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폭탄교사였다
교장과 아무리 싸워도 변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 차라리 내가 교장이 되어서 변화를 시키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족한 교육 행정능력을 배우고자 지원했습니다.
초등교육행정 대학원 면접시험에서 한 말이다.
교장은 발령 전후 교사들의 성분을 사전에 파악하려고 한다. 일단 전교조가 얼마나 되는지, 또 얼마나 색깔을 드러내는지... 색깔이 강해서 교장한테 항의하고 따지는 교사나 직원을 교장들은 폭탄이라고 한다.
이 폭탄이 있으면 교장은 스트레스로 제명을 다 못 산다고 피하려고 한다.
바로 그 폭탄이 나였다, 학교에서 찍힌 사람이었다. 나만 없으면 학교를 운영하기가 훨씬 용이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전교조 교사가 아니다. 한 번도 그런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소위 운동권들이 읽는 사회과학 책도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우리 집 책장에는 아주 많았지만.
내 속에 있는 열등의식이 권력자 앞에서 센척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놀란 새가 깃털을 세우듯, 공격적인 자세로 방어하고 있었을까?
김 선생 월급으로 사요.
6학년 담임으로 김밥 만들기 실습을 해야 하는데 전기밥솥이 고장 나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실습이나 활동중심 교재 내용은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김밥도 밥 짓기 실습부터 하고 원래대로 김밥 만들기 실습을 하고 싶어서 교장한테 밥솥을 사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내 월급으로 사라고?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쓴웃음을 짓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밥솥뿐인가? 과학실험도구는 녹슬고 제대로 실험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한숨소리, 실망하는 탄성을 지른다.
그렇게 흥미를 잃고 소란을 피우면 교사는 퍽 당황하게 된다. 무능력의 결과라는 생각도 들어서, 오히려 아이들을 다그치고 소리를 질러 소란을 잠재운다.
아이들은 이런 실습이나, 실험, 조작활동을 통한 활동중심교육을 좋아하고, 그러한 수업은 개념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한다. 학원이나 사교육 현장에서는 하지 못하는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좋은 수업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히려 사교육에서 실험교구를 통해 수업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과학 실험도, 실과 실습도, 교구를 조작하며 익히는 수학교육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니...
참으로 속 터지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교장은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다.
도대체 국가는 왜 예산을 그렇게 조금 주는 걸까? 정상수업을 지원할 교육청은 무얼 하고 있는가?
불평불만으로 학교예산 책정이나 결산할 때도 꼼꼼하게 낭비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질문했다.
교장은 자기를 부정부패를 하는 사람 취급하는 나를 당연히 싫어했다.
선생님들은 나를 학교운영위원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학교의 의심스러운 것들을 내게 질문하게 했고, 책임을 부여했다.
그러면서 교장 흉을 본다. 학교공사를 할 땐 자기 아파트 수리도 함께 한다고...
행정실장 오라고 해요.
여기 김 선생이 환경교육비가 왜 그렇게 많냐고 왔어요. 대답하세요.
화가 난 교장이 행정실장을 불렀다. 내가 환경교육 담당으로 그렇게 많은 비용을 쓴 적이 없는데, 내가 쓴 돈의 10배나 썼다고 결산서에 나왔다.
그래서 결산서 검토를 하고 사인을 하라는 문서의 환경교육비 칸에 물음표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를 교장실로 불렀고 행정실장까지 불러서 해명하도록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음표를 했다면 불렀을까?
행정실장의 해명은 분명했다. 환경교육비는 내가 쓰는 환경 미화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부였다.
학교청소비, 청소용구 구입비 등 내가 모르던 지불 내용이 가득했다.
미안했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으로 날을 세운 내가 부끄러웠다. 잘 몰랐다고 하면서 해명에 감사하다고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수업만 죽어라 했지, 학교 행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는 데서 온 해프닝이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폭탄은 아니어도 날을 세우는 교사나 직원들이 꼭 있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어 이러한 교사를 만나면 조용히 들어준다. 편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 같은 친구가 또 있구나 '하며 연민을 느낀다. 그의 날이 힘겨울 땐, '내가 벌을 받는구나.' 했다.
대학원에서 배운 초등교육행정은 교장이 되기 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했고, 더 깊이 학교 운영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폭탄이 아니었다. 학교일을 가장 충성스럽게 하는 부장이었고, 교장은 나의 능력을 신뢰했다. 그리고 나는 승진 벨트에 올라탔다.
어느 날 교장이 내게 말했다.
전교조보다 심했다면서?
이렇게 순하게 일 잘하는 부장교사의 소문이 정말일까 궁금했나 보다.
교직사회는 좁고, 소문은 화살보다 빠르고 은밀하며, 꼬리표는 떨어질 줄 모른다. 10년 전 일이 여기까지 소문났구나. 나는 그저 웃었다.
내가 교장이 되어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직원들은 행복했을까?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이 행복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그들이 사고 싶다는 교구나 실험도구, 교재를 거절한 적은 없다. 학교 지원 예산이 갑자기 늘었는지도 모르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과학실 현대화 공사를 통해 자료실과 실험실을 하나로 디자인했다. 학생들과 교사가 과학실에 들어오면 실험도구나 교구를 쉽게 찾아서 이용할 수 있도록 실험실 안에 열린 교구장을 배치했다.
주차장으로 설계되었던 체육관 1층을 놀이공간으로 만들었다. 햇볕 뜨거운 여름에도 그늘에서 오징어게임, 달팽이놀이를 하면서 다치지 않게 폴리우레탄으로 바닥처리를 했다. 고학년들은 자전거로 전기 만들기 실험도 거기서 했다. 줄넘기도 하고 , 코로나 때는 전 학생 예방접종 장소가 되는 종합공간이었다.
방과 후에는 인라인스케이트 수업도 거기서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인라인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학생들이 거기서 수업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체육관 뒤는 50m 우레탄 트랙을 설치해서 유치원생과 저학년 학생들은 체육시간마다 뛰면서 게임을 했고 자전거를 배웠다. 고학년들은 그곳 체육관 그늘에서 줄넘기도 했고 안심트랙이라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담장 옆 시멘트 계단은 야외수업교실로 모두 우드블록 작업을 했다. 학생들은 거기에 앉아 리코더 등 악기 연주를 하였고 실과 목공예도 거기서 했다. 이런 활동을 교실에서 하면 소음으로 옆반에 방해가 된다. 반드시 야외수업 장소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한 활동중심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꿈이 또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공사비는 학교일반회계가 아닌 교육청 특별회계로 신청하고 승인되면,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서 주관한다. 교육청에서 업자 선정부터 공사 진행을 점검하고 감독하며 마지막 준공까지 완료한다. 학교장은 교육청과 회의를 통해 ' 이렇게 해달라, 저것은 바꿔달라, 재료는 이걸 써야 다치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로 끝없이 소통한다. 주로 공사에 대하여 요구할 뿐, 예산 관련 부정이 생길 틈은 원천 차단되어 있다. 교육청 시설 담당자는 나의 많은 요구로 공사비가 수 억이 더 나갔다고 했다. 미안했다.
요즘 학교일반예산은 모두 교사들이 직접 짜고 행정실장이 실무를 조율한다. 교장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예산이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짜이는지, 어느 한 부서에 치중되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지도한다.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교사들은 더 힘들다. 그때가 좋았다고 하고, 나도 현직 교사들의 애환에 깊이 공감한다.
힘내세요. 선생님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