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말을 깨우는 이웃과 이별할 수 있을까

[애정을 담은 시선과 생각들]

by 쏘이

대학 전공별 자주 듣는 말이 밈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그 중 건축학 전공이라고 하면 으레 듣는 말은 “나중에 내 집 지어줘” 였다. 이 밈은 대학을 졸업하면 더이상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나에게 건축 중에서도 공동주택(공동주택은 아파트를 비롯하여 빌라, 연립 등 다양한 형태로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집을 통틀어 말하는 개념이다) 이라는 전문분야가 생겼다. 지금은 다른 분야를 하지만 내가 공동주택 설계를 한다고 하면서부터 새로운 밈 같은 질문이 몇 년 간 나를 따라왔다. “층간소음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질문자들은 나에게 명쾌한 해결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라 공동주택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고자 머릿속에서 짜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 질문 속에는 질문자의 고통이 녹아 있는 것도. 그리고 이 문제가 질문자들이 원하는 근본적 해결책 불가한 것 또한.


층간소음은 비단 아파트 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상가주택, 빌라,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주택에 살았는데, 어느 곳에 살든 층간소음은 존재했다. 내가 살았던 모든 집엔 항상 나의 주말 아침을 깨우는 이웃들이 있었다. 아침마다 피아노 연습을 하던 본가의 내 방 윗집 아이는 서툰 피아노 실력으로 잘 가다가 음이 틀리는 구간에서 꼭 나를 깨웠다. 몇 년 간 매 주말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듣다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느껴질 땐 내심 침대속에서 대견스러웠다. 서울로 취직 후 입주한 첫 아파트의 아랫집의 부부는 권태기가 왔던 건지 주말마다 심각한 말싸움을 했다. 그 집에 살 땐 아내분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아침부터 112에 신고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아침을 보냈다. 유달리 에너지가 넘치는 현재 아파트의 윗집 아이는 아침부터 쉬지 않고 좁은 집안을 배회한다. 엄마의 청소기가 굴러갈 동안은 잠잠하다 청소가 끝나면 이내 TV를 시청하며 발을 동동거리거나 온 집을 뛰어다니면서 늦잠자는 나를 깨워준다.


이렇게 매주 소음으로 얼굴한번 본 적 없는 위아래 이웃의 안녕을 확인하고 있다. 인류애가 충만한 것 처럼 말했지만 나 역시 이 소음을 마냥 유쾌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라 생각하여 서로 조심하고 이해하며 지내는 것뿐이다. 아직 내가 자녀가 없고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거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서로 배려하며 층간소음을 견디고 있지만, 우리사회 어딘가에선 층간소음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이들이 이웃집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소식도 많이 들려온다.


층간소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제일까? 최근 본 어느 프랑스 시리즈에선 파리의 아랫집 주인아주머니가 윗집의 쾅쾅거리는 소리에 위층을 쳐다보며 방에서 소리지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이웃의 생활소음이 들리는 것은 전 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외국에선 큰 문제로 번지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선 유독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두고, 혹자는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유난히 예민한 거라며 불편해하는 사람을 오히려 문제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유난히 예민한 것일까?


층간소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그저 예민한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공동주택은 다른 나라에 비해 건물의 뼈대인 구조체를 통해 소음이 잘 전달되는 구조이다. 가능한 많은 세대를 경제적으로 쌓으려면 건물 자체의 무게를 줄여야 했기에 최소한의 바닥과 구조체 두께를 적용했다. 거기에 벽이 뼈대 역할을 하는 구조로 기둥에 비해 넓은 면적으로 소음이 타고 흐른다. 반면 외국의 공동주택 중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은 두꺼운 돌로 지어진 곳이 많다. 거기에 자중을 걱정할 만큼 많은 세대를 쌓지 않는 중, 저층의 구조였기에 구조를 더 두껍게 하여 소음이 적게 전달되도록 짓는 것이 가능했다. 소음이 세계의 공동주택의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심하게 느끼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소음에 취약한 공동주택이지만 공동주택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되는 주거 형태이다.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공동주택을 안전자산의 한 형태로 바라보고 건설을 하는 사업자들은 상품으로 바라본다. 살기위한 집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 사업에서 이윤이 남지 않지만 잘못 지으면 평생 욕먹는 설계자와 실제로 거주하려는 실거주자 뿐이다.


우리나라의 공동주택은 땅만 파고 건물은 올라 가지도 않았는데 보지도 않고 완판 되는 시장이다. 그렇다 보니 사업자들의 첫 번째 목표는 가능한 많이 팔 수 있는 계획이다. 일단 팔고나서 입주하는 날이 되면 사업자들의 사업은 끝이 난다. 입주 후의 상황은 사업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사업성이란 눈앞의 떡 앞에서 주택 소유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게 된다. 사업자들은 사업성을 감소하면서까지 소음환경을 개선해야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답이 없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려는 윗집의 아이는 주말을 맞이해 여전히 2시간째 뛰어다니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정의 내린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은 해답을 주는 사람이었다. 건축가라면 들어오는 건축 질문에 전문가로서 건축사인 나는 자신만의 해답을 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밈처럼 나에게 쏟아지던 그 질문에 나는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없다. 여러 분야의 이해관계가 깊이 꽂혀 있는 이 시장은 건축가가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곳이 된 지 오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라가여야했지만 꼭 말라가일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