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아 와 Mickey Young

by 이성대

25년 5월, 지하철 에어컨은 안 틀어주나 의문을 가질만한 날씨의 요즘이다.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뜨겁게 식어가는 공기 속에서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비공개로 돌려놓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메시지 요청이 떠 있었다.


'연락할 사람이 있나?', 괜히 손끝이 멈칫했다.


“전세아”

프로필 사진은 비어 있었고, 이름과 생일을 섞은듯한 아이디는 지루할 정도로 평범했다.


‘전세아’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다.

예전에 스타트업 인턴 시절, ‘제이미’라는 영어 이름을 쓰던 선배의 본명이 세아였던가?

별다른 기대 없이, 나는 메시지 요청을 승낙하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누구세요? 혹시 OOO OOO에서 근무하셨던 제이미 맞으신가요?]


답장은 한참 뒤에 도착했다.

자신은 한국계 미국인이고, 2주 전 처음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정체였다.


계정을 열어보니, 사진은 몇 장뿐.

고양이. 뒷모습.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딱 그 점이 이상했다.

스팸 계정들은 오히려 과하게 화려한 경우가 많지 않았던가?


보통의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dm 보내신 거예요?]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인연은 언제나 낯선 장소에서 시작되곤 했다.

처음 가는 지역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었던, 축구심판 '현성'씨, 홍대 곱창가게의 손님이었던 '레이첼', kpop을 좋아하던 '토모에'상..

가끔 일상을 주고받고, 사진에 하트를 눌러주는 그 정도 거리를 갖는 친구들.

그런 사람들과의 연결이 내겐 낯설지 않았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용산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는 자신을 패션 디자이너라 소개했다.


[용산은 좋은 동네예요. 한국의 좋은 곳을 알려주면 좋겠어요.]


말을 건네는 톤은 익숙한 듯 어설펐고, 문장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잘하긴 하시는데, 좀 어설픈 부분이 있어서요]


[저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은 한국인이셔서.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압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소개했었던 그녀였기에,

2주라는 시간은 어학당을 다니기에도, 어설프게라도 한국어를 익히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번역기를 쓴 듯, 어설프게 타이핑되는 한국어는 그렇게 이해되었다.


십여분을 정도의 텀을 두고 우리는 대화했고, 주된 이야기는 근처 여행지와 맛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무 살 이후로 서울 언저리에서 살아왔던 내겐 잘난 척, 말하기도 떠들기도 좋은 내용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깊게 묻지 않았고, 더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대화는 그저 흘러갔다.


3일 정도였을까, 조금은 일상이 섞이긴 했지만 건조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내게 dm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듯하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말. Good morning, Did you sleep well?, What's your schedules today?, have a nice day.

늘 같은 순서, 같은 간격.


그녀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며, 10시부터 19시까지는 회사에서 업무를 본다고 말해줬었는데, 뭔가 잊은 걸까. 정해져 놓은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걸까

불쾌할 정도로 규칙적인 그녀의 dm루틴을 보며, 사진 없이 비어있는 그녀의 메시지 알림을, 나는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자기 전에 확인한 그녀의 DM은, 개연성 없이 시작됐던 이 건조한 관계에 불티 하나를 던졌다.


[저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얼마 전에 질병으로 인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아.. 정말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그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가요?]


[저는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같이 살진 않지만 자주 연락을 드리곤 해요.]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 말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갑작스럽게 좁혀지는 거리감의 대화와 가까워야만 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

조금이나마 남았을까 싶었던 신뢰는 불쾌한 기시감으로 전부 굴러 떨어졌다.


저 대화를 기점으로, 그녀는 나에게 그녀의 가정사와 연락이 끊어진 중학교 시절의 친구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날 내게 앞으로 영어로 대화해도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이야기할만한 보편적인 대화와는 멀어졌다.


그녀와의 대화주제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냐는 둥, 서로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와 취미, 좋아하는 것.. '타인과 가까워지는 대화'로 이동했지만, 오히려 거리감은 벌어졌고, 의구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녀는 'Toni Morrison'의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고, 그녀의 표현으로 'American novels'를 주로 읽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단편 소설과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었고, 굳이 'American novels'에 관한말을 더하진 않았었다.


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은 그다음 날 그녀는 내게 제안했다. 늘 있던 안부인사 문장과는 다른 조금은 긴 내용의 문장이었다.

자신은 업무 메신저로 LINE 메신저를 활용하니 LINE 메신저에서 연락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며, id를 알려달라는 메시지였다.

마침내게는 일본 총판과의 연락을 위해 만들어놓은 계정이 있었기에 알려주었다.

사진이 없고, 이름만이 존재하는 그런 LINE 계정이었다.


5분이 지나고 온 연락이었다.


[오, 당신이 여기 있어서 기쁘네요.] - AM 11:56

[당신은 이미 집에 있습니까?] - AM 11:56

[저는 Mickey Young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 2주 정도의 되었습니다.] - AM 11:57


나는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Mickey Young.’


LINE 메신저 속 그녀는 처음 소개했던 이름 ‘전세아’가 아니었다.

이름이 둘일 수도 있겠지만, 바꾸었다는 말은 없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차라리 묻지 않는 쪽이 더 나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듯 낯선 이름. ‘전세아’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여유 있는 말투였다. 하지만 대화의 타이밍은 이상했다.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답장의 속도감.


질문을 보내자마자 답이 왔다. 내가 읽기 전에, 누군가 먼저 읽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그녀는 'Mickey Young'이 된 순간부터 모든 대화를 '우리'로 바꾸었다.

“우리는 주말에 산책을 가면 좋겠어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우리’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말은 따뜻했지만, 대답은 항상 빠르고 정확했다.

나는 그 문장 속 '우리'에 속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은 '우리'들이 떠올라 불쾌해진 걸까.


[사진]

[사진]

[사진]

...


그녀는 자신의 사진이라고 웃는 이모지와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보냈다.

프로필 속의 사진,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한국적인 그녀의 사진이 보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Mickey, 한국에 처음 들어온 지 2주 됐다고 했죠?]


[네, 맞습니다. 왜요?]


배경 속의 사소한 날짜들과 사물들, 익숙한 상호명과 사라진 간판들.

화사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 배경, 팝업스토어는 2024년 봄, 내가 직접 다녀온 적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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