠진 어느 푼수  총무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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