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며 신혼집을 물색하고 있다. 서로가 중요시하는 집의 조건(교통, 구조, 환경 등)과 가용 가능한 예산을 바탕으로 물건을 알아보고 비교하는 작업에 11월 주말과 평일 저녁을 대부분 할애했다. 심지어는 마음에 드는 두 집 중 하나를 최종 비교하기 위해 평일에 한 번 더 다녀오기도 하며 드디어 물건을 골라 계약을 논의했다.
제법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신혼집 탐색 및 결정 과정은 그러나 아뿔싸! 대출 심사에서 이슈가 생겨 급히 대응하느라 좌충우돌했다. 서류를 재정비하고, plan B를 준비하고, 최악의 경우 계약 논의를 취소하고 12월부터 다시 물건을 알아볼 시간이 있는지 등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신혼집 구하기라는 기획 혹은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가로 짓는 key factor는 위치나 환경, 구조와 같은 물건의 스펙이 아니었다. 현금 몇 억을 들고 결혼하는 부부가 아닌 이상,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도 실패 혹은 전면 수정으로 이끌 수도 있는 핵심 요인은 어디까지나 대출 심사였다.
실험 단위의 업무를 하는 그로스팀 혹은 프로덕트팀은 최대한 가볍고 빠르게 가설을 검증할 방법에 집중한다. 프로젝트라는 개념이 많지 않다. 몇 주, 몇 달 단위의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오히려 비효율로 생각하기도 한다. 굳이 그런 긴 호흡으로만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MVP가 그 정도 공수를 요하는 일이어야만 하는지 의심한다.
'일단 해보는 거야' (속도) '빠르게 시도한 후 대응하자' (애자일) '굳이 그렇게 크게 해야 해?' (린~MVP)
이처럼 짧은 호흡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고려할 이해관계자나 변수가 적다는 의미다. 기획의 승패를 가로 짓는 건 오로지 고객의 반응뿐이다. 가설이 검증되었는지 아닌지만 알면 된다.
그런데 얽힌 이해관계자와 이해관계자마다의 요구사항이 많고 다양하며 과정에서의 변수와 리스크 risk가 많은 프로젝트에선 가설을 검증하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이 많다. 자연스레 이 모든 노력을 엎어버리거나 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핵심 고객과 이해관계자, 제약사항과 핵심자원을 고려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고객은 누구지?' (이해관계자 파악) '그 고객의 문제를 어디까지 풀 거지?' (해결 범위) '문제를 푸는 데 고려사항은 뭐지?' (제약사항 파악) '무엇이 이 일을 어그러뜨릴 수 있지?' (리스크 관리)
둘 중 무엇이 옳고 그른 건 없다. 때에 따라 모드를 바꿔가며 둘 모두를 해야 하는 게 기획자이자 PM이다.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는 것도 PM이고 과정을 설계하고 이슈 없이 완수하게 만드는 것도 PM이니까.
다만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둘 중 무엇을 더 요하는 성질의 일인지 파악하는 게 핵심인 것 같다. 신혼집 구하기가 린과 애자일의 문제인지, 이해관계자 조율과 리스크 관리의 문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