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업무 현장에서 자동화와 효율화, 혹은 여느 웹소설의 제목처럼 "어제까진 문과였던 내가 깨어나 보니 웹 개발자?!" 같은 이야기를 주로 목격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식을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찾아볼 필요 없이 제가 요즘 겪는 일입니다.
내년도 대학원 입학을 목표로 대학원을 탐색하고, 부족한 배경지식을 쌓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업무와 병행하고자 미국의 MOOC 플랫폼인 edX에서 출퇴근길과 주말을 활용해 강의를 수강하고 과제를 풀고 있는데, 여간 녹록지 않습니다. 강의 내내 이어지는 개념과 정의, 증명 사이의 맥락을 잡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선행지식이 부족하거든요.
선행지식을 위한 선행지식이 없어 곤란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해하다가, 어느새 ChatGPT 등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대학원 입시반 과외 선생님 같은 느낌이랄까요. 개념과 개념 사이의 맥락을 묻고, 전제를 확인하고, 잘못 이해한 바 없는지 되묻고, 급하면 과제의 힌트도 얻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는, 더 나아가 대학(원)은 앞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럼에도 소용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지금까지의 변론은 이렇습니다. 우선,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답이 좋은 질문에서 온다면, 좋은 질문은 경험 외에도 내가 알고 있는 개념과 관점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아는 게 있어야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어느 수준까지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학(원)이 제시하는 커리큘럼이 하나의 가이드로서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의 장소와 수단이 어떻든, '이 영역은 최소한 이런 걸 이런 수준까지는 이해해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처음 발걸음을 딛는 이들은 대개 어디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니까요.
물론 이러한 변론마저 곧 무색해질 시대가 오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20대 중후반의 우울과 불안을 문학의 힘을 빌려 이겨낸 저는, 무소용의 소용, 자본화되지 않는 시간과 경험도 인생에는 반드시 있어야 함을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내게 돈이 아깝지 않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 2~3천만 원이 덜컥 생기면 자가용 구매와 대학원 중에서 스스로 무엇을 택할지 알고 있습니다.
기술이 어떻든, 시대가 어떻든, 수단이 바뀔지언정 기어코 가야 할 길은 가게 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