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별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싫다
나는 화를 잘 안내는 편이다. 순간 욱했던 감정은 금세 잊어버리고,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도 내가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발작 버튼’은 있다.
나는 ‘자유의지(free will)’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을 통제하려 들면, 그 버튼이 ‘꾸욱~’ 눌리기 시작한다. 먼저, 누군가 내 자유 영역 안의 행동을 세세히 간섭하면 버튼이 예열된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에게 온전한 즐거움을 주는 것 이었을 때, 결국 버튼은 눌리고 분노의 뚜껑이 열린다.
사실, 이 문제는 사람에 따라 전혀 화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피해를 받았거나, 상대방이 나를 무례하게 대한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낼 때,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분노가 일어나는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들은 나를 ‘화내는 포인트가 이상한 애’라고 여겼다. 하지만 자유의지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다.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어렵게 찾아낸 몇 안 되는 자유로운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개념을 들먹였지만, 최근 사례를 보면 꽤나 사소한 일이다. 사소하지만 가족과 관련된 일이기에 주기적으로 버튼이 눌리는 사례기도 하다.
엄마는 가끔 반찬을 만들어 보내신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반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선호하는 재료나 조리 방식, 비주얼, 레이아웃과 맞지 않을 뿐이다.
나는 나의 의지가 담긴 식탁을 구성하고 싶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땐 재료, 비주얼, 그릇의 디자인까지 모두 내가 고르고 구성하고 싶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 발견한, 내 자유의지를 쏟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 과정이 즐거워서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장도 직접 보고, 밸런스를 맞춰 식단도 짠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반찬을 보내는 건 내 식탁 구성의 자유를 침범하는 일이다. 마치 내가 고민해서 짠 메뉴 속에 불청객이 끼어들어 선택과 고민을 즐기는 자유를 앗아가는 기분이다.
엄마가 반찬을 보내려 할 때마다 나는 극구 사양한다. 몇 년 째 창과 방패의 대결이 진행중이다. 물러서지 않고 꾸준히 보내려는 의지에 몇 번은 그 방패가 뚫렸다. 그러던 최근 어느날 이었다. 내가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몰래 반찬을 보냈다. 택배를 부치고 나서야 나에게 보낸 사실을 통보했다. 말리는 과정에서 예열되던 버튼은, "보냈다"는 한마디에 'Power On' 되었다. 나는 택배를 받은 즉시 뜯지도 않고 반송했다. 반송했다는 말에 엄마도 상처를 받았다. 이 싸움을 중재하려는 아빠에게 왜 내가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설명했다. 아빠는 그저 “엄마의 정성과 관심”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빠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원치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강요이자 폭력이었다. 왜 내가 식탁의 자유에 이렇게까지 예민해 졌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나는 집에서 막내였지만, 우리 집은 막내를 귀여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에서는 내 의견이 항상 마지막 순서였다. 외식 메뉴나 식탁에는 내 기호와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뭐 먹고 싶니?”라고 물은 적이 없었다. 편식하지 말라는 이유로, 싫은 음식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대학생이 되어 가장 좋았던 건, 하루 중 점심 한 끼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말이 되면, 주말마저 밥을 하는 게 귀찮은 엄마는 냉장고 속 김치와 재료들을 식은밥과 한데 섞어 국밥을 만들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밥국’이라고 불렀던 그 음식이 나는 유난히 싫었다. 다양한 맛이 섞이는 음식을 극도로 싫어했다. 모든게 섞인 그 비주얼도. 그 이유를, 나의 취향이었던 것을, 어른이 되어 밖에서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10년 넘는 시간 동안, 주말마다 올라오던 밥국을 한 숟갈도 먹지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추어탕도 싫어했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엄마는 추어탕으로 메뉴를 정했다. 나는 극구 반대했지만 엄마는 그것을 내 고집으로 여겼다. 펄쩍 뛰며 반대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고집을 꺾어야 한다며 나를 식당에 끌고 갔다. 나는 한 숟갈도 뜨지 않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이 두 경험은 나에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처럼 남았다. 지금도 밥국과 비슷한 김치국밥이나 추어탕은 손대지 않는다. 엄마가 나의 만류를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반찬을 보내려 할 때마다, 나는 통제받는 듯한 감정이 불쑥 솟는다. 버튼의 온도가 올라갈 때마다 애써 심호흡하며 진정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은, 늘 “엄마의 마음”을 강조하며 나에게 참으라고 말한다. 과민하게 굴지 말고 고마워 하며 그냥 먹으라 했다.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나는 ‘별것 아닌 일에 이상한 포인트에서 발작하는 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참고 넘겨야 할까 고민도 해봤다. 그러나 아무리 애틋한 가족이라 해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계속 침해하게 둘 수는 없다. 이건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무례함에, 나를 속이며 참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