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제품 팔기 (1)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거창하게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돕는 사람이고, 소박하게는 제품과 서비스와 관련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마무리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P필요한 건 M뭐든지 해서 PM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딱 하나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있었다. 바로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
한 때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덕트 오너의 차이가 무엇이느냐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무슨 바이럴마냥 퍼지던 때가 있었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기획자든 매니저든, 매니저든 오너든 결국 자기 제품과 서비스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고, 개발과 디자인 빼고 전부 다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무엇이 크게 다르고, 또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싶은 마음이었다. 장미를 호박이라 부른다고 향을 잃고, 수박을 딸기라고 부른다고 씨가 사라질까.
그런데 한국에서의 통상적인 JD와 R&R을 살펴보며 적어도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000 사이의 차이를 딱 하나 짚자면, 결국 자기 제품을 '판매하는가'의 차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제품의 판매 하나에 울고 웃는가가 가장 큰 차이 아닐까.
통상 큰 조직의, 특히 커머스의 서비스 기획자는 기능을 설계하고, 논의하고, 구현한다. 화면설계를 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이를 통해 제품 내 고객의 객단가를 늘리거나, 구매 전환율을 높인다. 그러나 제품 하나하나, 서비스 하나하나를 판매하며 그 판매 하나에 울고 웃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반면 말 그대로 제품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 제품의 판매나 사용에 울고 웃는다. 물론 여기에는 '제품 또는 서비스란 돈을 받고 파는 유/무형의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큰 조직에선 인프라를 내부의 자산, 제품으로 취급하고 하물며 검색 기능 하나를 두고서도 프로덕트 매니저를 따로 채용하니까. 그런데 과연 '돈 받고 팔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담당자들은 고객이 왜 사는지, 왜 안 사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저렴하게 만들어 매출원가를 줄일지 같은 것들을 고민할까. 그러니까, 비즈니스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매출과 비용을 신경쓸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돈 받고 파는 제품을 담당하지 않고 있으니까.
제품의 판매 하나에 울고 웃는가가 가장 큰 차이 아닐까
22년 3분기, 지금 이 브런치의 구독자가 300명 남짓하던 때에 신기하게도 여러 제안이 들어왔다. 기고, 출판, VOD 강의, 현장 강의 출강 등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에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감사한 제안들. 그로부터 한 9개월 째 된 지금은, 어느덧 퍼블리와 요즘IT에 나의 글이 도합 10편 넘게 실려있고, 인프런의 VOD는 매달 용돈을 쏠쏠하게 가져다주며, 드물긴 하지만 부트캠프나 기업강의를 한 번 다녀오면 월급 못지 않은 금액이 통장에 들어온다. (이번 달이면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나온다...세상에)
그리고 이렇게 나의 지식, 경험, 노하우, 생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든 생각.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빠르게 만들어내지?
어느새 '기능'이 아니라 정말로 '돈 받고 파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비즈니스 담당자, 가장 앞단의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사고하기 시작했다. 세일즈 매니저라면 신입부터 진작에 했을 생각, 프리랜서나 사업가라면 매일 같이 품고 살 생각을, 명색에 '기획자' 또는 '프로덕트 매니저'라고 딱지를 달아두고 일한지 5년차가 되서어야 하기 시작했다니. 부끄러웠다.
그리고 결심했다. 회사 밖에서 야생에 놓여보자. 퇴근 후와 주말의 시간에, 정말로 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나의 힘으로 오롯이 팔아보자. 회사의 힘으로는 우습게 이야기하던 MAU 몇 십만이 아니라, 나의 고객 한 명의 구매와 이탈에 울고 웃어보자.
회사의 힘으로는 우습게 이야기하던 MAU 몇 십만이 아니라,
나의 고객 한 명의 구매와 이탈에 울고 웃어보자.
지난 주말, 기업강의와 부트캠프 등 B2B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던 강의를 B2C의 형태로 직접 판매하기로 결심한 뒤 제품 기획과 상세페이지 초안을 완성하고, 고객을 발굴하고 제품을 노출시킬 채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휴일과 주말, 퇴근 후의 머리 속에는 제품 판매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졌다.
'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제품들과 내 제품의 차이는 무엇이지?'
'얼마를 받고 팔 수 있지?'
'쟤네는 이 정도 금액 받는데 나라고 못 받을 이유 있나?'
'어디에 가야 내 제품의 고객을 만날 수 있지?'
'신청도 해놓고 왜 연락을 안받지?'
'이거 그냥 VOD로 만들어 파는게 더 쉬우려나...그럼 단가가 낮아지는데'
'책 나올 때 홍보를 해볼까?'
'크리에이터로서 콘텐츠를 쌓고 고객부터 모을까'
'브런치에 홍보를 해도 반응이 없네. 브런치 팔로워들은 내 고객 아바타가 아니었나보구나'
...
어쩌면 한 번도 절박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그래서 늘 머리로만 알고 있고 몸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눈 앞에 당면한 '나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가 어찌되더라도, 이 고민과 시행착오가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발품 팔아 제품 팔기]라는 이름으로 매거진을 열었다. 출퇴근길, 주말과 휴일에 나의 제품과 서비스 판매를 통해 깨달은 것과 경험한 것을 정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