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상관없이 시장과 고객이 우리 제품과 서비스의 쓰임새를 결정할 수도 있다. 고객이 찾아준 PMF가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이유> 중에서
플래터님의 책,
PM 신입이 아닌 창업 희망자에게도 좋겠는데요?
책이 나온 뒤 추천인 중 한 분께 인사를 드렸다. 책을 내게 된 자초지종과 그간의 여러 에피소드, 책의 내용 등 서면으로 나누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의견을 들었다. "플래터님 책은 어쩌면 창업을 희망하는 분들에게도 좋을 것 같은데요?"
당시엔 내 주제에 당치도 않은 것 같아 손사래를 쳤는데, 최근 창업과 사업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쭉 읽다 보니 아예 안될 것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업의 시작이자 핵심은 시장에 제품/서비스를 내놓고 파는 일이고, 공급과 운영, 홍보와 인사, 재무 등이 덧붙으면 그게 하나의 사업이니까. 그리고 PM(프로덕트 매니저)이 하는 일이 바로 그 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부분이니까. (물론 제법 많은 곳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를 아직도 화면이나 기능을 설계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긴 하지만)
제품 담당자로서 낸 제품에 대한 책 역시 결국엔 제품이었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시장과 고객의 반응은 어떤 방향으로든 언제나 내 추측과는 다른 부분이 생긴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고객에서 시작했지만
고객을 잊어버리는 기획자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성장시킬 때에 혹은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할 때에 중요한 건 '나'(공급자)일까 혹은 고객일까?
당연히 둘 다 중요하다. 사업은 언제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나와 이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고객 사이의 교집합이자 핏(fit)이다. 암만 내 의지와 욕구, 비전이 크고 뚜렷해도 고객 없이 지속하는 사업은 없고, 암만 시장과 고객에 대한 단서와 아이디어로 출발했어도, 그 안에는 '나'의 의지나 욕구 혹은 비전이 숨어 있으니까. 그래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의도나 목적, 추측과 상상에 빠져드는 때가 있고 이는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새 내 생각은 이러하고 내 추측은 이러하고 내 가설은 이러하다는 게 문서와 미팅을 전부 채우게 되는 때다. 자료는 방대하고 논리도 튼튼한데 어느새 고객이 빠져 있다. 정확히는 반대한 자료와 논리를 쌓을 사이 실제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나의 추측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빠져 있다.
제품과 서비스의 시작과 흥망에 대한 단서는 분명 고객에게 있는데, 고객을 만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다. 마치 나의 방대한 자료와 탄탄한 논리를 담보로 고객의 반응을 대출이라도 해놓은 마냥.
그리고 이렇게 오래 고객과 단절된 채 기획 및 출시된 제품과 서비스는, 이를 담당한 기획자는 언제나 충격에 빠진다. 내 추측과 달라서. 나의 완벽한 황금빛 논리와 고객의 이야기가 맞지 않아서.
고객의 반응은 때론 기쁘고 때론 또 슬프게도
언제나 나의 추측과 의도와는 다르다
강의나 책을 기획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PM 구직자와 신입을 대상으로 기획하여 제작했는데, 그래서 현업에서 몇 년간 계신 분들께는 좋지 못한 평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응은 뜻밖이었다.
알라딘의 독자 리뷰. 감사하게도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또한 책을 읽은 분들의 연차와 평점 외에도 그들의 상황이나 추천 사유나 목적, 이른바 고객의 use case 역시 훨씬 더 다양했다. 프리랜서 기획자 혹은 개발자나 디자이너 분들도 있었고, 본인의 참고가 아닌 후배 양성을 위한 자료로 접근한 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즈음 테스트한 강의 역시 마찬가지로 구직자나 신입이 아닌 현직 1~3년 차의 에이전시 기획자 내지는 디자이너나 마케터 등 주변 직군의 신청이 더 많았다.
예스24의 독자 리뷰. 후배 양성을 위한 책으로 추천해주셨다.
예스24의 독자 리뷰. PM이 아닌 직군에게도 추천해주셨다.
이처럼 고객의 반응과 행동은 정말로 나의 추측과 의도와는 다르다. 누가 내 고객인지, 누가 내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그중에서도 어떤 이들이 특히 더 제품을 사랑해 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는, 기획자인 내 상상 밖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탁상 위 자료수집과 문서 작성 그리고 미팅 너머 어떻게 해서든 더 빨리, 효율적으로, 자주 고객과 만나야 하는 이유다.
제품은 생동하며 성장하는 유기체고
성장의 단서는 언제나 고객에게 있다
도서 출간 및 강의 출시 이후, 나는 내 콘텐츠의 핵심 타깃을 PM 주변 직군 현직자 내지는 초창기 스타트업의 실무자와 임원 등으로 조금씩 바꿔보고 있다. 글과 강의의 형태로 기획 너머 고객개발과 그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거나 작성하고 있고, 프로세스와 툴의 도입에 대한 내용도 준비 중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확장이고 고객의 반응이 단서가 된 덕분이다.
결국 제품을 처음 만드는 건 기획자지만 이후의 형태와 방식, 방향을 끌어가며 성장시키는 건 절반 혹은 그 이상이 고객에게 달려있다. 고객과 소통하며 커가고 또 변화하는 제품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고 그 성장의 양분과 단서는 언제나 고객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