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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l 02. 202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작년 봄, 재미 삼아 수세미를 심어보았습니다.

요즘엔 수세미를 관상용이 아닌 약용으로도 많이 심는 듯합니다. 저는 그냥 노란 꽃이 보고 싶어서 심어보았습니다.

 어린 날, 옆집에 심어져 있는 수세미를 울타리 너머 바라보면서 저도 수세미처럼 뻗어 가기를 소원했었지요.

시골소녀의 허망한 꿈과 불안한 미래, 도시에 대한 갈망을 살구나무 꼭대기 끝에까지 뻗어 올라가는 수세미에게, 대신 풀어놓고 싶었습니다. 

팔랑거리는 살구나무 잎사귀 사이로 피어있는 노란 꽃망울을 바라보면서 이유 없는 거친 격정과 반항을 조금이나마 누그릴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수세미나 나팔꽃처럼  높이 뻗어 올라가는 꽃들이나 식물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들, 내 키만큼 만큼밖에 바라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 갈망을 불태워 함께 뻗어 올라가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네이버 이미지 참조

수세미는 소녀시절 보았던 그때와 다름없이 노란 꽃을 피우며 맹렬한 속도로 뻗어 올라갔습니다. 새삼 수세미 꽃그늘에 앉아 있으려니 많은 생각들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가만 돌아보니 사춘기시절 느꼈던 야구공 크기의 암담한 번민 덩어리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웬걸 보름달만 하게 커져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세미는 변함없이 노란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었지만 저는 하릴없이 근심만 하다가, 나이만 들어버린 것입니다.

번민 덩어리가 커져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찌 손대볼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사이에도 수세미는 보란 듯 날마다 키를 늘려 뻗어 갔지요.

꽂진 자리에는 저마다 열매를 매달았고, 너무 빠르게 성장하여 무겁게 속을 채운 것 들은 태풍과 장마에 동강이 나서 부러지면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기후에 맞게 적절히 조절한 수세미는 가을이 다가오자  무게를 줄이고 비워내며 몸 안에서 그물망을 엮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서리가 내리자 수세미는 조금씩 몸 안에 물기를 거두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렁물렁 팽팽하게 가득 채워진 물기를 스스로 비워냈으며 비워낼수록 잎과 줄기도 함께 말라갔습니다. 가지가 끊어질 듯  축 처져 있던 몸통은 물기를 거두며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수백 개의 씨앗을 그물망 사이에다 촘촘히 채우고서는 성장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저는 분명 한 알의 씨앗을 심었을 뿐이었는데 수세미는 수십 개의 열매를 매달았고, 그 열매 속에는 다시 수백 개의 씨앗이 들어있으니, 저로써는 대박 난 농사를 지은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더 많은 씨앗을 잉태하며 채워지는 삶.

비우고 비울수록 더더욱 채워지며 충만해지는 삶. 그리고 긴 동면의 침묵.


검은 씨앗 하나에 사계절이 다 담겨있었습니다. 큰 우주, 나도 모르는 큰 세계가 그 안에 담겨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세미는 씨를 뿌린 주인에게 더 많은 양의 열매와 씨앗을 되돌려 준 것뿐만 아니라 저의 큰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저 작은 씨앗 하나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씨앗을 품고서 스러지는 일 년의 여정. 다시 윤회하듯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 수세미는 천 년 전에도 자잘한 노란 꽃을 피웠을 것이고 앞으로도 같은 노란 꽃을 피울 것이며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파란 열매를 맺고 그물을 엮어 가벼운 수세미로 생을 이어갈 것입니다. 흙이 있는 한, 저 씨앗은 천년을 품고 만년을 품으며 자연 속에서 우주 속에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씨앗이 다시 씨앗으로 돌아간다는 것.

묵직한 몸을 자기 스스로 가볍게 덜어내어 자기완성으로 가는 것.

본래 왔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일 년이 채 되지 못하는 짧은 시간에 한낱, 한 알의 씨앗인 수세미조차도 해탈 열반에 들어 자기 본래의 성품, 진여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하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저 한알의 수세미 만도 못하다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살아가는 동안 번민덩어리를 덜어내기는커녕 보름달처럼 부풀리고 말았으니 늘 고달프고 퍽퍽하게 사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 번민은 일 년이 나도록,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그라지지 않는 걸 보니 아직도 내 안에 덜어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수세미처럼 일 년에 한 번씩은, 삼 년, 오 년, 십 년 만에라도 몸 안에 있는 무거운 것들을 강제적으로 비워내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하여 봅니다.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여름.

잠을 자고 있던 씨앗은 다시 생명의 뿌리를 힘차게 내렸습니다. 본능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까지 가지를 뻗어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늘 그래 왔듯이 계절의 흐름에 기대어 찬란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식물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것입니다. 


하늘 끝까지 뻗어 올라 수백 개의 씨앗을 잉태한 채로  스스로를 비워낸 후에는  지상에 가볍게 내려올 것입니다.

무거운 몸을 덜어 가벼워진 자!

자신의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낸 자!

모든 번민을 여의고 苦에서 해방된 자! 


어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저 수세미뿐이겠습니까?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살다 이렇게  가는 것이지요.


저 높은 곳이 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었음을,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내려오는 것이

 더 높은 최상의 진리임을  수세미를 통해 배우고 또  배웁니다.

검은 씨앗 하나가 대우주이고 대진리이며 최상의 진리는  바로 空 의 자리임을 알고 또 알아갑니다. 

이렇듯 진리는  검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됨을 깨닫고 또 깨닫습니다.


나는 저 수세미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뻗어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비울줄 아는 사람,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누구누구를 말하기 이전에 우선 저부터 보름달만 한 번민 덩어리를 비우지는 못할망정 더 크게 부풀리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세미가 말 그대로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는 수세미로 이롭게 쓰이듯, 저 란 사람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으로, 사람노릇 제대로의 참사람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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