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문]-[건축]으로 이어지는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나는 서점에서 책 제목과 섹션의 분포를 분석하면서 요즘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취미가 있다. 사람들이 어느 섹션에 많이 있는지, 새로 나온 책은 어느 분야인지, 책 제목에 많이 쓰이는 단어들은 무엇인지를 구경한다. 다년 간의 분석을 통해 서점에서 책과 사람의 분포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나름대로의 데이터를 쌓았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 방문한 여러 공간 중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꼭 가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오기로 한 곳이었다. 건물은 2층 규모의 큐브 3개가 브릿지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 한자 꿸 관(串)의 형태처럼 연결된다. 거기에 각 큐브 중심엔 계단이 있어 이 두 요소가 공간을 수직과 수평으로 긴밀하게 엮어준다. 큐브 3개를 꿰는 통로 양옆엔 여러 분야의 도서 섹션이 있다. 이 구조 속에선 책의 분야별 규모가 한눈에 비교된다.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서점이라는 단일 용도에서 커뮤니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그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서점의 새 지평을 연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서점에서 비슷한 시도가 보이지만, 이러한 공간을 최초로 계획한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복합문화공간화 된 서점의 시초처럼 여겨진다.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도쿄의 상징적인 서점이다. 일본의 최근 서적 트렌드와 일본 사람들의 관심사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일본사람과 사회를 한 공간에서 엿볼 수 가 있는 것이 여기다. 나는 서점을 둘러보는 나의 방식을 기반으로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건축공간과 일본의 서점을 우리나라와 비교 분석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서점 공간에서 종종 아쉬웠던 점은 공간이 넓고 동선이 복잡해서 인덱스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반면 다이칸야마 츠타야는 동선이 명료했다. 공간은 책의 인덱스별로 잘 구분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치 속에서는 내가 어디있는 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국내 서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점이다. 책들 사이사이에 있는 카페, 소품샵, 오픈 스페이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간은 책 위주로 지루할 법한 공간을 환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몇 년 간 교보문고에서 본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경제]였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작년까지는 부동산이었고, 최근에는 그 흐름이 주식차트와 미국 주식 쪽으로 살짝 옮겨왔다. 이 경제 섹션에 가면 항상 사람들이 촘촘히 모여 있다. 물론 개미 투자자인 나도 서점을 갈 때면 그 대열에 잠시 합류한다. 제목이 자극적이고 일타강사처럼 쓰여 있어 초심자를 홀리는 책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곳이다. 폰트는 강렬하고, 문구는 자극적이다. 이 요소들은 조급함과 욕망에 시야가 흐려진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러한 점은 츠타야도 동일했다. 일본의 경제서적 또한 유난히 소란스러운 책이 많았다. 다만 사람들이 유난히 경제 섹션에 몰린 분포를 보이지 않는 차이 정도가 있었다. 그 중 눈에 띈 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절약에 관한 책이었다. 절약을 책으로 배워 마른 수건을 짜 보겠다는 일본인의 의지가 엿보인 대목이었다.
우리나라의 서점에서 가장 씁쓸함을 느끼는 곳은 [인문학]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우리나라는 깊은 사유가 턱없이 부족한 나라라고 항상 느낀다. 인문학 분야에 가면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지대넓얕(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올라와 있다. 몇 년 전에도 봤는데 아직도 베스트셀러다. 나는 이 책을 싫어하진 않는다. 특히 나처럼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한테는 참 흥미롭다. 다만, 개정과 여러 버전을 거듭하며 꾸준히 나오고, 그것이 스테디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아쉽다. 나에겐 넓고 얕은 지식으로 지적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모순으로 보인다. 깊이가 없는 지식으로 어떻게 지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로 올라온 이 책은 얕은 지식이 덮고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으로 보였다. 인문학이라는 우리 삶에서 깊고 중요한 요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엔 이런 책들도 한몫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축을 해서가 아니고, 츠타야와 교보문고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낀 섹션은 [건축]이다. 우리나라에선 건축 서적이 한 책장을 다 채우지 못한다. 건축도서 사이에 '00원으로 내 집 짓기, 건축의 이름을 한 부동산서적, 00기사 자격증 수험서' 같은, 건축 책인가 싶은 것들도 많이 섞여 있기까지 하다. 이 모든 불순물을 다 합쳐도 건축은 한 책장을 못 채우는 것이다. 반면, 츠타야에서 건축은 여러 개의 책장이 모인 한 섹션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범위는 건축 인문 뿐 아니라 테크니컬한 내용에서부터 디자인 사례집에 이르기까지 방대했다.
우리나라의 종합서점에선 이런 책이 없다. 디자인 전문 독립서점을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건축섹션도 수험서, 공학 중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그 내용이 공학에 관련된 것이 아닌, 예술로서의 건축, 인문학으로서의 건축에 관련된 것이라도.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건축에 대해 눈으로라도 그 세계를 훑고 지나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건축과 사람간의 거리를 넓혔으면 넓혔지, 좁힐 수 없는 구조이다. 반면,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 상당한 공간을 할애한 다이칸야마 츠타야에는 건축 섹션 주위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건축 책을 읽고 있었다.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깊이와 관심도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9명) 나라다. 반면 우리나라는 0명이다. 프리츠커상은 셀프추천과 그 상을 수여하는 기준에 대한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불만을 표하는 국내 의견도 많았다. 서점의 새로운 지평은 무엇일지 고민할 시간에 츠타야의 공간 프로그램을 레퍼런스랍시고 Ctrl C+V 하는 이들이 의심할 자격이 있을까. 공정성에 대해 의심하기 전에 두 나라의 서점에 가서 차이점을 확인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책임감 있게 건축을 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을 했는지, 일본의 건축가만큼 치열하고 깊게 고민하여 결과를 냈는지 말이다.
관심이 있는 곳에 돈이 몰리고, 돈이 몰리는 산업에 발전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건축에 돈을 쓰지 않아 건축산업은 발전이 어렵다고 했다.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고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는 것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숙제이다. 그리고 눈앞의 도면에는 그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