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Apr 05. 2024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들처럼

연어를 잉어로 대신합니다.

내가 아직 땅꼬마였을 무렵 마을 앞 저수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인 줄 알았다. 그물을 던졌다 하면 팔뚝만 한 잉어와 가물치, 참붕어는 물론이요, 장어, 빠가사리, 쏘가리, 메기들이 울타리에 돔부콩 매달리듯 줄줄이 올라왔다. 저수지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들은 산 들판에 널려 있는 약초요 나물들이며, 우렁이나 조개 등은 산열매나 버섯과 같은 것이라 여겼다. 깊은 산중엔 진귀한 산삼이 있듯이 수심 깊은 저수지에도

  비늘 달린 산삼(?)이 꼬리를 흔들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여름철 큰 비가 내려 논두렁에까지, 고기들이 넘쳐 날 때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한바탕 물고기들과 전쟁이 치러지면 그다음은 우물가가 시끌벅적하다. 김장철에나 사용하는 커다란 고무대야에는 싱싱한 배추만큼이나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고기들로 가득하다.

연신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언니들도 신이 다. 버팅기는 고기들을 꽉 쥐고서 배를 가르는 아버지가 제일 바쁘시다. 그 와중에도 배가 불룩한 참붕어를 손질할 때면 알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손에 파란 힘줄이 돋는다.


샛노란 알만을 따로 양푼에 모아 두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함박웃음이다. 때로는 아버지의 힘센 손아귀를 벗어나 흙 마당으로 튕겨나가는 고기들의 거품질도 볼만한 풍경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키만 한 잉어나 가물치가 잡힐 적에는 그야말로 저수지의 산삼, ‘심봤다’이다.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는 한결 들뜬다.

“어미냐? 아까막시 큰 잉어가 잽혔는데, 퍼뜩 자전거 끌고 오너라. 산모에게는 잉어만 한 보약이 따로 없다니까. 펄떡펄떡 살아 있을 때 푹 고아야 약이 되니까, 후딱 와서 가져 가거래이.”

새끼줄로 칭칭 감은, ‘살아 있는 보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도 환하다.


그날 저녁 작은 물고기와 시래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은 왜 그리 맛이 있던지, 둘러앉은 식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히 맺히도록 맛이 좋았다. 아버지가 따로 양푼에 모아둔 붕어 알은 밥이 뜸 들일 무렵, 가마솥 한 귀퉁이에 한 보시기 따로 쪄냈다. 나는 고기보다, 붕어 알을 더 좋아해서 그것 한 가지만으로 밥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상어알인가, 머시깽인가는 먹어 본 적이 없어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먹어본 붕어 알은 이 세상에서 젤로 군침이 도는 맛난 음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 주둥이에 냠냠 넣어 주고 싶어서 세심하게 칼질을 하였으리라.


 한 번에 너무 많이 잡힌 물고기들은 장독대 위에서 줄 맞춰 누워있었다. 말린 고기들을 뒤집고 다니며 숫자를 세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한 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에서 말려진 고기들은 먹을 것이 귀한 겨울에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지 문 밖으로 함박눈이 소복이 내리고, 아궁이 군불에서는 붕어가 석쇠에 누워 몸을 뒤집으며 익어간다. 그 고소한 냄새에 누렁이 놈은 침을 흘리며 흰 눈이 쌓인 마당에다 제 발 도장을 찍으며 껑충껑충 뛰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민물고기를 맛나게 먹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증표로 남겨지는

다. 래. 끼.

속눈썹 위에 벌에 쏘인 것처럼 벌겋게 부풀어 오르면서 콩알 만 한 혹이 생기던

다. 래. 끼.

“얼라리~ 니, 또 비린 것 먹었구나. 히히, 니 혹시 붕어귀신 붙은 거 아니냐? 그러다 눈 봉사 되면 어쩌려고 그러냐?”


조무래기들이 걱정하는 척 놀리면서 겁을 준다. 그러면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 나름의 주술(?)을 아무도 몰래 준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잘 다니는 고샅 길에다 돌멩이 두 개를 벌려놓고서 그 위에다 사금파리를 걸쳐 둔다. 내 속눈썹 하나를 뽑아 사금파리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주술은 끝이 난다.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 지나가다가 모르고 그걸 차 버리면 내 다래끼가 그 사람으로 옮아진다는 게 내가 믿는 비방이다.


때로는 꾀를 내어 우리 집 문 앞이 아니라 옥순이네 집 앞에다 몰래 눈썹을 뽑아 놓고 온 적도 많았다. 왜냐면 그 애는 나보다 더 예쁘고 착해서 어른들에게 칭찬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옮으라는 옥순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했다. 결국엔 ‘누가 차 버리고 가나’ 대문 뒤에 숨어서 훔쳐보다가 개방정을 뛰며 노는 내 발길에 걷어 차인 것이 십중팔구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야! 다래끼, 학교 가자! 애꾸, 너 어디 가냐? 애꾸야, 놀자."


별명이 되어 불러댄 걸 보면 물고기를 입에 달고 살기는 살았나 보다.


우리 동네 저수지보다 더 크고 넓은 바다가 있다는 걸 서서히 눈치챘을 무렵이다. 조무래기들과 노는 게 시시해질 때쯤 나한테도 큰 변화의 물결이 다가왔다.

"니는 다 이쁘게 생겼는디, 다래끼가 좀 거시기하다."

그렇게 조심히 물어준 사람이 총각 선생님인지, 짝꿍 남자 아이인지 분명치는 않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일 것이다. 거울을 책갈피에 끼워두고서 틈만 나면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신통방통하게도 다래끼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고질병이다시피 한 다래끼를 아주 간단하게 치료했다.


훗훗, 더 이상 붕어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처럼 혹시 민물고기를 과다 섭취하면 사랑이라는 말을 빨리 알아챈다(?)는 학설은 없는지 궁금하다.

사랑(?)은 식성까지 바꿀 수 있다는 오묘한 진리를 일찍 깨달은 것은 암만 생각해도, 민물고기 때문인 것 같다. 다래끼만 아니었어도, 첫사랑(?)은 이루어졌을 터인데 말이다.


 다래끼 대신 여드름이 돋아나면서 내 유년은 끝이 났다. 

그때의 총각 선생님과 짝꿍 남자아이는 지금 어느 하늘에서 살고 있는지. 다래끼를 달고 다니던 계집아이를 가끔은 기억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들처럼 자꾸 회귀하려는 본능을 어느 누가 말릴수 있으랴.

(어릴 적, 민물고기를 많이 먹은 업장을 닦기 위해 주기적으로 저수지에 방생을 하고 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