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거짓 1•2 에세이

by 하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품어봤을 것이다. 내 태초의 시작은 어디이고, 어디까지를 '나'라고 칭할 수 있을지 말이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세포분열을 통해 거의 모든 세포가 교체된 나는 1년 전의 나와는 다른 존재일까?
이 책의 주인공 르네를 보며 이러한 의문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르네는 자가 퇴행 최면을 통해 가족에게 환멸이 난 노부인이 되어보기도 하고, 고문당하는 캄보디아의 승려가 되어보기도 하며, 1만 2천 년 전의 아틀란티스인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르네이고, 어디까지가 아틀란티스인일까? 애초에 그들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르네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는 역사 교사이고, 남자이다. 오팔을 사랑한다. 그의 첫 번째 전생은 아틀란티스인이다. 기록말살형을 받은 캄보디아 승려, 피룬은 역사의 기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르네로 환생했다. 르네는 이러한 111명의 전생이 모인 것이다.
나는 이들을 보면서 의상 스님의 화엄종 사상을 떠올렸다. 화엄종은 일즉다 다즉일, 다시 말하면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사상이다. 이는 르네와 르네의 전생과의 관계 같다. 111개의 전생들은 르네가 아니지만, 그들이 없다면 르네도 없다.
이로써 처음 질문에 답을 내리자면, '나'라고 하는 것은 그저 '나'가 아니다. 르네에겐 111명의 전생들이 있었고, 우리에겐 수많은 선조들이 남긴 유산이 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역사와,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주변과의 모든 관계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선 비단 현재의 '나'뿐만 아니라 이 모든 전체를 봐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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