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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12. 2024

저수지 아이들

간첩놀이


“철호, 빵야! 빵야!”


“와~ 인민군 세 명이 모두 죽었다! 국군 만세!

    

부잣집 한 두 집에나 있었던 텔레비전을 동냥하듯 얻어 보던 시절.

밤이 기울도록 우르르 몰려다니며 그때 한참 유행이었던 <전우>라는 전쟁드라마를 흉내 내어 ‘간첩살이’ 놀이를 했다. 마을의 아이들 열댓 명이 무리를 지어 할 수 있는 놀이로는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적군대장과 아군대장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병사를 지목한다. 똘똘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아이 순서대로 하나 둘 뽑혀 각 대장의 뒷줄에 서면 가장 나중 비리비리하고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같은 아이만 남기 마련이다. 어쩌다 짝수로 끝나지 않고 홀수로 한 아이(역시, 나)가 남을 때면 ‘아따리껀다리’라는 이름으로 아무 쪽 에나 빌붙게 된다.


 부하들이 많을수록 대장 폼이 나기 마련인지,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면 분명 징징 울고 짜서 어른들이 간섭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아따리껀다리’는 상대편에게 잡혀도 승률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충 부대원이 정리되면 마을의 경계 구역을 정하고 집안,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지. 먼저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총을 쏘며, 반드시 손으로 터치해서 세 명 을 잡아야만 게임이 끝나는 게 그때의 규칙이었다.


국군대장과 인민군대장이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하여 공격과 수비를 정하면 우리는 각자 나무를 깎아서 만든 비장의 무기를 들고서 숨 막히는(?) 총격전을 치르기 위해 심호흡을 하곤 하였다.

국군대장이 돌아서서 천천히 열을 세는 동안 인민군은 각자의 은신처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찿---는 ---다?”

“아-----직. ”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찿---는---다?"

"아------직.”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찿---는---다?”

“.................”


국군의 수색 작전이 시작된다. X자로 벌려놓은 깻단,  나무를 쌓아 놓은 곳, 헛간, 음침한 도랑, 콩밭, 우물가... 어디에 숨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을 적에는 ‘못 찾겠다 말하라 오바?’ 하고 대장이 소리를 지르면, 적군은 ‘야 -호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어야 한다. 그 목소리를 따라 작전회의를 하고 전략을 세우며 은신처를 알아내어 발소리를 죽여 가며 급습한다.


고요도 잠시, 여기저기서 우당탕탕, 엎어지고 넘어지며 다급히 뛰어다니는 소리에 개들까지 합세하여 온 동네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손이 닿아야만 죽는 규칙 때문에 총을 맞고도 끄떡도 하지 않고 도망치기 일쑤여서 매번 달리기에서 승부가 났다.


이때의 발군의 실력으로 운동회 때마다 마을 대항 달리기 시합에서 우리가 일등을 휩쓸곤 했다. 물론 나는 한결같은 ‘아따리껀다리’ 신세라서 출전하지도 못했지만 부상으로 받은 연필과 공책이 나에게 까지 전달되곤 하였다.

그 찐한 싸나이(?) 의리 때문에 아파서 학교는 결석해도 간첩살이 놀이엔 충성을 다하여 참석하곤 하였다.

그때 우리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들이 한두 가지 가 아니었다.


달리기 선수였던 종호는 도망을 치다가 인분을 가득 넣은 호박 구덩이에 깊이 빠져 우리들이 힘을 합쳐 끌어내기도 했고, 키 작은 용철이는 개집에 숨어들었다가 마침 갓 낳은 새끼를 지키고 있던 어미 개 에게 엉덩이를 깨물려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위치가 노출되어 잡히고말았다.


놀이 도중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중에서 가장 으뜸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도 웬만큼 먹고(그래봤자 열두어 살) 힘도 세서 부대장 계급을 달았던 영기오빠는 수십 발의 총을 맞고도 끄떡없이 펄펄 살아서 도망을 치다가 포위망이 좁혀들자 사극에 나오는 비밀무사처럼 훌쩍 담을 넘어 외양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을 하고서 우리들은 모두 다 영기오빠를 올려다보았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자 영기오빠는 갑자기 요샛말로 ‘필’ 을 받았는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고서는


 “으하하하, 나는 파란 해골 십삼호이다! 으하하하~~ 날 잡아 ~봐~~라." 


하면서 으스댔다.

때는 음력 보름이라, 대낮 같이 밝은 달 아래 별님도 총총, 나무들도 총총, 높은 지붕 위에서 두 팔을 벌려 서있는 모습이 꼭, 전지전능한 어린 교주가 어리석은 신도들에게 은총을 내리는 딱 그 모양새인데 어쩔 것이냐, 그냥 여기에서 끝났으면 배경 좋고 그림 좋고 다 좋았을 것을.

다시 한번


 "날~잡~아~보~~ㅏ~ㄹ?"

'우~~당~탕~탕!!풀썩~~뿌지직??'


 아직 때가 아니어서 전지전능을 얻지 못했는지, 손 없는 날로 잡지 않아서 왕재수가 옴 붙어서인지, 영기오빠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거꾸로 지붕과 함께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는 갑자기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영기오빠를 보면서 놀란 나머지 침을 한번 꼴깍하고 넘길 무렵,

 “아~~악 사람 살~~려~~도, 도, 도,둑이야!!”

봉춘이 아저씨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기오빠가 떨어진 곳이 봉춘이 아저씨네 외양간이었던 것이다. 소도둑들이 극성인지라 아저씨는 식구들과 함께 잠들지 않고 외양간 쪽방에서 소를 지키며 곤한 잠을 자고 있던 참이었는데, 난데없이 지붕 무너지는 소리에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고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어른 걸음으로 아홉 걸음 반, 떨어진 안방의 식구들은 소도둑이 들어와서 일(?) 을 내는 줄 알고 오금이 저려 와서 누구 한 사람 나와 볼 엄두내지 못하고 문고리만 잡고서 와들와들 떨고 있을 따름이었다. 기절한 봉춘이 아저씨는 아저씨니께 그렇다 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얻어맞은 쪽은 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녁나절 맘씨 좋은 주인 아자씨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여물을 쑤어주어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서 겨우 소화를 시킨 후, 네다리를 오므려 꿀잠을 자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와~~그~르~르~~~ 우~당~탕~탕~~ 풀썩!!' 하면서 떨어진 지붕조각들과 덩어리(?)에 놀라 되 새김질해 놓은 여물들이 다시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가 하면 혼비백산한 소떼들이 '음 머~음 머~'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느라 목에 달아놓은 방울소리가 한창 신이 오른 무녀의 방ㅈ울처럼 마구 흔들렸다.


봉춘이 아자씨나, 소 들이나, 살다 살다 평생에 이렇게 놀란 꼴은 처음이었으리라. 나중 진정이 되어 봉춘이 아저씨도 깨어나고 소 방울도 잠잠 해졌을 무렵 깜빡 잊고 있었던 영기오빠를 더듬더듬 찾아 보니 낼 모래 치우려고 쌓아 놓은 수북한 소똥에 푹 처 박혀서 두엄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나.


영기오빠는 지붕조각에 몇 군데 멍이 든 것 빼고는 의외로 멀쩡했다. 천만다행으로 물렁 푹신한 소똥무더기에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소들 한가운데 떨어졌더라면 놀란 소떼들 발에 밟히거나 뿔에 찔려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지경이었으니, 우리는 간첩 살이 놀이를 하다 하마터면 똘똘한 부대장을 잃어버릴 뻔했다.


그 다음 날, 봉춘이 아저씨가 지붕 위로 올라가  손가락을 덜덜 떨며 망치질을 했지만 우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으시딱딱 하게도  그 재미난 간첩살이 를 했다. 물론 영기오빠는 멍든데 치료할 겸 자숙하는 의미에서 며칠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 후, 무쇠 솥뚜껑을 깨물어 먹을(?) 정도로 단단하고 팔팔했던 봉춘이 아저씨가 잠을 자다가 가끔씩 경기를 하는 지병이 생겨났다는데, 그분 사주에는 90세 까지는 끄떡없을 거 라했지만, 그만 87세로 돌아가신 걸 보면, 지병이 원인 이 되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들에게 무너진 게 어디 봉춘이 아저씨 지붕뿐이었을까?

우리들이 휩쓸고 지나는 곳마다 야생의 열매, 새알, 개구리, 가재, 곤충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맨 꼭대기의 것들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래서 우리 동네 까치집은 우리들의 낌새를 미리 알고서 저 높은 꼭대기에다가 집을 지었을까?


서리는 하되 절대로 도적질(?)은 하지 않았던 그때의 우리들.

지금처럼 인재교육, 영재교육, 특기적성교육, 그딴 거 하나 배우지 않았어도 잘들만 커서 애도 잘 낳고, 부모님께 효도도 잘하고, 돈 도 잘 벌면서 잘만 살더라 뭐.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깔깔거리던 우리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깨끗하게 맑았던 순백의 순수 소리들을,

 혹시 당산나무 등걸에 귀를 기울이면

 시냇가의 넓적한 돌멩이를 살짝 들춰보면

 우리들의 웃음소리를, 순수소리를 다시 들려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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