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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Nov 21. 2023

기획자/PM이라면 읽기 어려운 글만큼은 피해봅시다

결승은 모르겠고 일단 예선이라도 통과하는 글쓰기의 노하우

가독성은 높은 글은 드물고 귀하다


   최근 2년 정도 강의와 멘토링을 통해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을 만나고 있다. 강의 과제부터 프로젝트 기획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등을 보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생각보다 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많은 이들이 프레임워크와 양식, 디자인(컬러와 배치, 크기 등)에 신경 쓰지만, 정작 명료하고 깔끔해 보이는 그 프레임워크와 디자인 안에 담긴 글text은 중구난방인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나 과제 피드백 멘토링을 하다 보면 느끼는 건 가독성 높은 글은 드물다 못해 아주 귀하다는 것. 적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소화하고 다시 산출해내야 하는 부트캠프 특성상, 짐작컨대 수강생은 자신의 과제의 가독성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제품으로 치면 핵심 정책을 수립하고 기능을 일단 만드는 게 중요하기에 UX/UI는 우선 뒷단이 되는 셈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제품/서비스를 기획할 때에 UX/UI가 핵심인 제품이 아닌 이상 뒷전으로 생각하니까. UX/UI는 추후 개선을 통한 최적화의 영역으로 생각하곤 한다. 필수재는 아닌, 사치재쯤으로. 


잘 읽혀야 그다음이 있다


   그런데 글에서 UX/UI란 핵심은 아니지만 사치재 역시 아니다. 독특한 취향이 있거나 연구 등 목적이 뚜렷한 독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읽기 난해한 글을 공들여 읽지 않는다. 글의 내용의 양과 깊이를 떠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을 일부러 노력을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대부분의 글은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쓴다. 누구를 보여준다는 생각보단, 내 생각을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만족 너머의 목적이 있는 글에선 최대한 가독성을 신경 쓴다. 기고, 출판, 기획안 등이 그렇다. 


   그렇게 써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가 우선 잘 읽을 수 있어야 그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읽혀야, 눈에 들어와야 그다음에 비로소 글에 담긴 뜻과 마음이 전달된다. 



어떤 글이 잘 읽히지 않는가


   그럼 어떤 글이 잘 읽히지 않는 글일까. 


   우선 잘 읽히는 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나 역시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공을 들이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컨설턴트처럼 전략적인 보고서/기획안 작성의 노하우를 배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2년 남짓 여러 기회로 취업준비생들과 저연차 직장인 분들과 강의, 멘토링 등을 통해 만나고 또 업무에서도 글쓰기 연습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직군의 분들과 협업을 하다 보니 최소한 '어떤 글이 잘 읽히지 않는가'에 대한 나름의 경험과 생각은 정리되었다. 


(단, 이때의 '글'이란 소설이나 수필, 대본 등이 아닌 정보 전달 및 설득 목적의 글로 한정 짓기로 한다)


1. 결론이 없는 글


   모든 글엔 결론이 있어야 한다. 결론이 없는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라는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하니까. "우리가 이런이런 고민을 잔뜩 했어요" "이런 내용들이 있었어요" 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어디까지나 본론일 뿐이다. 


   결론이 없는 글은 KPI를 정의하지 않은 기획안과 같다. 그 결론이 맞느냐 틀리냐, 얼마나 매력적인냐를 떠나 결론이 있어야 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결론이 없는 정보는 필요 없는 정보다. 


2. 결론이 뒤에 드러나는 글


   결론은 초두에 드러나야 한다. 두괄식과 미괄식 중에선 두괄식이다. 


   작성자의 관점에선 그 과정에서의 사고의 흐름과 고민, 각종 부수적인 자료가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게 궁금해서 읽는 독자 입장에선, 이왕이면 그 정보를 제일 먼저 받아보고 싶다. 결론이란 글의 핵심가치다. 어떻게든 먼저 제공해야 한다. 웹/앱 제품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먼저, 빨리 고객에게 핵심 가치 또는 a-ha moment를 제공해주고자 하는 것처럼.


3. 어휘의 사용에 일관성이 없는 글


   어휘는 일관성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대와 내가 동일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선 우선 내가 사용하는 어휘나 용어를 상대방도 동일하게 이해할 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어휘와 용어는 절대적 진리의 영역이 아닌, 정의definition의 영역이다. 서로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그렇기에 서로 다른 걸 상상할 수 있다. 예컨대 메뉴, 카테고리, 구분, 섹션, 게시판 등등의 어휘는 하나의 제품/서비스에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게 '메뉴'이고, 누군가에겐 '카테고리'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글을 계약서처럼 '앞으로 이걸 000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라고 정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최소한 하나의 명사를 가리키는 어휘가 중간에 다른 어휘로 바뀌진 않아야 한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4. 장황한 문장


   장황한 문장의 난해함은 누구나 체감하여 알고 있을 것 같다.


5. 짧게 쓰느라 완결되지 않은 문장


    반면 짧게 쓰느라 구조 또는 내용이 완결되지 않는 문장은 장황한 문장보다도 못할 때가 있다. 장황한 문장은 최소한 공들여 읽으면 결론을 도출하고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을 테니까. 그러나 짧게 쓰기 위해 구조나 내용을 완결 짓지 못한 문장은, 다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의미 파악에 필요한 정보마저 누락시킬 수 있다.


   예컨대 바로 위의 "장황한 문장의 난해함은 누구나 체감하여 알고 있을 것 같다."라는 글은 문장(정확히는 문단)을 짧게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빠트렸다. "짧고 간결하게 쓰라"라는 결론을 버렸다. 물론 이 정도 결론은 누구나 추론할 수 있고 그 추론이 서로 다르지 않을 테지만, 업무에서 다루는 글은 이보다 더 많은 해석과 추론을 필요로 한다. 


    정보 전달과 설득을 위한 글은 MVP 기획과 같다. 필요한 것만 써야 하지만, 필요한 걸 빠트리면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으로서의 완결성이 사라진다. 


6. 구조화되지 않은 글


   글은 구조화되어야 한다. 방명록이나 트위터가 아닌 이상, 글은 하나의 문장이나 문단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조화 없는 글은 홀 케이크를 한 입에 다 삼키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 케이크가 아무리 달고 촉촉해도, 그렇게 먹어서 맛있다고 느낄 사람은 없다.


   또한 길고 장황한 글이 읽히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구조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길고 장황한 글일지언정 잘 구조화하면 각각의 문단과 문장은 간결해진다. 


7. 구조화의 계층hierarchy가 맞지 않는 글


   구조화는 동일한 계층끼리 묶여야 한다. 구조화는 했지만 구조화의 계층이 맞지 않는 글 역시 혼선을 일으켜 읽기 쉽지 않다. 구조화의 계층을 따지는 일은 IA(Information Architecture)나 검수를 위한 Test Case를 작성할 때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글은 아래와 같은 형태로 구조화된다. 근거1-1과 근거1-2가 본론1을, 근거2-1과 근거2-2가 본론2를 뒷받침한다. 다시 본론1과 본론2는 결론1을 뒷받침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이상적인 형태고, 이는 기획자나 PM이 IA나 Test Cae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더 먼저 혹은 상위 개념인가, 무엇이 더 이후, 하위 개념 인가 하는 차원이다.


   반면 아래와 같은 형태는 근거1-1과 근거1-2가 본론1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 근거1-1과 근거1-2 역시 궁극적으로는 결론1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는 맞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본론1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다. 본론과 근거의 무게는 분명 다르고, 순서 역시 다르다.


   예시만 보면 '에이 설마 누가 이렇게 쓰나요?' 싶지만 제법 많은 학생들과 저연차 직장인들의 문서에 이러한 실수가 나타난다. 탭(Tab) 한 번으로 구조화의 계층 수정이 가능한 노션과 워드 등에서 구조화는 쉬운 작업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영역일 수도 있다.  


8. 강조가 너무 많거나 너무 없는 문장


   강조가 너무 많은 문장은 강조가 없는 문장과 마찬가지다. 강조는 말 그대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강조가 많다는 건 모두가 1등이란 뜻이고 그 누구도 1등은 아니라는 뜻이다. 강조는 정말 강조해야 할 때 쓰기 위한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다 안 읽더라도 딱 이거 하나만 읽고 가라"는 수준에 가깝다.  


   굵게, 이탤릭체, 밑줄, 색상 등이 난무한 문서는 글보다는 색칠놀이에 가깝다. 특히나 노션의 경우 콜아웃, 토글, 하이라이트, 인용 등 너무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면서 각종 정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강조처리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보의 가독성을 낮추고 심지어는 구조화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독자를 위한 노력이 실은 나를 위한 노력이다


  평소보다 제법 긴 호흡을 통해 독자에게 잘 읽히지 않는 글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쓰다 보면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알아보는' 동료나 멘토를 희망하는 사람도, '내가 작가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싶은 사람도, '동료나 멘토나 나한테 돈 주는 고객도 아닌데 그 사람들도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글쓴이 본인을 위한 노하우다. 기획자로서, PM으로서 우리는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에게 도움을 구하고, 협조를 구하고, 설득을 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거니까. 선의를 전제로 한 대부분의 행위에서 오로지 상대방 혹은 나만을 위한 일은 없다. 글을 받아보는 독자가 읽기 편하면,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이 된다. 


   고객이 성공하면 내 제품과 서비스가 성공하는 것처럼, 독자가 잘 읽어야 내가 잘 되는 것이다.



사족.


 물론 이렇게 글을 쓴 나 역시 말한 대로 살지 못하고, 쓴 대로 행하지 못한다. 당장 이 글의 내용이 다시 이 글의 형태를 반박하는 촌극도 일어날 수 있다. 나 역시 대가가 아닌, 갈고닦아나가는 과정에 놓인 일개 실무자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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