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보이네

지나가던 요정대모의 한마디

by flower orchid

아이 둘을 일찍 하원, 하교시키고 얼마 전 리모델링이 끝난 옆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책은 그냥 거들뿐,

도서관 뒤뜰로 나가 차에 있던 스티로폼 비행기를 날리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흘끔흘끔 보던 모래놀이장엘 조용히 들어가 아이들 둘이 놀았더랬다.

나는 5m 정도 떨어진 그늘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고갤 들어 앞을 바라보니 산업단지 개발로 인해 어느 마을에서 옮겨 심었다는 커다란 팽나무의 가지들이 작은 언덕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크고 작은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미세한 날벌레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3분남짓 보았을까, 길가 쪽에서 차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근처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있는 도서관 뒤뜰 쪽으로 어느 중년 여성이 지나가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중년 여성은 내 앞쪽을 계속 걸어가 지나가면서, 나를 보며, 묘하게 미소 띠는 얼굴로, 가다가 한번 더 나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눈을 피해 다른 곳을 보거나 '왜 계속 쳐다보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살짝 노려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분의 미소는 너무 친절했기에 나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중년여성에게 날 보고 웃는 3초간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행복해 보이네"


마치 아는 사람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마디를 건네며 잔디밭을 가로질러 팽나무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인사를 할까 하던 중이었기에 당황했지만 "어머,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처음에는 이유도 모르고 계속 눈물이 났다. 조용히 눈물을 그치고 싶었지만 심지어 입을 막고 꺽꺽 거리며 울고 있었다. 그리곤 알게 된 거다.




나 행복하구나. 나 지금 행복하구나.

몰랐어. 내가 행복한지.

내가 놓여있는 상황이, 지금 내 마음이, 내 모습이, 나의 모든 것이 행복하구나.


아침까지 걱정뿐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걱정,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짜증이 늘어가고 화가 많아진 둘째 걱정, 둘째만 걱정하는 것 같아 또 첫째 걱정, 분양을 앞둔 지금 집 걱정, 이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남편 직장 근처에 집은 또 어떻게 어딜 얼마나 하는 집을 구해야 하나 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하나 걱정, 건강걱정, 이렇게 자아 없이 엄마로만 사는 나 자신 걱정..


모든 것이 걱정되었고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으며, 그래도 나는 좀 나은 건가 아닌가 비교하고 혼자 육아를 한다는 감투를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걱정을 말하고 때때로 남편에게는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내 말에 빨리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지나가던 요정대모의 한마디는 나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나는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천사 같이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 있고 아직도 귀엽다 예쁘다 해주는 다정한 남편이 있고 양가부모님들이 든든히 계시고 따뜻한 집이 있고 건강한 몸이 있다.

계속 연락하고 만나는 20년~25년 된 친구들이 있고 커피 나눠 마실 수 있는 동네언니동생이 있고 한적한 산책길과 바다와 공원이 가까이에 있다.

도대체 나의 어떤 상황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분이 아니었다면 오늘은 그냥 햇살 좋은 날이었겠지.

아이들 보느라 도서관 안에 둔 내 샌들은 까맣게 잊고 도서관 카페 뒷문에 있던 공용샌들을 신고 온걸 아이들 탓했겠지.

더러워진 아이들 옷과 신발 뒤치다꺼리 한다고 힘들었던 날이었겠지.


갑자기 깨닫게 된 이 행복이 -오늘을- 잊기 싫어서.

등에 지고 있던 걱정보따리가 쏟아져 담으려고 보니 그 안은 행복이었더라.



행복해보이네


-총총 지나가던 요정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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