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시루 속에서 든 속편한 생각

[애정을 담은 시선과 생각들] 인류애가 사라지는 출근길의 단상

by 쏘이
KakaoTalk_20250724_102850204_01.jpg 사진과 내용은 관계없습니다:) 심신안정을 위한 사진입니다

인구 900만 이상의 메가시티에 사는 직장인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매일아침 지옥철을 경험한다. 지옥철 속에서는 제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예민해질 것이다. 서로를 날 선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특히 환영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시야가 좁아지고 관절이 굳어 몸의 움직임이 둔해 진 노인들이다. 좁은 영역을 비집고 파고들면서 타인의 몸을 제치는 그들의 행동엔 거침이 없다. 콩나물 시루 같이 빽빽한 곳에선 그런 배려 부족한 모습이 유난히 불쾌해진다. 조금만 밀쳐도 광범위한 공격이 가해지는 이 시루 속에선 가끔 날이 선 목소리도 많이 들린다.


이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예민함이 똘똘 뭉쳐 지하철을 가득 메운 상황이었다. 새로운 역에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미 꽉 찬 지하철을 꾹꾹 밀어가며 승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노인들은 경로석이 빌 때면 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빈틈없이 서있는 사람들을 밀치기를 서슴지 않았다. 밀치는 행위의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더 부딪혔고, 호흡은 가빠왔다.


그렇게 견디기를 몇 분 후, 내 몸이 지옥철을 해방될 시간이 왔다. 그 때, 나보다 앞에 선 여성의 날카로운 말이 울렸다. 문에 가까이 서있는 그녀의 뒤에 있던 할아버지는 빨리 내리려고 팔인지 몸인지로 여성을 밀고 있었나 보다. 내리기 직전, 그녀는 짜증 섞인 말을 뿌리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몸으로 본의 아닌 피해를 준 할아버지가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했다. 고개를 틀어 불편하지만 단단하게 걷는 할아버지를 슬쩍 바라보았다. “XX년이”. 안타까움이 사라지는 입모양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사라졌지만 씁쓸함이 차올랐다. 우리 부모님도 사회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 어떡하지.


물론, 우리 부모님은 그 할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하지 않고, 아직 경로우대석에 앉지도 않는다. 무례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과하게 조심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인들을 자주 마주한다.


괴팍하고 무례한 노인이 우리 사회에 그렇게 많은가? 그들의 기본 성정은 민폐를 끼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는가? 우리의 기억 속 할머니 할아버지는 표현은 조금 서툴지라도 항상 우리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인자한 모습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쁘고 사회에 피해만 끼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나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좁은 모집단의 한계로 접하지 못한 것 뿐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마다 어떤 불편한 신체상태를 가지고, 어떤 힘든 하루를 보내는지 짐작하며 매 순간 살 수는 없다. ‘본성은 좋은, 누군가의 가족이야’라는 전제를 깔고 사람을 이해할 여유도 없다. 날 선 말을 던진 그녀가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은 더 신체가 건강하고 넒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2초만 할애해서 상대방에게 향하던 날을 거둬줬으면 했다.


문 앞의 많은 사람을 제치고 내리려는 할아버지에게 “저도 내리니까 밀지 마세요”라는 듣는 이 마저 2차 피해를 당하는 불쾌감을 있는 대로 표현하는 소리 대신, “이번에 내릴 거라 문 앞에 서 있는 거니까 기다려주세요.”라는 식으로 조금 만 더 나긋하게 설명을 하는 수고로움을 가진다면. 할아버지가 멀어지는 사람의 뒷통수에 대고 입모양으로 쏟아내는 모욕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은 날이 서지 않은 말 한마디로, 자신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하며 다음에 부딪히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통제불가의 취객을 끌어안아 다독이는 시민의 품에서 난동이 곧 흐느낌으로 바뀐, 고단한 하루를 보낸 어느 동영상 속 아저씨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이니까.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항상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살지는 않는다. 그저, 누군가가 나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부드러운 지적을 하던 너그럽게 용서를 하여 존재로 인한 피해를 뉘우치고자 했다. 내 태도가 좋다고 전도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내 마음이 편하고 내 얼굴에 주름이 덜 생기니까 보톡스 비용을 아끼는 것이라는 정신승리가 나름 속 편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씁쓸함이 많이 들었던,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선 여유로운 출근길에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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