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EN FAMILLE)

모파상 중단편전집 01 - 메종 텔리에 05

by 이닮

뇌이(Neuilly)로 가는 노면기차(tramway)는 마요(Maillot) 문을 지나 이제 센 강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다. 객차를 단 작은 기관차는 도로의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기적을 울리기도 하고 증기를 내뿜기도 하며 마치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을 때처럼 헉헉거리고 있다. 거기에 피스톤은 쇠다리를 움직이게 하려고 ‘칙칙’ 성급한 소리를 내고 있다. 늦여름의 무지근한 더위가 도로에 떨어지면 도로에서는 바람도 없는데 ‘확’ 하고 먼지가 인다. 불투명하고 질식할 것만 같은 하얀 석회질의 후터분한 먼지이다. 그것이 축축한 피부에 들어붙고 눈을 가득 채우고 폐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며 제각각 문 옆으로 다가선다.

객실 창문은 내려져 있었지만, 커튼은 무서운 속력으로 달리는 기차가 일으키는 진동으로 모두 펄럭이고 있다. 다만 몇몇 사람들만 객실 안에 진을 치고 있다. (이런 더운 날 사람들은 보통 옥상석이나 운전대를 선호하기 때문에) 객실에 남은 것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뚱뚱한 숙녀들, 자신들에게 없는 품위를 시대착오적인 위엄으로 메우려는 교외의 부르주아지 여성들뿐이다. 그리고 또 직장생활에 지친 남자들도 있다. 얼굴은 누렇고 허리는 뒤틀리고 어깨는 한쪽만 올라가 있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 매달려 일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걱정스러운 듯 풀이 죽은 얼굴은 가정생활의 근심이나 여의찮은 금전상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의 꿈이 무참하게 깨어진 자의 슬픔이 역력히 엿보인다. 그것도 모두 이 사람들은 거름 구덩이가 즐비한 파리 근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집, 정원 대신 화단이 하나씩 있고 회반죽을 바른 작은 집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며 그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가련한 근로자 계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 바로 옆에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배는 벌린 다리 사이로 축 늘어져 있고 검정 일색의 복장에 훈장을 달고 있다. 그 사람이 키가 크고 야윈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때에 찌들어 버린 흰색 드릴 옷을 입고 옛 파나마모자를 쓴, 얼핏 보기에도 구질구질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키가 작은 남자는 천천히 머무적거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말을 더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다. 카라반(Caravan) 씨라고 하는 해군본부 일등서기관이다. 다른 한 명은 전에 어느 상선에서 의사 보조로 일했지만, 지금은 쿠르브부아(Courbevoie) 원형 교차로에 정착했다. 그리고 기구한 항해 생활 뒤 그래도 아직 그에게 남아있는 어중간한 의학지식에 의지해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진찰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쉐네(Chenet), 자신을 닥터라고 부르게 하고 있다. 소행에 이래저래 소문이 많은 사람이다.

카라반 씨는 관리로서의 착실한 생활을 계속 이어왔다. 30년 동안 매일 아침 판에 박은 듯 직장으로 나갔다. 같은 길을 지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그와 같이 역시 출근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같은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려면 또다시 같은 얼굴을 만나는데, 그 얼굴들이 늙어가는 것을 계속 봐온 것이다.

매일 생토노레(Saint-Honorè) 마을 모퉁이에서 1수우로 신문을 사서 언제나처럼 두 개의 빵을 물색하러 간다. 그리고 마치 자수하는 범인 같은 모습으로 직장에 출두하는 것이다. 그리고 급히 책상으로 향하지만, 왠지 자신이 잘못이라도 저질러 야단을 맞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이 끊이지 않아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그의 단조로운 생활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직장의 일, 승진, 포상 이외의 어떤 사건에도 그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에 있든 집에 있든 (지참금 없이 동료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그는 근무와 관계된 일 이외에는 입에 담는 일이 없었다. 이 사람의 정신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매일 매일의 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에 관계된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어떤 희망도 어떤 꿈도 품고 있지 않았다. 단 하나, 관리로서 이해할 수 없는 괴로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해군 감독관들, 즉 은장식 끈을 달고 있어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무리가 차장, 부장의 지위까지 승진해 간다는 한 가지 일이다. 원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할 사람에게 파리에 자리를 주는 건 어떤 의미에서라도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매일 밤, 저녁 식사를 하며 그는 아내 앞에서 뒷공론을 했는데 아내도 남편의 분노에 일일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어느 사이엔가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학교생활이 그대로 직장생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워한 학생주임이 지금은 역시 무서워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 폭군의 문턱은 그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게 했다. 아마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포심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어색한 방식, 겁먹은 태도, 그리고 일종의 신경질적인 말더듬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가 파리를 모르는 것은 매일 같은 문으로 안내견의 안내를 받아 오는 맹인이나 진배없다. 아무리 1수우로 신문을 사 여러 가지 사건이나 스캔들을 읽는다 해도 그것은 젊은 직장인을 즐겁게 하려고 반은 재미로 만들어 낸 가공의 이야기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이자 어떤 당파에도 속하지 않는 보수주의자이자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그저 적의만을 가진 그는 정치 기사는 읽지 않고 그냥 넘겨 버렸다. 그래서 매일 밤 퇴근길에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갈 때 밀려드는 보행자들의 무리나 화려한 마차의 왕래를 바라보아도 왠지 고향을 떠난 여행자가 처음 와보는 먼 이국땅을 여행하고나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침 올해로 그는 30년의 의무 근무연한을 마쳐 1월 1일에 레지옹 도뇌르(Lègion d'Honneur) 훈장을 받았다. ‘충의의 봉공’이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은 것 같지만 사실 오랫동안의 비참한 굴종-장부에 못 박힌 그 비참한 고역인의 굴종에 대해 군대화된 관청이 보상한 것이다. 이 생각지도 못한 작위를 받고 그는 자기 능력에 대해 새롭고 고상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도덕관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그때부터 그는 유색 바지와 화려한 재킷을 벗어버리고 검은색 바지와 긴 프록코트를 착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는 편이 폭이 아주 넓은 ‘리본’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면도를 하고 공을 들여 손톱을 다듬고 이틀에 한 번씩 속옷을 갈아입은 것도 모두 자신이 속한 ‘국가의 품위’에 대해 예의와 존경을 나타내려는 정당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하고 위엄 있고 겸손한, 완전히 다른 카라반이 되었다.

집에서 그는 무엇을 말하든 ‘내 훈장’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의기양양해서 다른 사람의 단춧구멍에서 리본을 보는 것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어떤 리본이든 참지 못했다.

그는 외국의 훈장-그의 말에 의하면 ‘함부로 프랑스 국내에서는 착용해서는 안 되는’ 훈장 같은 걸 보면 특별히 분개했다. 그래서 매일 저녁 기차 안에서 만나는 닥터 쉐네에게는 특히 악의를 품고 있었다. 원체 이 닥터라는 사람은 하양, 파랑, 주황, 또는 녹색, 뭔가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훈장을 매달고 있기에.

이 두 사람의 대화는 개선문에서 뇌이에 도착할 때까지 언제나 똑같았다. 그날도 늘 그렇듯이 먼저 이 지방의 온갖 악폐부터 시작했다. 그것은 모두 뇌이 시장의 횡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상시에 늘 두 사람을 분개하게 하는 문제였다. 그 대화가 끝나자, 의사와 함께하는 자리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카라반도 병 쪽으로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무료로 뭔가 약간의 조언을 듣거나 잘하면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진단까지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산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어머니 일이 걱정이었다. 빈번하게 긴 가사 생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흔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고령은 카라반에게 감동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닥터 쉐네를 보기만 하면 꼭 물어보았다.

“그 나이까지 살다니, 많이 있는 일인가요?”

그리고 그는 행복하게 손을 비볐다. 그것은 꼭 노모가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살아있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머니의 장수가 자신에게도 대물림될 거라고 생각됐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아니, 저희 집안은 모두 장수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저도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늙어서 비칠비칠할 때까지 살아있겠죠.”

조의는 카라반에게 가련하다는 듯한 눈길을 던졌다. 불그레한 얼굴, 기름기가 도는 목, 물컹물컹 살찐 양 다리 사이에 늘어져 있는 똥배, 이 지칠 대로 지친 늙은 관원의 뚱뚱한 몸 전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숙이 쓰고 있던 쥐색 파나마모자를 양손으로 가볍게 들며 비웃음 반으로 대답했다.

그게 꼭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 어머니는 딴딴하지만 당신은 물렁하니까.”

카라반은 당황해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때 기차가 역에 도착해 두 친구는 기차에서 내렸다. 쉐네는 베르무트(vermouth. 베르무트주(酒), 애피타이저의 일종)를 사줄 테니 두 사람의 단골인 역 앞의 카페 ‘지구’에 가자고 제안했다. 역시 친구인 가게 주인이 손가락 두 개를 내미는 것을 두 사람은 카운터 판매대 위의 병 너머로 잡았다. 그리고 대낮부터 와 도미노게임을 하는 세 명과 합류했다. 언제나 그러듯이 “별일 없지?”라는 말이 오간다. 그리고 승부가 시작된다. 그중에 먼저 간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만 내민다. 그리고 모두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

카라반은 쿠르브부아의 원형 교차로 근처의 아늑한 집에 살고 있다. 3층 건물로, 1층은 이발소가 차지하고 있다.

거실과 주방이 있고 방은 두 개밖에 없지만 접착식 의자가 필요에 따라 이 두 개의 방을 왔다 갔다 했다. 카라반 부인이 방 청소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12살의 딸 마리 루이즈(Marie-Louise)와 9살짜리 아들 필립 오귀스트(Phillppe-Auguste)는 근처의 개구쟁이 악동들과 거리의 개울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3층에는 근처에서도 유명한 노랑이 말라깽이 할머니인 카라반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그렇게까지 마른 것도 결국에는 친절한 하나님이 그녀 자신의 절약 정신을 그녀에게 적용하셨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 화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웃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서 있어도, 채소 장수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도, 청소부나 악동들을 보아도, 창밖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악동들은 그 복수로, 그녀가 외출하면 멀리 뒤에서 따라가며 큰 소리로 “똥싸개 할망구!” 하고 놀렸다. 노르망디 출신의, 이런 사람은 난생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덜렁대는 뒤틈바리 하녀가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사고에 대비해 3층의 할머니 곁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카라반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만성 청소 병에 걸려있는 아내는 휑한 방에 흩어져 있는 마호가니 의자를 플란넬 걸레로 열심히 광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실로 짠 장갑을 끼고 여러 가지 빛깔의 리본이 달린 모자를 썼는데 모자가 자꾸만 귀 위로 떨어졌다. 왁싱하고 솔질하고 광택을 내고, 잿물로 세탁을 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전 부자가 아니니까요. 집에선 모든 걸 아껴야죠. 하지만 청결은 저의 사치입니다. 저는 이 사치만으로 충분합니다.”

지독한 현실 감각을 타고난 그녀는 모든 면에서 남편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매일 저녁 식탁에서, 그리고 침대에서 부부는 직장 일을 끝도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무 살 연하의 아내를 남편은 마치 선생님처럼 신뢰해 무슨 일이든 아내의 충고를 따랐다.

그녀는 옛날에도 예뻤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야위고 몸집이 작은 추녀였다. 그대도 여성 특유의 연약함은 다소 남아있을 것이기에 말할 것도 없이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충분히 눈에 띄게 할 수 있는 것을 그녀는 그런 것에 서투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치마는 항상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 앞에서 몸을 긁는 기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녀가 자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멋 내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집에서 쓰는 폼 나는 모자에 비단 리본을 수두룩이 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마자 바로 일어나 남편의 수염에 키스를 하고 물었다.

“여보, 포틴(Potin)의 가게는요?”

(그가 부탁받은 쇼핑에 관한 것이다.) 그 말을 듣자, 그는 맥이 빠져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또 잊어버렸다. 이번이 네 번째다.

“정말, 참, 도무지 어떻게 된 게” 남편이 말했다. “낮에 아무리 생각하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저녁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니까.”

풀이 죽은 것 같은 남편을 보자 그녀는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내일은 기억할 거예요. 그럼 됐어요. 직장에서는 별일 없었죠?”

“있었지. 아주 중대한 뉴스야. 또 한 사람 철밥통이 차장이 됐어.”

그녀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 부서로?”

“외부 구매부.”

그녀는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라몬(Ramon)의 자리잖아. 그 자리라면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라몬은 어떻게 됐어요? 은퇴한 거예요?”

그는 말을 더듬었다.

“으… 은퇴.”

모자가 어깨로 흘러내리고 그녀는 서슬이 시퍼레서 말했다.

“이제 끝이에요, 그 자리는. 이제 와서 어떻게 손써볼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누구예요, 당신 상사가 된 게?”

“보나쏘(Bonassot)."

그녀는 항상 손이 닿는 곳에 두는 해군 인명록을 들고 찾아보았다.

‘보나쏘 - 1851년 툴롱(Toulon) 출생 - 1871년 견습감독관, 1875년 부감독관.’

“이 사람, 항해한 적이 있어요?”

이 질문에 카라반의 얼굴이 밝아졌다. 유쾌한 기분이 단전에서부터 저절로 끓어올랐다.

“그게 발린(Ballin)과 마찬가지야. 부장 발린과 완전히 똑같아.”

그렇게 말하고 점점 더 크게 웃으며 직장 동료들이 우쭐해서 하는 옛날 농담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새벽(Point-du-Jour)의 해군기지를 시찰하게 한다 해도 센 강의 유람선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 통통배를 타도 뱃멀미를 하는 무리라니.”

그러나 그런 농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여전히 그녀는 시무룩해 있었다. 결국 턱을 살살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이라도 뇌물이 통하는 의원이 있다면……. 의회가 그곳 내막을 안다면 그것만으로 장관의 목이 날아갈 텐데…….”

이런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계단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개울에서 돌아온 마리 루이즈와 필립 오귀스트가 서로 치고받고 소란을 피우며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엄마는 사나운 얼굴로 뛰어나가 사정없이 두 아이의 팔을 잡아끌고 방 안에 처넣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갔다. 아빠는 오랫동안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고는 앉아서 두 아이를 무릎 위에 올리고 이야기를 했다.

필립 오귀스트는 지저분한 아이였다. 머리카락은 꼬기작꼬기작 헝클어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꼬장꼬장 때에 절어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리 루이즈는 벌써부터 엄마를 쏙 빼닮았다. 엄마와 같은 말투로 말하고 엄마가 할 것 같은 말을 하고 심지어 몸짓까지 흉내 냈다. 아이가 말했다.

“직장에서 무슨 일 있었나요?”

아빠는 기쁜 듯 대답했다.

“너와 친한 라몬 말이야, 거, 매달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오잖아, 왜. 그분과도 이제 끝이란다. 그분 대신 새로 차장님이 오셨거든.”

아이는 아빠 쪽으로 눈을 들었다. 그리고 조숙한 아이답게 동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럼 또 한 명이 아빠를 앞질러버렸네.”

아빠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달래려고 지금은 유리창 청소에 여념이 없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삼 층 어머니는 괜찮지?”

카라반 부인은 유리를 닦는 동작을 멈추고 돌아보더니 완전히 등까지 미끄러져 내려와 있는 모자를 고쳐 쓰고 입술을 떨며 말했다.

“아! 네, 당신 어머니에 대해 말해 봐요, 우리. 제가 얼마나 난처했는지 알기나 해요! 좀 전에 이발소 주인 르바우딘(Lebaudin) 씨가 녹말 한 봉지를 빌리려 왔었어요. 마침 제가 집에 없었는데, 어머니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이발소 주인을 ‘거지’라며 내쫓아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해 줬죠. 그런데 어머니는 맞는 얘기를 하면 언제나 안 들리는 척한다니까요. 귀머거리는커녕 저보다도 더 잘 들어요. 그저 그런 척하는 것뿐이에요. 그 증거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니까요, 글쎄.”

카라반이 곤란해하며 잠자코 있는데 하녀가 조르르 달려와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알리려고 언제나 구석에 숨겨놓는 긴 빗자루를 들고 천장을 세 번 두드렸다. 그리고 모두 주방으로 옮겨갔다. 노파를 기다리며 카라반 부인은 수프를 떠 식탁에 놓았다. 하지만 노파는 오지 않았고 수프는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아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접시가 비어 어쩔 수 없이 또 기다려 보았다. 카라반 부인은 화가 나서 남편 탓을 했다.

“어머니는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은 언제나 어머니 편만 드니까.”

카라반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어지간히 곤혹스러웠지만 할머니를 데려오라고 마리 루이즈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눈을 내리깔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는데, 아내는 칼끝으로 컵 아래를 마구 두드렸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이 혼자 나타났다. 숨을 헐떡이고 얼굴이 새파랬다. 아이는 아주 빠르게 말했다.

“할머니가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카라반은 벌떡 일어나 냅킨을 식탁에 던지고 계단을 향해 뛰었다. 남편의 무겁고 성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아내는 또 시어머니의 나쁜 버릇이 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얕잡아보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노파는 방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바닥에 완전히 대고 길게 누워있었다. 아들이 뒤집어 보아도 움직이지 않고 온몸이 바싹 말라 있는 것 같았다. 피부는 누렇게 변하고 주름이 지고 거뭇하게 그을었으며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 마른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카라반은 어머니 곁에 무릎을 꿇고 신음했다.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하지만 카라반 부인은 시어머니를 한 번 보고 선언했다.

“뭐야! 또 졸도한 것뿐이잖아. 틀림없이 우리가 저녁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시신을 침대로 옮겨 옷을 모두 벗겼다. 그리고 카라반도 아내도 하녀도 모두 몸을 문질러보았다. 아무리 문질러도 그녀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닥터 쉐네를 불러오라고 하녀 로잘리(Rosalie)를 보냈다. 쉐네는 쉬렌(Suresnes) 근처의 부두에 살았다. 멀었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그가 도착했다. 그는 바로 노파를 진찰하고 맥을 잡고 청진을 한 후 선고를 내렸다.

“임종하셨습니다.”

카라반은 울컥 올라오는 흐느낌에 몸을 떨며 시체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는 경련을 일으키며 어머니의 굳은 얼굴에 입맞춤하고 어이어이 울어 큰 눈물방울이 빗방울처럼 죽은 사람의 얼굴에 떨어졌다.

카라반 부인은 어연간히 슬픔의 기색을 띠었다. 남편 뒤에 서서 연방 눈을 비비며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카라반은 갑자기 일어섰다.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얇은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진정한 슬픔 때문에 아주 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생님, 확실합니까………, 정말 확실한 겁니까? …….”

보조의는 재빨리 다가와 전문적인 솜씨로 시체를 다루었다. 상인이 자신의 상품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아, 이 눈을 보세요.”

보조의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 손가락 아래에 노파의 시선이 나타났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동공이 조금 커졌을 정도였다. 카라반은 심장에 충격을 받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쉐네는 시체의 수축한 팔을 잡고 강제로 손가락을 벌리고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앞에서처럼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손을 보세요. 절대로 제 말이 맞습니다. 안심하세요.”

카라반은 침대에 쓰러지더니 웅크리고 소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내는 여전히 우는 시늉을 하며 당장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 수건을 깔고 그 위에 양초 네 개를 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난로의 거울 뒤에 걸려있던 회양목 가지를 접시와 양초 사이에 놓고, 성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을 채웠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 물에 소금 한 꼬집을 던져 넣었다. 이걸로 청결한 의식이 될 거로 생각했다.

‘죽음’에 동반해야 하는 외형적인 일을 마치자, 그녀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그녀를 돕고 있던 보조의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라반을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고 있는 남편 곁으로 가 한쪽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하자 쉐네가 다른 한쪽 팔을 잡았다.

그들은 먼저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아내는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보조의도 그녀의 의견을 지지했다. 이런 돌발적인 불행에 처한 사람이 잃어서는 안 되는 확고한 의지, 용기, 체념 등을 권고했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그를 다시 양쪽에서 끌어안고 데리고 나갔다.

카라반은 마치 덩치만 큰 아이처럼 딸꾹질하며 울고 있었다.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양팔을 축 늘어뜨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양발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쉐네와 카라반 부인은, 카라반이 식사할 때면 언제나 앉는 팔걸이의자에 그를 앉혔다. 눈앞의 거의 빈 접시에는 먹다 남은 수프에 아직 숟가락이 흠뻑 젖어있었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자신의 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카라반 부인은 한쪽 구석에서 의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절차에 관해 물었고 우선 필요한 일을 들었다. 쉐네는 주뼛주뼛 뭔가 기다리는 것 같더니 겨우 작심한 듯 모자를 들고 아직 저녁 식사 전이라고 말하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가려 했다. 그녀는 소리쳤다.

“아직 식사 전이에요?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냥 있는 것 그대로지만 좀 드세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저녁을 먹을 정신이 없어서요.”

그는 사과하고 거절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이럴 때 누군가 있어 준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게다가 당신이 있어 준다면 남편도 조금은 안심이 될 거예요. 남편은 지금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곤란해요.”

쉐네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모자를 가구 위에 놓았다.

“그럼 부인,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 로잘리에게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하고 자신도 식탁 앞에 앉았다. ‘정말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상대가 돼 드리기 위해’라는 핑계로.

두 사람은 차가워진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쉐네는 수프를 한 접시 더 먹었다. 다음으로 양파 향이 물씬 나는 리옹식 소고기 요리(gras-double lyonnaise)가 나왔다. 그래서 카라반 부인은 시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맛있군요.”

쉐네가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리고 남편을 향해 말했다.

“가엾은 알프레드(Alfred), 당신도 조금 드세요. 뱃속에 뭔가 넣어놓아야 해요. 오늘 밤 당신은 밤을 새워야 해요.”

그는 얌전히 자신의 접시를 내밀었다. 권하면 잠자리에라도 들려는 듯 저항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서 그는 먹었다.

쉐네는 직접 음식을 덜어 세 그릇이나 먹었다. 카라반 부인은 가끔 커다란 고기 조각을 포크 끝에 푹 찔러 한 입 베어 물고는 눈치 없이 꿀꺽 삼키는 것이었다.

마카로니가 가득 담긴 샐러드가 그릇이 나오자 쉐네는 중얼거렸다.

“오! 이건 정말 좋아.”

이번에는 카라반 부인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계속 쿡쿡 찌르고 있는 커피잔에까지 가득 담아주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너그러워진 것을 기회로 남은 포도주를 마시거나 식탁 아래로 서로를 발로 차기도 했다.

쉐네는 로시니(Rossini)가 이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갑자기 말했다.

“이야, 이야! 운이 맞아요. 시가 되네요. 이렇게 하면.

마에스트로 로시니(Le maestro Rossini)

사랑하는 마카로니(Aimait le macaroni)”

하지만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카라반 부인이 갑자기 생각에 잠겨버린 것은 이번 사건으로 당연히 발생할 여러 가지 결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편은 빵조각을 굴려 식탁보 위에 늘어놓더니 백치처럼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목이 타는지 포도주가 가득 찬 잔을 끊임없이 입으로 가지고 간다. 충격과 슬픔에 압도된 그의 이성은 불안정해 보였다. 힘든 일이 소화되기 시작할 때 자주 일어나는 그 갑작스러운 당혹감에 그의 이성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닥터 쉐네는 어지간히도 많이 마셨는지 꽤 취해 있었다. 그리고 카라반 부인은 신경 쇼크에 따르는 반응을 격고 있어 물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도 조금 멍해진 것 같은 것이, 안절부절못하고 괴로워했다.

쉐네는 꽤나 재미있는 듯 죽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 파리 교외에는 시골 사람들이 많아 사람이 죽어도 농부들이 주로 그러듯이 아주 태연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죽은 것이 부친이 됐든 모친이 됐든 죽은 사람에 대한 그런 무례함, 그 무신경함이란 시골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파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래, 지난주였는데, 퓌토(Puteaux) 거리에서 불러 달려가 보니 환자는 이미 죽어 있었는데 침대 곁에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전날 빈사 상태의 환자가 자꾸 술을 마시고 싶어 해서 사준 그 아니스(avisette) 술병을 모두 태연하게 비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카라반 부인은 그저 유산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했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카라반은 카라반대로 머리가 텅 비어있어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아주 진하게 탄 커피가 나왔다. 게다가 코냑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마실 때마다 볼이 확 달아올라 그렇지 않아도 적당히 휘청거리고 있던 모두의 마음에 아직은 어느 정도 남아있던 사고력조차 엉클어버렸다.

그때 쉐네가 갑자기 브랜디(eau-de-vie) 병을 움켜쥐더니 마지막 잔이라며 모두에게 조금씩 따라주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소화작용이 가져오는 그 기분 좋은 열기로 무감각해진 그들은 식사 후의 알코올이 주는 그 동물적인 만족감에 아연해 커피잔 바닥에 노란 시럽이 되어 있는 달콤한 코냑으로 천천히 입을 가시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어 로잘리가 침대에 눕혔다.

그러자 카라반은 브랜디를 연이어서 몇 잔이나 마셔댔다. 술을 마셔 모든 걸 잊어버리려는, 그 불행한 사람들을 몰아대는 요구에 기계적으로 순응한 것이다. 평소의 흐리멍덩한 눈도 빛나기 시작했다.

쉐네는 마침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돌아가려 했다. 그리고 친구의 팔을 잡고 말했다.

“자아, 저와 함께 가시죠. 바깥 공기를 쐬는 게 좋을 겁니다. 우울할 때 가만히 있는 건 좋지 않아요.”

상대는 얌전히 하라는 대로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밝은 별빛 아래서 팔짱을 끼고 센 강을 향해 내려갔다. 따뜻한 밤의 향기로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계절이면 이 부근의 모든 정원은 꽃으로 가득하다. 낮에는 잠들어 있던 꽃향기도 저물녘이면 눈을 뜨는 듯 땅거미를 스치는 산들바람에 섞여 주위에 흩어지는 것이다.

인적도 없이 조용하고 넓은 거리 양쪽에 가스등이 두 줄로 나란히 개선문까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아득히 저 멀리, 수증기 속에서 희미하게, 파리는 수런거리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굉음과도 같은 음향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나 아니면 이 지방을 횡단해 대서양 쪽으로 멀어져가는 기차의 기적이 머나먼 평원에서 가끔 그에 답하는 것 같았다.

바깥 공기는 그들을 습격해 먼저 그들의 얼굴을 때리고 이어서 의사의 균형 감각을 무너뜨리고 또 저녁 식사 이후 계속된 카라반의 어지럼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라도 있는 듯 걷고 있었다. 정신은 마비되어 멍하니 격한 슬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히려 일종의 도덕적 무감각에 사로잡혀 괴로움마저 느끼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둠에 떠도는 따뜻한 향기에 자극받아 상쾌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다리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차가운 강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강은 일렬로 나란히 늘어선 키 큰 포플러 앞을 우울하고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별 그림자는 물살에 흔들려 물 위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다. 건너편 제방에 자욱하게 낀 하얀 물안개가 눅눅한 냄새를 폐까지 가져온다. 카라반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 강의 냄새에 먼 옛날의 기억이 홀연히 가슴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자신이 아직 어렸을 때 저 멀리 피카르디(Picardie)의 집 문 앞에서 어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몸을 웅크리며 옆에 속옷 같은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정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빨래하고 있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고 한적한 시골의 고요 속에서 빨래를 두드리는 소리와 “알프레드, 비누 좀 가지고 와”하고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뿐만 아니라 흐르는 물의 냄새와 습한 땅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흙내 나는 수증기조차 그때와 같은 느낌, 마음속 깊숙이 잊히지 않고 남아있던 그 맛 그대로 어머니가 죽은 오늘 밤 다시 느꼈다.

그는 또다시 불같은 절망의 파도에 휩싸여 굳어버렸다. 한 줄기 빛이 그의 모든 불행을 일시에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방황하는 숨결과의 만남은 새삼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이 영원한 이별로 인해 그의 심장은 찢어진 것 같았다. 그의 삶은 중간에 잘려버렸다. 그의 청춘은 모조리 이 죽음이 삼켜버려 사라져 버렸다. 이것으로 그의 과거는 모두 없어지고 청춘의 기억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것으로 이제 그에게 옛날의 일들, 그가 알던 사람들, 그의 고향, 자기 자신, 그리고 또 과거 자신이 자랄 때의 소소한 가정사를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어졌다. 이것으로 그의 일부분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다른 부분은 지금부터 죽어 가고 있다.

이렇게 기억의 행렬은 시작되었다. 그는 젊은 날의 ‘엄마’를 다시 보았다. 그것은 이 사람과는 따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입어 온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잊고 있던 여러 가지 모습의 그녀가 보였다. 어슴푸레한 얼굴의 윤곽, 몸짓, 음성, 습관, 입버릇, 화내는 모습, 가느다란 손가락의 움직임, 이런 수천 가지 익숙한 모습이 하나하나 눈앞에 떠올랐지만, 이 모두가 이제는 덧없는 것이었다.

의사에게 매달려 그는 신음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그 뚱뚱한 몸 전체는 흐느낌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취해 있었고, 게다가 언제나 남몰래 다니고 있는 곳으로 오늘도 놀러 가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비탄의 격한 발작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강둑의 풀밭에 앉히자, 환자의 진찰을 구실로 데꺽 떠나버렸다.

카라반은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마침내 눈물이 그치자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지더니 갑자기 평정을 되찾았다.

달이 뜨고 있었다. 수평선은 잔잔한 달빛에 젖어있었다. 키 큰 포플러는 은빛으로 반사되어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들판에 자욱하게 낀 안개는 끊임없이 내리는 가랑눈을 생각나게 했다. 더 이상 별 그림자가 헤엄치지 않고 다만 수면 가득 조개껍데기로 뒤덮인 듯 은빛 물결을 머금은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공기는 달콤하고 바람은 향기롭다. 나른한 기운이 땅의 잠 속을 지나가고 있다. 카라반은 밤의 이 달콤한 공기를 마시려 마음껏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상쾌함과 평온함, 그리고 비현실적인 안도감이 손발 끝까지 스며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엄습해 오는 행복감에 저항해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하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성실한 인간으로서의 일종의 양심에서 억지로 울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슬피 흐느꼈는데 지금은 어떤 슬픈 생각도 그의 마음을 쥐어짜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온화한 자연의 담담한 고요함에 싸여 있으니 문득 자신도 모르게 마음도 안정되어 갔다.

다리까지 오자 발차하려는 마지막 기차의 신호등이 보이고 기차 뒤에서 카페 ‘지구’의 밝은 창이 보였다.

그러자 그때 누군가에게 이 큰 불행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해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짓고 가게 문을 밀어 열고는 언제나 주인이 앉아 있는 카운터 쪽으로 갔다. 그러면 모두 일어나 그에게로 와서 “이봐요, 무슨 일 있어요?”하고 손을 내미는 것을 그는 기대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의 얼굴에 어린 슬픈 표정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이마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아아 하나님, 아아 하나님”하고 중얼거렸다.

주인은 그를 말똥말똥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물었다.

“카라반 씨,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세요?”

그는 대답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상대는 “아!”하고 깜짝 놀란 듯 한마디 했지만 마침 그때 가게 구석에서 “여기, 맥주 주세요!”하고 큰 소리로 주문하는 바람에 주인도 바로 “예! …… 지금 갑니다!” 하고 크게 대답하고 서빙을 하러 뛰어갔기 때문에 뒤에 남은 카라반은 멀뚱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 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테이블에서 도미노 광 세 사람이 미동도 하지 않고 여전히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라반은 동정을 구하기 위해 그 사람들 곁으로 갔다. 아무도 그를 보는 것 같지 않아 눈 딱 감고 말을 걸어보았다.

“바로 전에, 아주 불행한 일을 당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조금 고개를 들었지만, 눈은 손에 든 패에 붙박인 채 떨어질 줄 몰랐다.

“그래, 무슨 일이죠?”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세 사람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것참, 안됐군요.”

이런 경우 무심한 사람들이 그러듯이 자못 상심한 듯 너무나도 꾸며낸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또 한 사람은 할 말이 없었던지 머리를 흔들며 슬픈 휘파람 같은 것을 불어 보였다. 세 번째 사람은 ‘그까짓 거’라고라도 생각했던지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카라반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 곁을 떠났다. 자신의 이런 슬픔, 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이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둔해진 슬픔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 태연할 수 있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갔다.

아내는 잠옷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열린 창가의 낮은 의자에 앉은 채 여전히 유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옷을 벗으세요. 침대에서 천천히 얘기해요.”

그는 고개를 들어 눈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위에는…… 아무도 없잖아.”

“설마. 로잘리가 있어요. 한숨 자고 세 시에 당신이 교대해 주세요.”

그래도 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속바지만은 벗지 않고 있었다. 목도리로 머리를 싸매더니, 아내가 이불에 들어간 뒤 그도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내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런 때에도 그녀의 모자는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녀가 쓰는 모든 모자가 가진 어쩔 수 없는 습관으로 그것이 한 쪽 귀 위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알아요? 어머님이 유언장을 썼는지.”

그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글쎄…… 내 생각에는…… 없을 것 같은데, 유언장 같은 건 없었어.”

카라반 부인은 남편의 눈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노기가 가득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는 그래도 십 년이나 돌봐드렸어요! 집에 모셨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드렸잖아요! 당신 여동생 같으면 흉내도 못 낼 일이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 이래서는 어머님에게도 불명예가 될 거예요! 어머님은 생활비를 냈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르죠.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자녀를 돌보는 건 부모가 내는 돈으로 좌우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사후 유언이라는 걸로 보답해 주어야 해요. 존귀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고생해도, 애를 써 봐도 손해인 거예요! 아! 아! 어이가 없어요! 다 끝이에요!”

카라반은 기를 쓰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여보, 여보, 제발, 제발.”

겨우 진정이 되어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아침에는 동생에게 알려야죠.”

그는 귀가 번쩍 뜨였다.

“정말. 나는 생각도 못 했네. 날이 밝으면 바로 전보를 치자.”

그러나 그녀는 만사를 꿰뚫어 보고 있는 여자답게 그를 말렸다.

“그건 안 돼요. 전보를 치는 건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가 좋아요. 그럼, 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뭐든 할 수 있어요. 샤랑통(Charenton)에서 예까지 고작 두 시간이에요. 당신은 정신이 없었다고 변명하면 돼요. 아침 일찍 알리면 물건을 빼돌릴 시간이 없잖아요.”

하지만 카라반은 이마를 치고 말했다. 생각만 해도 오싹하는 그 상사에 대해 말할 때처럼 소심한 어조였다.

“그리고 사무실에도 알려야지.”

그녀가 대답했다.

“왜 알려야 하죠? 이런 경우 잊어버렸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알리지 마세요. 절 믿으세요. 당신 상사도 아무 할 말이 없을 거예요. 한번 당해보라죠.”

“아아! 그래, 그래.” 하고 그가 말했다.

“내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 놈은 틀림없이 평소처럼 부들부들 화를 낼 거야. 그때 내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랬다고 하는 거야. 그럼, 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떻게 하겠어.”

그러자 이 소심한 직장인은, 3층에서는 노모의 시체가 정신없이 잠들어 있는 하녀 곁에서 뒹굴고 있는데, 문득 이 희극에 들떠서 상사의 얼굴을 생각하며 손을 비비는 것이었다.

카라반 부인은 뭔가 말 못 할 고민거리라도 있는 듯 불안해했다. 겨우 그녀는 결심한 것 같았다.

“분명히 어머님은 그 시계를 당신한테 주신 게 맞죠? 왜 그 빌보케(bilboquet. 한쪽 끝에 공받이가 있고 끈에 공이 매달린 장난감-역자주)를 든 여자아이 모양을 한.”

그는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응,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아주 오래된 이야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어머니가 여기 처음 왔을 때니까.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날 돌봐주면 그 시계는 너한테 주겠다고.”

카라반 부인은 안심한 듯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지금 여기로 가지고 오는 게 좋겠어요. 동생이 와보세요. 우리한테 주겠어요?”

그는 머뭇거렸다.

“그런가……?”

그녀는 화를 냈다.

“그게 그런 거예요. 여기 오면 그걸로 끝이에요.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요. 어쨌든 그건 우리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 방에 있는 서랍장도 마찬가지예요. 그 상판이 대리석으로 된 것 말이에요. 그건 어머니가 기분이 좋았을 때 나한테 주신 거예요. 그것도 밑으로 가져와요.”

카라반은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 이건 중대한 책임 문제야!”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그를 향해 돌아섰다.

“아아! 정말 싫어! 당신이란 인간, 언제나 그 모양이라니까! 당신은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아이들을 굶겨 죽이는 편이 좋다는 건가요? 그 서랍장은 어머니가 나한테 주신 그때부터 우리 거였어요. 동생이 불만이라면 할 말이 있는 건 오히려 나니까. 됐죠! 내 머릿속에 그런 사람은 없어요. 자, 빨리 일어나세요. 가서 어머니가 주신 걸 가지고 와야죠.”

카라반은 설복당해 흠칫흠칫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지를 입으려고 하자 그녀가 막았다.

“옷 같은 건 안 입어도 돼요. 속바지만 입어도 뭐 어때요. 나도 이대로 가는데.”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잠옷 차림으로 나갔다.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축복받은 회양목과 접시 주위에 켜진 촛불 네 개만이 경직된 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노파를 지키고 있었다. 로잘리는 안락의자 위에서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리를 길게 쭉 뻗고 양손을 치마 위에서 깍지 끼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역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입은 벌린 채 가볍게 코를 골고 있다.

카라반은 시계를 잡았다. 그것은 제정 시대 미술품에서 주로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기물(器物) 중 하나였다. 다양한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금박을 입힌 소녀상이 손에 빌보케를 들고 있어 그 공이 시계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걸 나한테 주고 서랍장의 대리석을 떼어 내세요.”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숨을 헐떡이며 아내가 말하는 대로 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대리석을 어깨에 올렸다.

그렇게 부부는 출발했다. 카라반은 문 앞에서 몸을 구부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한쪽 팔에 시계를 안고 다른 한쪽 손으로 발밑을 비춰주며 뒤따라 내려갔다.

두 사람이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가장 큰 일이 끝났어요. 자, 이번엔 나머지를 가지러 가요.”

하지만 서랍장의 서랍에는 노파의 옷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이걸 어딘가에 숨겨야 했다.

카라반 부인은 한 가지 계책을 냈다.

“그럼, 현관에 있는 나무상자를 가지고 와요. 그거라면 40수우도 하지 않으니까 여기 둬도 괜찮아요.”

그리고 그 나무상자를 가져오자 두 사람은 서랍장의 옷가지를 옮겨 담았다.

소맷부리, 옷깃 장식, 셔츠, 모자 등, 두 사람은 자신들 뒤에서 잠들어 있는 할머니의 낡은 옷들을 하나하나 꺼내서는 나무상자 안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내일 올 브로(Braux) 부인, 그러니까 고인의 다른 아이의 눈을 속이려는 것이었다.

그 일이 끝나자 먼저 서랍만 아래로 옮겨두고 각각 서랍장 몸체의 한쪽 끝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어디에 두면 가장 어울릴까 두 사람 모두 한참을 고민하다 침대 맞은편 두 개의 창문 사이에 두기로 했다.

서랍장이 자리를 잡자, 카라반 부인은 자기 속옷들로 그것을 채웠다. 시계는 벽난로 정면 장식 위에 두었다. 그리고 부부는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했다. 아주 만족했다.

“아주 좋아요.”

그녀가 말하자 그도 대답했다.

“응, 아주 좋아.”

그리고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촛불을 껐다. 이렇게 해서 한 가족 모두는, 2층도 3층도 곧 잠이 들었다.

카라반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완전히 날이 밝아 있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머리가 멍하니 흐리멍덩해 어제 일을 기억해 낸 것은 몇 분이나 지나서였다. 기억이 살아나자 가슴을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다시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급히 위의 방으로 올라가 보니 로잘리는 아직 자고 있었다. 계속 잠만 잔 듯 어젯밤과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을 하라며 그녀를 내려보내고 자신은 줄어든 양초를 교체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너무나도 심각한 사색에 잠기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실은 죽음에 직면한 일반 사람들의 머리에 도래하는 그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흔하디흔한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껏 사색에 잠겨있는데 아내가 불러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아침에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 그녀는 그 목록을 건네주었는데 그에는 오갈이 들 정도였다.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1. 시청에 신고할 것.

2. 검시의를 부를 것.

3. 관을 주문할 것.

4. 교회에 갈 것.

5. 장의사에게 갈 것.

6. 부고장을 인쇄소에 맡기러 갈 것.

7. 공증인에게 갈 것.

8. 친척들에게 전보를 치러 갈 것.

그 외에도 자잘한 용무가 가득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벌써 소문이 퍼져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싶다고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1층 이발소에서는 마침 손님의 수염을 깎고 있던 주인과 그의 아내가 이 일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아내가 양말을 짜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또 한 명이 줄었네요. 이번에는 노랭이도 그런 노랭이가 없었죠. 정말 그런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예요. 내가 정말 싫어한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가보긴 해야겠죠.”

손님의 턱에 비누칠을 하며 주인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또 무슨 변덕을 부리려고! 여자들이란 참. 살아있을 때 그렇게 실컷 했으면 됐지 죽은 뒤에도 아직 안달복달이야.”

그래도 아내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렇긴 해도 나도 어쩔 수가 없네요. 역시 가보는 게 좋겠어요. 아무래도 그 일로 아침부터 끙끙대고 있으니까요. 지금 가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언제라도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봐두면 시원할 것 같아요.”

면도칼을 들고 있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뺨을 긁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죠,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여자들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죽은 사람을 보는 건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했다.

“정말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리고 뜨개질한 것을 판매대 위에 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벌써 이웃 여자 두 명이 와서 카라반 부인과 이번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인은 일의 전말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일동은 죽은 사람의 방으로 갔다. 네 여자는 발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가 순서대로 이불에 소금물을 뿌리고 무릎을 꿇고는 기도를 웅얼거리며 십자를 그렸다. 그리고 일어나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채 계속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 고인의 며느리는 얼굴에 손수건을 대고 무리해서 절망적으로 흑흑 흐느껴 울어 보였다.

부인이 방을 나가려고 몸을 돌리니 문 앞에 마리 루이즈와 필립 오귀스트가 서 있었다. 둘 다 셔츠만 입고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거짓 울음도 잊고서 손을 들고 두 아이 쪽으로 달려가더니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아귀 같은 놈들, 저리 가지 못해!”

그리고 10분 후 그녀는 다른 이웃 여자들과 다시 3층으로 올라와 시어머니 위로 회양목을 흔들고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고, 할 일을 다 하자 어느 사이엔가 두 아이가 자기 뒤에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전처럼 이번에도 두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지만 다음부터는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문객이 올 때마다 두 아이는 항상 뒤따라와 방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하는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다.

오후가 되자 구경하러 오는 여자들의 수도 줄었다. 곧 아무도 오지 않게 되었다. 카라반 부인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장례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혼자 남아있었다.

그 방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먼지가 섞인 바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흘러들어왔다. 움직이지 않는 시체 위로 네 개의 촛불의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불 위, 눈을 감은 얼굴 위, 길게 뻗은 양손 위에서는 작은 파리들이 오르락내리락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나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노파의 시체를 검시하고 있었다.

그때 마리 루이즈와 필립 오귀스트는 길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은 곧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그중에는 유난히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여무지고 생명의 신비를 더욱 민감하게 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른처럼 묻는 것이다.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응, 어젯밤에.”

“어때, 죽은 사람은?”

그래서 마리 루이즈는 설명을 시작해, 양초와 회양목과 얼굴 모양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마음에서 격한 호기심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죽은 사람 곁으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리 루이즈는 바로 여자아이 다섯과 몸집이 가장 크고 용맹한 남자아이 둘로 이루어진 선발대를 조직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마리는 모두 신발을 벗게 했다. 일행은 용케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가 쥐 떼처럼 재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자 어린 딸은 어머니를 흉내 내 의식을 맡았다. 그녀는 엄숙하게 친구들의 지도해 무릎을 꿇고 십자를 그리고 입술을 움직이고 일어나 침대에 소금물을 뿌렸다. 그리고 아이들을 한 덩어리로 모아 자기 곁으로 오게 했다. 겁이 나지만 신비롭다는 듯 황홀경에 빠져 죽은 사람의 얼굴과 손을 바라보는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마리는 흐느끼는 시늉을 하고 작은 손수건으로 눈을 눌렀다. 그사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 내고 마리는 기뻐하며 빠른 걸음으로 이 첫 번째 그룹을 데리고 나가더니 바로 두 번째 그룹을 끌고 왔다. 거기에 다시 세 번째 그룹이 뒤를 이었다. 이것은 마을 악동들은 전부, 누더기를 걸친 거지 아이들까지 모조리 이 새로운 놀이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리는 어머니의 흉내를 실로 완벽하게 해냈다.

결국 마리도 지쳐버렸다. 다른 장난 거리가 아이들을 멀리 데리고 갔다. 그래서 할머니는 사람들로부터 잊힌 채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불의 불꽃이 흔들려 주름투성이의 바싹 마른 얼굴 위에서 불빛이 춤추고 있다.

8시쯤 카라반이 올라와 창문을 닫고 초를 바꿨다. 그 들어오는 모습은 너무나 침착해, 몇 달 동안이나 시체를 봐와 익숙해진 것만 같았다. 아직 부패가 진행된 흔적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을 확인만 하고 저녁 식사 자리로 돌아가 그것을 아내에게 알리니 아내가 대답했다.

“거봐요. 나무가 중요한 거예요. 그건 1년은 갈 거예요.”

가족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수프를 먹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내던져 뒀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 각각 의자에서 졸고 있고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램프 불빛이 어두워졌다. 카라반 부인은 바로 나사를 돌렸다. 하지만 램프는 속이 빈 소리를 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듯 길게 끄는 소리였지만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여분으로 사둔 석유가 없었다! 잡화상에 사러 가면 저녁 식사가 늦어질 것이다. 그래서 양초를 찾아봤다. 하지만 위층에 켜둔 것 외에는 한 자루도 없었다.

무슨 일에서나 판단이 빠른 카라반 부인이 바로 루이즈를 위로 올려보내 두 개만 가지고 오게 했다. 그래서 모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딸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조용했다. 드디어 딸이 허둥지둥 내려왔다.

문을 열었다. 깜짝 놀란 얼굴이다. 전날 밤, 참사를 알릴 때보다 훨씬 더 겁에 질려 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아아! 아빠. 할머니가, 옷을 입고 있어요.”

카라반이 무서운 기세로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뒹굴어 벽에 부딪혔다. 그는 우물거렸다.

“뭐……, 뭐라고……?”

하지만 마리 루이즈는 너무 흥분한 바람에 목이 막혀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 할…… 할머니가, 옷을 입고 있어요……. 내려와요.”

카라반이 미친 사람처럼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아내도 아연해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3층 문 앞에서 그는 멈춰 서버렸다. 뭔가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떨리고,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카라반 부인은 더 강단이 있는 성격이라 손잡이를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조금 전보다 어두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키가 크고 야윈 형체가 움직이고 있다. 할머니가 일어서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자, 아직 완전히는 의식을 회복하지 않았지만, 옆으로 몸을 돌려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고는 죽음의 장에 켜져 있던 촛불 세 개를 입으로 불어 껐다. 그 사이 기력이 회복되어 일어나 입을 것을 찾으려 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서랍장이 없어져 처음에는 갈팡질팡했지만, 차츰 나무상자 안에서 자기가 찾는 것을 조금씩 찾아내 그녀는 침착하게 그것을 입었다. 그리고 물이 담긴 접시를 비우고 회양목을 거울 뒤에 두고 의자를 각각 제자리에 놓고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나타난 것이다.

카라반은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아내는 뒤에서 너무나도 위선자 같은 모습으로 되뇌어 말하고 있었다.

“아아, 잘됐어, 정말, 잘됐어!”

하지만 노파는 감동하지도 않고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조각상처럼 뻣뻣하게 차가운 눈으로 그저 “밥은 아직 멀었나?”하고 물어볼 뿐이었다.

카라반은 기겁하고 중얼거렸다.

“다됐어요, 엄마,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가 익숙지 않은 간절함으로 노모의 팔을 잡으니, 며느리인 카라반 부인은 초를 들고 불을 붙여 두 사람 앞에 서서 발밑을 비춰주며 한 계단 한 계단 뒷걸음질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은 어젯밤 남편이 대리석을 옮길 때 한 것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2층에 도착했을 때 하마터면 그녀는 마침 2층으로 올라오던 사람들과 부딪힐 뻔했다. 샤랑통에 살고 있는 브로 부인과 그녀의 남편이었다.

아내는 배에 물혹이 생겨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뚱뚱하고 키가 큰 여자였는데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바로 도망치려 했다. 남편은 구둣방을 하는 사회주의자로 코에까지 털이 나 있는, 원숭이처럼 생긴 남자였는데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중얼거렸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살아있어!”

카라반 부인은 상대를 알아보자 너무나도 절망적인 몸짓을 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어머! …… 아가씨였어요? 이게 웬일이래요?”

하지만 브로 부인은 얼이 빠진 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전보를 받고 왔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뒤에서 그녀를 꼬집어 입을 다물게 하려 했다. 그리고 교활한 웃음을 그 짙은 수염 속에 감추며 말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예전부터 양가 사이에 복잡하게 뒤얽힌 악감정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어서 노파가 마지막 계단까지 온 것을 보자 재빨리 그쪽으로 가 얼굴을 덮고 있는 털을 그녀의 볼에 문지르며 들리지 않는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몸을 좀 어떠세요? 항상 건강하세요.”

브로 부인은 죽은 줄로 알았던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어머니에게 키스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거대한 배는 계단의 층계참을 막아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노파는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회색 눈은 탐색하듯이 차갑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향했는데 거기에는 노파의 마음이 역력히 비쳐 그녀의 아이들은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카라반은 설명할 생각으로 말했다.

“어머니는 몸이 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좋아졌어. 완전히 좋아졌어. 그렇죠, 어머니?”

그러자 할머니는 걷기 시작하며 멀리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평소의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졸도한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듣고 있었어.”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급히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았다.

오직 브로 씨만이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찡그린 얼굴은 마치 사악한 고릴라 같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남에게 불쾌감을 주려는 듯 말을 비비 꼬아서 모두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현관에서는 초인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때마다 로잘리가 카라반을 부르러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그는 냅킨을 던지고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매제가 오늘이 면접 날이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카라반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일이 좀 있어서. 그저 그것뿐이야.”

그러다 소포가 와서 그가 무심코 열어보니 검은 봉투에 든 부고장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눈까지 새빨개져서 봉투를 닫고 양복 조끼에 감춰버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다만 벽난로 앞장식 위에 올려둔 그녀의 시계가 그 금박을 한 빌보케를 흔들고 있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음 같은 침묵 속에 당혹감이 점점 커가고 있었다.

그러자 노파는 마녀처럼 주름진 얼굴을 딸 쪽으로 향하더니, 그 눈은 악의로 가득 차 있었는데, 선언하듯이 말했다.

“이번 월요일에는 너희 집에 저 여자아이를 데리고 가거라. 이제 보기 싫어졌어.”

얼굴이 활짝 핀 브로 부인이 소리쳤다.

“예, 엄마. 알았어요.”

하지만 얼굴이 창백해진 카라반 부인은 걱정 때문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이럭저럭하는 사이 두 남자는 조금씩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계기로 갑자기 정치 이야기로 넘어갔다. 브로는 공산주의적 혁명적 이론을 지지했기 때문에 수염으로 덮인 얼굴에 눈을 반짝이며 무서운 기세로 고함쳤다.

“소유권 같은 건 말이죠, 그건 노동자에게서 빼앗은 겁니다. 토지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따라서 유산 같은 건 추잡스러운,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

하지만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던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온화한 말투로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죠.”

그때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닥터 쉐네가 나타났다. 그는 순간 놀라는가 싶더니 바로 평정을 되찾고 노파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아! 이건, 이건, 어머님, 오늘은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아니, 저도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단을 올라오며 마음속으로 말했죠. 그 노인, 꼭 깨어나 계실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하고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마치 퐁뇌프(Ponf-Neuf. 센 강의 다리)처럼 단단하니까 말이죠. 우리 중 누구보다 오래 남을 겁니다.”

의사는 자리에 앉자, 커피를 받아 들고 마시며 두 남자의 대화에 끼어들어 브로에게 동조했다. 그 자신도 코뮌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파는 피곤했던지 자기 방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카라반이 달려가니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 서랍장과 시계를 지금 바로 위로 올려 줘.”

그리고 아들이 더듬거리며 “예, 엄마”라고 말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딸의 팔을 잡고 그대로 가버렸다.

카라반 부부가 이 참담한 재난에 어리둥절 반벙어리가 되어 있는 사이 브로는 손을 비비며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카라반 부인은 갑자기 화가 나서 무턱대고 브로 쪽으로 돌진해 소리쳤다.

“이 도둑놈, 악당, 건달…… 그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어…… 나는…… 나는…… 나는…….”

숨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브로는 웃으며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거기에 브로의 아내가 돌아왔기 때문에 카라반 부인은 이 시누이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여기에서 두 여자, 뚱뚱한 여자는 불룩한 배를 내밀어 위협하고 발작성의 야윈 여자는 묘한 목소리를 내고 손을 떨며 서로 악담을 주고받았다.

쉐네와 브로가 가운데 끼어들었다. 그리고 브로는 “적당히 좀 해. 이 맹추야. 시끄러워 죽겠어!” 하고 계속 소리치며 자기 아내를 어깨로 쭉쭉 밀고 가 문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말다툼하며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쉐네 씨도 돌아갔다.

카라반 부부는 쓸쓸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침내 가장은 관자놀이에 식은땀을 흘리며 느른하게 의자에 앉더니, 중얼거렸다.

“부장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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