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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Aug 13. 2023

고객은 정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좋아할까?

선의와 열정이 만든 오버 스펙의 함정

조금만 방심해도 시장과 고객이 아니라 기업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면서 그게 시장과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믿게 된다. 기업이 흔히 하는 실수가 고객이 필요로 하지 않는 기능을 덕지덕지 붙인, 가격만 비싼 오버 스펙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 <당신의 제품/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이유> 중에서


학생이나 직장인이 주로 소비하는 서비스 중에는 온/오프라인 형태의 교육이 있다. 여느 제품이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교육 역시 품질이 있다. 어떤 강의는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어떤 강의는 최고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면 부족한 강의란 무엇일까? 강사의 전달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전문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 예시나 실습이 없이 이론만 있어서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처럼 양과 질이 적거나 낮은 것만이 '부족한 강의'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강사의 입장에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알아두면 좋은데"라는 생각으로 첨언한 내용이 강의나 멘토링의 질을 낮추기도 한다. 고객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고객이 관심이 없거나, 고객 어차피 활용하지 않게 될 정보니까.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이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 대비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때의 비용은 단순히 '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객의 시간, 노력과 정신력 역시 비용에 포함된다. 교육에 참여하기까지 걸린 시간, 교육에서 사용하는 시간, 교육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정신적인 노동력 역시 고객의 입장에선 비용이다.


그래서 때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생겨난 커리큘럼의 '오버 스펙'은, 같은 값에 얹어주는 덤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을 높이는 행위가 되어버리고 만. 고객은 더 오래 앉아있어야 하고, 더 많은 정신력을 사용해야 하니까. 더욱이 미리 쟁여둘 수 없어 휘발되는 현장 강의와 멘토링은, 수업이 끝난 뒤 무엇인가 놓치고 간 느낌, 다 소화하지 못한 느낌을 주면서 오히려 고객 경험을 망칠 수도 있다.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 대비 더 많은 효용을 제공하는 게 기본이다. 이때의 비용은 돈만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미리 사두고 쟁여둘 수 있는 VOD 강의는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장 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격 대비 커리큘럼이 많아 보여서, 가격 대비 분량이 많아 보여서 "오 뭔가 많이 알려주네"라는 심정으로 구매해 두지만 어차피 듣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제공할 필요가 없었던 스펙이 된다.


VOD 강의의 완강률. 강의 자체의 품질 이슈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걸 제공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강의와 강연, 멘토링 등의 교육 서비스에서 불필요한 오버 스펙의 기준은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는 고객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끝났을 때 고객은 어떤 것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되거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가? 이에 부합하면 커리큘럼이 아무리 많아도 오버 스펙이 아니고, 이와 무관하면 아무리 간결해도 오버 스펙이다.


기업이나 대학 강의 등 교육을 준비하다 보면 금세 장표의 수가 늘어나곤 하는 걸 발견한다. 길을 조금 먼저 걷기 시작한 선배로서 알려주고 싶은 내용이 산더미다. 나는 몰라서 좌충우돌했던 내용들을, 부디 수강생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분명 선의와 열정에서 시작했지만, 어디까지 나의 공급자인 나의 관점이다. 고객은 그걸 원한다고 한 적이 없다. (물론, 원하지 않을까?라는 가설에서 출발해서 이를 수정해 나가는 것 역시 필요하지만.)


어느덧 다음 주엔 교육 업체 등 중개 플랫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내 이름으로 시작하는 강의의 베타 버전의 첫 수업이 시작된다. 나는 과연 고객이 도달하고자 하는 모습에 대해 명확한 가설을 그렸는지, 나의 커리큘럼은 오로지 이 관점에서 설계되었는지, 부족하거나 넘치는 건 없는지 한 번 더 되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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