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취미로 어학원을 다녀온 후기
작년 기나긴 추석 연휴 동안 스페인 말라가를 다녀왔다. 사실 그 전 주에는 도쿄로 건축 전시와 답사를 빙자하여 다녀왔었다. 연속적인 여행은 피하고 싶었지만, 놓칠 수 없는 전시 일정과 연휴라는 기회를 외면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내 모습에 이제는 주변 사람들도 놀라지 않는다. 다만 몇 주 만에 만난 이가 “일본 다녀왔어요?”라며 SNS 속 이야기를 꺼냈을 때, “스페인 다녀왔어요”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머쓱했을 뿐이다.
언젠가 역술인이 내 사주에는 토(土)의 기운이 많고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유튜브의 어느 숏츠에서 ‘토가 많은 사람은 여행을 통해 그 기운을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봤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꾸준히 여행을 다녔다. 어쩔 수 없는 역마의 운명인건가. 우스갯삼아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 속에 슬쩍 사주를 핑계로 엮어보려 했다. 하지만 사실은 단순하게 나는 단지 세상의 모든 것과 그 원리가 너무나도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여행지는 새로운 알고싶은 것들 투성이인 곳이었다. 반복을 힘들어 하던 나에게 여행은 루틴한 일상에서 느끼던 염증에 변주를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이제는 더 이상 ‘강한 호기심의 발호’로 표를 끊지 않는다. 여러 이유로 마음속에서 여행의 의지가 끓어오를 때, 그때서야 떠난다. 그리고 여정이 시작되면 비행기에 앉아 “이번엔 왜 떠나야 했던 걸까. 그렇다면 무엇을 얻고 돌아올까.”라는 생각에 침잠한다. 지난 도쿄 여행은 놓치고 싶지 않은 건축 전시가 계기였지만 동시에 일 속에서 새로운 인풋이 필요했다. 아이디어를 더이상 인터넷이 아닌 오감을 통해 얻고 싶었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감각을 직접 자극하는 경험으로 뇌를 깨우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를 비행기에 올라 비로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스페인 여행은 조금 달랐다. 말라가는 건축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날씨가 늘 맑은 스페인의 중소 휴양도시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오전엔 어학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오후엔 도시를 여행했다. 어학연수와 일주일 살기 그리고 여행, 그 사이 어디쯤이였다. 잘 해야 된다는 압박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삶에서 벗어나 돈이 되지 않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잘 하지 못해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순수한 성취의 즐거움을 말이다.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대륙을 이동하는 동안 정리한 이번 여행의 이유였다.
내가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하자 다들 놀랐다. 이직도, 이민 계획도 없으면서 일주일 코스의 어학원을 간다는 건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돈과 시간, 거리 모든 면에서 비효율적이었다. 평소에 일을 효율적으로, 속도감 있게 하라고 다그치던 내가 그런 비효율을 하겠다는 말에 나에게 자주 혼나던 우리팀 막내가 가장 놀랐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효율’과 ‘속도‘, ’최적화’같은 목표로 굳어지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유연해 지고 싶었다.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은 나에게 효율과 유연함은 모두 필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이번 연휴에는 익숙한 언어와 환경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한국과 7시간의 시차가 있는 스페인은 시차만큼 문화적 괴리가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 커버가 없는 것부터 스페인어를 못하면 대화를 끊어버리는 일상까지, 익숙한 관습이 적용되지 않았다. 12년 전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이 곳은 그저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오랜만의 만남은 낯설었고 불쾌했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많이 변했기 때문일까. 강력한 첫만남은 굳어가던 내 생각의 틀을 망치로 땅! 하고 깨트렸다. 무방비로 부숴진 틀을 뛰어넘고 나와 다르게 사는 이들의 문화와 생각의 방식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혼란 속에서 스스로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되뇌이며 점차 편해져갔다.
어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또 다른 세계였다. 남편의 은퇴 후 전 세계를 여행하다 한달 간 정착하면서 수업을 듣는 미국 아줌마, 방학을 맞아 3주 간 등록한 독일의 고등학생, 안식년을 맞아 휴가차 말라가에 온 김에 수업을 듣는 러시아 은행원, 브라질 부동산 아줌마 등. 그들의 목적과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어학연수는 보통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이 가는 것 이었다. 그러나 이 곳 말라가의 교실 안에서 그것은 ‘삶의 방식’ 중 하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만 되뇌던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는 문장을 실제로 마주했다.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여행지의 나는 내가 뿌리내린 사회 속의 나와는 또다른 모습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기 위해 나도 나의 다양한 모습을 카멜레온처럼 드러낸다.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 인격또한 변하는 것인지, 그 나라의 물이 나를 변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모습에 짐짓 놀란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감사함과 애정을 표현한다. 짧은 만남 뒤 헤어지는 것이 한국에서보다 곱절은 더 아쉽게 느껴진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을 표현이라도 하는 양.
최근 나는 늘 어딘가에 끼어있는 기분이었다. 끝없이 기다리고 있는 성장의 압박과 해야 할 일의 더미, 날카로운 평가의 시선 사이에 낀. 아무도 나에게 하라고 시킨 적 없는 내가 원하던 것들이다. 내가 세운 목표들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자 보였다. 말라가에서의 시간은 그런 나를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했다. 지중해의 바람은 내 폐를 지나 온 몸을 환기시켜주었다. 안달루시아의 내리쬐는 햇빛은 내 머릿속을 환히 밝혀 주었다.
이번 여행은 잠시 멀어졌다고 느낀 나를 말라가에서 다시 만나고 온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