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난 용

나의 개천이야기 4 - 개천에서 성장하는 가족들

by 파도타기
Ai로 그린 아파트 모습

"13평이 뭘 잘났다 그러냐?"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여자짝꿍과 다투었는데, 논리에 지던 짝꿍이 이렇게 말해서 더 말을 못 하고 울면서 돌아왔다.

짝꿍은 42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며 아들과 함께 학급 임원이기도 했다.


1994년, 그때도 아이들은 이렇게 아파트 평수로 신분을 만들었고, 아들은 다세대주택 13평 지층 1호의 부끄러운 신분이 되었다.


그래도 아들은 씩씩하게 신분을 넘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학생회 부회장을 두 번이나 했다.

또 글짓기대회에선 언제나 상을 놓치지 않았으며 예체능에도 기량을 발휘했다. 아들도 그렇게 개천에서 용으로 자라기 시작했으리라.


고마운 일이다.


남편도 용이 되기 위해 개천을 헤맸다.

대학생 부부로 시작한 우리는 늘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나의 외벌이로 집까지 마련했으니 대출금 갚기도 힘에 겨웠고 아이들 사교육은 꿈꿀 수도 없었다.


그래도 피아노 학원만은 다니게 했다. 그건 피아노 학원 다니던 친구를 부러워했던 나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아들은 피아노를 아주 좋아했지만 겨우 2년만 다녀야 했다. 동생도 같은 기회를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도 늘 학생이었던 남편은 당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지쳐서 돌아오면 남편은 논문이 안 써진다며, 하루 종일 겨우 두 줄 썼다고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난 그가 돈벌이를 하지 않아서 생활이 어려운 것보다 그 말에 더 힘 빠졌다.

글이 안 써진다고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분당까지 하고 한날 내달렸다.

또 대학 시간 강사를 두 타임 밖에 안 준다고 속상해했고, 주말이면 원주까지 가는데 목사 월급으로 20만 원, 교통비도 모자라다고 투덜댔다.


시간강사하고 교육목사하면서 박사 논문도 써야 하는 남편도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가장으로 미안함에 하루하루 곤고하였으리라.

고생했어요. 남편,

잘 참아냈어요.


우린 모두 수고했어요.

그 험한 개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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