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대표님으로부터
동양난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선물이라기보단
취임축하용으로 받은 수많은 처치곤란의 선물들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처분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꽃이든 나무든 식물을 키우는데 큰 재주도 흥미도 없었던 터라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고
내 사무실 책상 창가에 두고 방치하였다.
사무실에서는 내가 받아온 화분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된 듯 했다.
보름여가 지났을까
잎이 말라 까맣게 변하기 시작한 난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생전 처음 난에 물주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보름에 한 번 정도 충분히 주면 된다기에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 그렇게
마치 누군가 문앞에 두고간 어린아이를 차마 내팽개치지 못하는 심정으로
이름도 몰랐던 그 '난'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
꼬박꼬박 성실하게는 못하더라도
말라 죽지 않을 정도로는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었다.
몇 달이 지났을까
장기간 출장과 휴가로 한동안 사무실을 비우고 돌아온 사이
그 녀석의 말라가는 잎 사이로 꽃대와 꽃봉오리가 올라와 있었다.
한편 미안하면서도, 대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지 않고, 꽃을 피울 용기를 내는구나'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동물이든 식물이든..오직 한 사람의 관심이면 충분하구나
그 생명이 자신의 삶을 이뤄나가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발현시키기 위해,
오직 한 사람의 관심만 있으면 그를 지킬 수 있구나.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힘든 순간순간,
신념과 의지와 희망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삶을 운명에 내맡겨버리는,
심지어 소중한 삶을 스스로 중지시키려 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에 꽃을 피우게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오르는 갈증에 점차 말라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사람의 관심이면..사랑까진 바라지도 않는
의무감이든 희생이든, 헌신이든 관심갖는 자의 동기가 무엇인지보다는
그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면 되는구나..
내 책상 옆 그 '난'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사랑을 줄 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관심은 그 녀석의 목마름과 생기를 결정할 것이다.
관심으로 지켜 보겠다.
나는 그 녀석의 삶에 관심을 갖는 오직 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