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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Nov 17. 2023

PM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고객을 학습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가장 큰 리스크, 고객 학습의 부재


   자기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무엇일까? 재무적으로는 현금이 제 때에 흐르지 않는 게 위험하고, 법무적으로는 관련 법규 혹은 규제에 어긋나는 게 위험하고, 프로젝트 관리에서는 유통과 납기 일정과 제작 비용이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럼 프로덕트 매니저에겐 무엇이 가장 위험할까? 출근 후엔 웹/앱을, 퇴근 후엔 강의 등의 콘텐츠라는 내 제품/서비스를 키워나가는 입장에서 생각했을 땐, 단연 고객을 학습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고객 학습이 필요한 이유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한 뒤의 고객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과 무조건 다르게 되어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에 무얼 팔아야 하는지'라는 기획의 뼈대가 모두 가설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가설'이지, 사전 연구와 검토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일 수 없는 스타트업에선 근거 몇 조각 덧댄 '뇌피셜'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니 해봐야만 알 수 있고, 해보면 기대와는 다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실제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며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다면? 무엇이 왜 어떻게 얼마나 내 가설과 다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고, 그것이 이른바 '감'으로 하는 기획이다.



고객 학습을 저해하는 요인 또는 환경


   그럼 고객 학습을 저해하는 요인 또는 환경은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우선 고객 학습얼 저해하는 요인과 환경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감과 직관에 의존하는 자세


   무엇이 되었든 제품과 서비스의 배포, 유통, 납기 전후로 고객에 대해 학습하는 절차가 빠져있다면, 더 나아가 이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은 가장 위험하다. 한 업계의 30~40년을 종사한 대가guru라면 고객에 대한 학습 없이 자기만의 감과 직관같은 것만으로도 필승의 전략과 전술을 펼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적인 실무자라면 감과 직관이 암만 뛰어나봐야 '뇌피셜'에 불과하다.


2. 타인의 플랫폼과 데이터에 의존하기


   타인의 플랫폼에 입점하여 제품/서비스를 유통시키는 일의 한계는, 단순히 기능 혹은 UX/UI의 차원이 아니다. 궁극적인 한계와 단점은 바로 고객에 대해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브런치가 암만 대시보드를 제공하더라도, 작가는 고객 Segment를 분리하기 어렵고 그들의 행동 특성을 볼 수도 없다. 또는 인프런과 같은 VOD 유통 플랫폼은 구매 내역 외에는 고객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어 누가 내 제품을 사는 고객인지 알기 어렵다. 유통만 있을 뿐 고객 학습은 없다.


   물론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초기부터 자체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너무 오랜 기간 타인의 데이터에 의존한다면, 바꿔 말해 어떻게든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을 구축하지 못하면 이는 분명 고객 학습을 중장기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다.


3. 낮은 고객 학습의 빈도 (또는 긴 고객 학습 주기)


   고객 학습을 진행하더라도 빈도가 너무 낮거나 그 주기가 너무 길다면 무의미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제품/서비스 사이에서 고객 학습은 때에 따라 대상과 방식이 다를지언정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총선 혹은 대선 출구조사도 아니고서야,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설문조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너무 긴 호흡의 프로젝트는 반응을 확인하는 시점이 늦어진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리스크를 지니게 된다)


   다만 이때의 고객 학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터뷰와 설문조사, 프로토타입과 UT, MVP와 데이터 분석, A/B Test 등 일반적인 제품팀이 하는 일이 모두 고객 학습이다. 뭐가 되었든 고객 학습의 가능성을 반드시 열어두고 고객 학습의 주기를 최대한 잦게 가져가야 한다.


4. 고객을 학습했지만 이를 반영하기 어려운 제품/서비스 구조


   만약 고객 학습을 적절한 빈도와 주기로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토대로 재검증하기 위해 제품/서비스에 반영할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가설-검증의 사이클은 결코 한 두 차례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객에 대해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인사이트와 가설을 도출하고, 다시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학습을 하는 반복의 연속이다.


   예컨대 8주짜리 부트캠프의 커리큘럼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부트캠프가 초기에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확정하여 이를 토대로 모집과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커리큘럼이 이러한 고객에게 적합할 것이다'라는 것 역시 가설이다. 매일, 매주의 수업에서 현장의 반응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커리큘럼은 빠르게 수정되어야 한다. 교육 커리큘럼 역시 제품이고 가설을 검증하는 수단이다. '초기에 이렇게 설계했고 이렇게 모집했으니 이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고객 학습에 어긋나는 말도 없다. 설문조사는 하지만 다음 주에 개선된 모습을 반영하지 않으면 고객의 말이 사실인지 검증할 수 없다. 설문은 그냥 raw data를 쌓자고 하는 게 아니다.


   (반면 대부분의 오프라인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반응을 반영하여 수정할 수 없다. 실물이 있고 이 실물은 그 자체로 이미 약속된 거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오프라인 제품과 서비스는 사전 학습에 힘을 쏟는다. 더 많은 연구와 리서치, 더 많은 테스트와 검토, 더 정밀한 분석이 이를 대체한다.)



어떻게든 고객 학습을 가능하게 & 더 원활하게 만들기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리스크를 낮추기 위하여 고객 학습을 가능하게 해야 하고 이왕이면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대형 자본과 인력이 없는 스타트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니까. 아래는 고객 학습과 반영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 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고객에 대해 학습할 창구를 마련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다.


1. 설문조사/인터뷰 이벤트


   인프런과 같이 일방적으로 VOD를 유통하고 그 판매 및 정산 내역만 받아보는 곳에서라면 고객에 대해 절대로 학습할 수 없을까? 원하는 만큼의 속도나 양은 아닐 수 있더라도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예컨대 구매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혹은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별도로 강의비의 얼마를 환급해 드리겠다'라는 식의 공지사항을 적어두면 어떨까? 또는 '구매 및 수강 후 양식에 맞춰 리뷰를 남겨주시면 기프티콘을 드리겠다'라는 안내는 어떨까? 이런 식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일부 고객에 대해서라도 정보를 얻어 이를 단서 혹은 검증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인프런에서 강의 오픈 후 작성한 신규 소식.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설문/인터뷰에 응할 것을 요청했다.


2. 뉴스레터로 리드lead 모으기


   브런치와 같이 고객에게 안내문을 보낼 수도 없는 플랫폼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브런치라면? 글을 올리는 것 외에는 일괄되게 공지를 보낼 수도 없고 글을 올린다고 모두가 보는 것도 아니다. 사은품을 준다거나 하는 일도 어색하게만 들리는 플랫폼이다.


   그럼에도 여지는 있다. 예컨대 나는 얼마 전 과거 작성한 글의 대부분의 하단에 뉴스레터 구독 메뉴를 만들어두었다. 특별히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수십 명의, 내 글에 관심이 있는 고객의 이메일 주소가 생겼다. 이들을 대상으로 뉴스레터라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과 인터뷰 등을 요청할 수도 있다.

과거 글 하단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링크를 달아두었다. 어느새 수십 명의 리드가 수집되었다.


3. 오픈카톡방 유입시키기


   이러나저러나 고객 학습을 하기 위해선 1) 고객 분석을 해주는 툴이 있거나 2) 직접 물어볼 고객의 명단을 갖고 있거나 3) 혹은 고객 자체를 직접 모아두는 일 중 하나는 필요하다.


   그럼 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한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오픈카톡방에 유입시키는 건 어떨까? 예컨대 취준생이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라면 오픈카톡방 입장 시 간단한 자기소개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직무와 연차를 알 수 있고, 혹여 카톡방에서 대화라도 이어지면 내 고객군의 또 다른 pain point를 발견하고 이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강의 마무리 영상에서 오픈카톡방을 홍보 중이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든 고객을 학습하려는 마음가짐과 아이디어


   위에서 소개한 방법이 A/B Test 또는 프로덕트 데이터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 필요한 방법이 다르고, 방법마다 특장점이 다르니까. 그럼에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에 대한 예측 모델 같은 걸 만들려는 게 아니라, 1) 고객에 대한 단서를 얻고 2) 나의 가설을 검증하고 3) 내 확신의 정도를 높이려는 것이니까


   결국 중요한 건 제품과 서비스를 성장시키려는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내 고객에 대해 알아가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주어진 제약 사항 내에서 비록 아쉬운 대로라도 어떻게든 고객 학습 방안을 마련해 보려는 의지와 아이디어일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의 부재가 가장 큰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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