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은 홍시색

[애정을 담은 시선과 생각들]

by 쏘이

작년 어느 주말, 부모님이 부산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지냈다. 은퇴를 하신 두 분은 이제 언제든 서울로 올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은퇴하면 자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동시에 나의 일이 바빠져 그 생각은 현실화되지 못했었다. 아빠가 은퇴하신 후 언젠가 본가에서 평일 낮 아빠의 루틴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컴퓨터게임-TV시청-낮잠-산책-친구만나기를 반복하던 루틴은 내 눈에 무료해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소일거리를 해 볼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온 아빠의 답은 “지난 35년간 일과 생계의 압박에 살았는데 이젠 일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목적 잃고 배회하는 모습은 사실 여유를 즐기는 것이었다.


지난 주말은 가수 나훈아의 마지막 은퇴 콘서트 투어 중 마지막 일정이었다. 부모님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가수인 나훈아의 마지막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티켓을 예매했다. 사실 티켓은 친구를 통해 구했다. 80세가 가까운 가수의 은퇴투어 화력은 여전히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전국을 도는 투어임에도 불구하고 전 좌석은 순식간에 매진되었기에 손가락이 빠른 친구의 손을 빌렸다. 비록 내가 성공하진 않았지만 어찌저찌 구한 티켓을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내밀었다. 지난 주말, 부모님은 그 콘서트를 보러 올라오셨다.


콘서트 당일, 차로 부모님을 모시고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서울에 올 때마다 “딸이 여기 살아서 TV에서 뉴스에서 언급되던 곳을 실제로 본다”며 신기해 하신다. 같은 한국인데 한평생 부산에 살며 느낀 서울은 다른 어느나라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아빠세대의 지방사람들에게 서울은 기회의 땅인 동시에 살아남기에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척박한 땅이었다. 서울을 간다는 것은 함부로 하는 도전이자 살아남기 위해 무수한 긴장감을 안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서울로 여행을 오는 것은 해외여행보다도 부담이었다. 은퇴 후 모든 압박에서 벗어난 아빠는 이제서야 서울을 찬찬히 둘러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가 있었다.


체조경기장 옆 수영장에 주차를 하고 콘서트장 입구까지 부모님을 배웅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신화 콘서트를 꾸준히 보러 다닌 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이 날도 익숙한 동선을 따라 부모님을 안내했다. 콘서트장 근처는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관객의 연령대는 50대 이상, 우리 부모님의 연령대가 99.9%였다. 구부정하게 자녀의 부축을 받아 들어온 사람, 자녀가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 익숙한 공간의 낯선 풍경이었다. 이들이 인터파크에서 피나는 티켓팅을 성공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모두 나같은 자녀, 손주가 구해준 티켓으로 이 공간에 모였겠지. 나에겐 큰 의미 없는 이 가수가 여기 모인 사람들에겐 최고의 스타이자 설렘을 주는 대상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콘서트 관객들의 신나 보이는 표정은 자다 깬지 얼마 되지 않아 멍한 내 모습과 대비되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저 콘서트장으로 들어갈 이와 들어가지 않을 이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부모님을 콘서트장에서 배웅하고 끝나길 기다릴 겸 근처의 카페에 밀린 일을 하러 왔다. 카페는 서향이었다. 겨울이라 정오를 지나 서쪽으로 넘어가는 황혼이 카페로 길게 들어왔다. 지는 해를 맞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문득, 나훈아가 본인의 은퇴를 준비하는 방식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상태이지만 최고의 컨디션으로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1년을 바쳐 전국을 돌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스타, 나훈아는 내려오는 순간까지도 스타의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관람하지 않는 콘서트였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훈아의 콘서트는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은퇴를 준비하는 스타의 공연을 보는, 그런 콘서트였다. 인생의 황혼과 은퇴를 맞이한 이들의 마음이 어떤 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다. 글에서, 드라마에서 보이는 편집된 모습으로 마냥 쓸쓸하고 쓸모를 잃어버려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넘겨짚고 있을 뿐이다. 열심히 자신의 젊은 시절을 살아 내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이들을 뒷방의 늙은이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것을 무기력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바라본다. 이 또한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사람이 씌운 프레임인가 싶기도 했다.


훌륭히 은퇴를 맞이해 여유로운 인생을 즐기는 이들의 자녀에게 부모님의 은퇴는 마냥 즐겁지 않았다. 부모님의 은퇴는 나에게는 부모님과의 헤어짐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은퇴 후 자유롭고 건강하게 해외로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탁구를 치며 놀러가는 부모님이 아신다면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슬픔이었다. 다만, 영원히 직장에 다니고 나를 케어해 줄 것 같은 부모님이 더이상 나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은 언젠가 다가올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막연했던 은퇴가 사실이 된 것처럼, 막연한 헤어짐은 언젠가 사실이 될 것이다. 헤어짐은 은퇴와는 다른 차원의 상실이기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프게한다. 콘서트장에서 신나게 즐기는 부모님과 달리 카페에서 황혼을 이마에 맞던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선 차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많이 트셨다. 그 영향을 받아 나도 몇 가지의 나훈아 노래를 잘 알고 있었다. 나훈아 노래의 특징은 가사가 쉽고, 감정 전달이 직접적이라 어린 아이도 금방 이해되는 그런 노래였다. 그 중, 홍시는 쉽게 쓰여진 가사이자 경쾌한 멜로디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내용의 노래다. 홍시가 열릴 때면 한평생 자식을 향해 걱정하던 엄마가 그리워진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간 눈물을 흘리다 이제는 눈물이 말라버린 엄마가 그 노래를 부르며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가슴을 후벼파는 가사는 그저 듣기만 해도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너무한 점이 있다. 해가 길게 들어오는 서향의 카페에서 듣는 나훈아의 홍시는 멀쩡히 살아있는 엄마를 그립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홍시는 이제 나의 금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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