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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Jul 09. 2023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PM

그 모든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PM으로 일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답할 테다. 어김없이 돌아온 팀장님과의 월간 1:1 미팅에서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나는 PM이라는 직무와 PMF(Product-Market Fit)를 찾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사업의 성공에서 재미나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깊이 들여다보며 배우고, 알게 된 것을 남에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비슷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가장 큰 보람과 효용을 느낌을 알고 있다. 피봇(pivot)은 예정된 미래다. 때와 방법만 미지수다.


그럼 잘 맞지도 않는 그 일을 왜 아직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 이른 시기에 가장 밀도 있고 다양한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테다. PM은 기획자이자 기술자고 팀원이자 팀장이다. 사용자를 대변(해야)하면서도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면서도 때로 감각적이(어야 한)다.


개발자인 나, 분석가인 나, 디자이너인 나, 사업가인 나 관리자이자 팀장인 나, 실무자인 나를 마주한다. 말 그대로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평행우주 속 모든 세계의 내가 겪었을 배움이 날마다 조금씩 지금 여기의 내게로 스며든다.   덕분에 매일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이 하나씩  생겨난다. 평생 모르고 살았을 어느 우주 속 나의 역량과 가능성을 잠시나마 체감할 때의 기분은, 처음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 에블린의 기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빌려온 능력에는 유효시간이 있던 영화의 설정처럼, 책과 강의, 또는 갖가지 경험에서 조금씩 빌려온 관점과 정보는 금방 밑천을 드러내고 만다. 모두 조금씩 안다는 것은 결국 모두 부족하다는 뜻이니까.  무엇 하나도 전문가는 아니니까. 그래서 빌려 온 능력으로 추는 이 엉거주춤한 춤사위가 때론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런 날엔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한 것 마냥, 저 베이글 속으로 다 빨려가 버렸으면 한다. 이번 달의 OKR도, 내일의 스크럼(Scrum) 같은 것도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지금 나의 이 일희일비와 좌충우돌이 끝내는 나를 키우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과연 다른 세계 속 나는 리더십이나 팀 매니징을 고민했을까. 과연 다른 세계 속 나는 기획자와 비즈니스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 세계 속 나는 어쩌면 지금 여기의 나를 상상하진 않았을까. 때와 경로만 달랐을 뿐 어쩌면 이건 정해진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분명 나는 PM이라는 직무와 완벽한 핏을 맞추진 못했다. 늘 어딘가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그만큼 늘 다른 무언가를 꿈꾼다. 그럼에도 이 일은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나를 만나게 하므로,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PM이라는 역할을 할 것 같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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