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두 가지 빛깔
제가 살아오며 만났던 인연이 밝은 빛깔이었는지, 혹은 어두운 빛깔이었는지 정확히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주 멀고도 낯선 나라, 멕시코의 공항에서 다시 마주쳤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쩌면 그 인연은 다른 의미로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제게는 밝은 빛의 인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수하던 시절, 미술학원을 다닐 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림 실력을 눈에 띄게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제 첫사랑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생이던 그는 미술학원에서 디자인 강사로 일하며 남의 집 차고를 빌려 만든 작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가르치고, 그와 동시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그 시절, 그는 저에게 참 대단하고 반짝이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막 펼쳐진 대학생활은 제게 새로운 세상이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는 점점 저를 향한 집착이 강해졌고, 저는 누군가의 지나친 구속을 몹시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1년을 사귀고 이별을 결심하기까지 무려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 경험은 제게 꽤나 깊은 상처로 남았기에 이후로는 결혼하기 전까지 연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고, 또 두렵기도 했던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기차 안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였고, 신기하게도 저희는 나란히 앞자리와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우연이었지요.
저는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연인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이었기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기차는 밤을 달려 서울로 향했고, 저희는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한 후 그는 다시 예전의 모습처럼 저를 힘들게 했고, 저는 그런 태도가 다시 상처로 다가와 결국 그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멕시코에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또다시 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그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저는 놀라고 당황해 자리에서 숨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 행동을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잠시 마주친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저는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스쳐 가는 인연일 테니, 그저 그렇게 지나가면 된다고 애써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아직도 제가 그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는 감정은 얼마나 외롭고 슬픈 것인지 잘 알기에, 그 사람의 마음 한편이 그런 오해로 채워져 있다면 그저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이제는 서로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 인연이 제게 남긴 시간은 분명 어떤 빛깔로든 제 마음 어딘가에 잔잔히 스며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