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PM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한 가지 원칙
PM/PO로의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제 막 처음 제품 혹은 서비스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질문이 있다.
“이건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인가요?”
간단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취준생 혹은 주니어 PM/PO들이 쉽게 답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제품과 서비스란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막상 직접 고객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PM 직무를 처음 맡았던 때에, 고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기획부터 했으니까.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고객 이해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고, 지금도 각종 멘토링이나 특강에서 취준생 또는 주니어 PM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해하고 배워야 할 본질 중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은 언제나 자원이 부족하다.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데이터도, 여유도 없다. 심지어는 직무랄 것도 없이 필요한 건 뭐든지 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나의 첫 스타트업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운영, 운영관리, 데이터 취합 및 성과 분석 등 필요한 건(P) 뭐든지(M) 하던 덕분이었을까. 회사에 웹/앱 서비스가 처음 필요해졌을 때, 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회사의 첫 웹/앱 서비스 기획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회사의 비전과 웹/앱 출시의 목표는 뚜렷했고, 운영, 사업개발, 마케팅 등 여러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은 많고 또 다양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웹/앱의 사용자가 될 고객을 만나고, 조사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 이는 누구도 없었다. 모두 자기만의 목표, 자기만의 요구사항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마치 출시하기만 하면 고객이 서비스를 사용해 주기로 계약서라도 받아둔 것처럼.
모든 조사는 데스크리서치에서 그쳤고, 모든 기획은 저마다의 욕망이 담긴 요구사항일 뿐이었으며, 그래서 모든 논의는 언제나 탁상공론에 그쳤다. 회의실 안에서만 나눈 전략과 비전, 기능과 디자인, 정책과 워딩 등은 겉보기엔 그럴듯했지만 거기 어디에도 실제 고객의 문제나 수요, 고객에 대한 가설은 없었다.
고객을 만나지 않고, 고객을 이해하지 않고 시작된 기획과 프로덕트는 그래서 구체적을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첫 프로덕트의 기억을 살려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1. 기획은 있지만, 근거는 없다
모든 기능과 플로우, 정책과 디자인이 팀 내부의 의견과 상상으로만 논의되고 설계된다. 모두 저마다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만, 속되게 말해 뇌피셜에 지나지 않았다. 제품은 고객이 사용한다. 고객의 문제, 고객의 수요, 고객의 목적, 고객의 의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어떤 열띤 논의나 의견도 결국 근거 없는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2. 성공 기준이 없다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매출, MAU, 리텐션, 전환율, 혹은 또 어떤 다른 지표라 할지라도 이는 모두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따라오는 후행지표일 뿐이다. 고객을 만나지 않고 이해하지 않은 기획은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가설 역시 불분명하므로, 본인의 제품이 제 역할을 한다는 걸 증명할 지표가 무엇인지 떠올리지 못한다. 그 결과 영혼 없이 공허한 MAU, 상세페이지 전환율 정도를 성공 지표 내세우다 그마저도 시원치 않으면 또다시 탁상공론으로 접어든다.
3. 성장 전략이 막막하다
성공의 기준이 없다면 이후의 성장 전략 역시 모호하다. MAU를 제품의 출시 후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정의했다고 가정해 보자. 기대한 MAU는 1만인데 5천이라면, Paid 마케팅을 하자는 이야기 외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설령 광고비를 잔뜩 사용해 MAU가 1만, 혹은 1만 5천이 되었다고 치자. 광고비만 줄이면 다시 줄어들게 뻔한 이 상황은, 성장이라 할 수 있을까?
혹은 아무거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하거나,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며 '요즘 이게 트렌드입니다', '경쟁사도 이걸 해서 저희도 이걸 해야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까? 이를 성장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제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다. 따라서 제품과 서비스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하는지, 혹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의 핵심 요소나 속성을 알지 못한다면 제품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이를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 결과 이어지는 활동들은 막연한 시도일 뿐 제품 성장의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이라고 부르기엔 한계가 있다.
4. 리텐션 전략이 없다
리텐션의 비결을 단 한 가지로 답할 순 없다. 산업과 제품 특성마다 리텐션의 수준도 다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고객과 사용자는 제품과 서비스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할 때에 다시 찾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시 찾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문제는 고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어떻게 하면 고객이 다시 올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객의 이탈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뒤에 따라오는 건 푸시 메시지를 자주 보내자, 할인 쿠폰을 보내자, 밑도 끝도 없이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만들자 같은 근거 없는 공허한 아이디어뿐이다.
5. 브랜드 및 마케팅 언어가 공허하다
브랜드의 언어와 메시지는 고객의 언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단순히 광고 문구나 홈페이지 카피만이 아니라, 제품의 핵심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 사용 설명서의 문장, 고객센터의 답변 톤, 심지어는 푸시 알림 한 줄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고객을 만나지 않고 만든 브랜드 언어는 필연적으로 ‘우리끼리의 언어’에 머문다.
사내 회의실에서 결정된 슬로건은 멋지고 세련될 수 있지만, 정작 고객에게는 낯설거나, 공감되지 않거나, 그 의미조차 불분명할 수 있다. 결국 이런 메시지는 아래와 같은 문제를 낳는다.
1) 고객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고객의 경험과 맞닿아 있지 않기에, 메시지가 감정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2) 마케팅 효율이 떨어진다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과 다르면 광고 문구나 콘텐츠는 클릭되지 않고, 전환율도 낮아진다.
3) 사내 브랜드 방향성조차 흔들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메시지 일관성이 사라지고, 캠페인마다 다른 톤과 주제를 쓰게 된다.
브랜드 언어가 공허하다는 건 단순히 ‘말이 멋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의 삶 속에서 제품이 차지하는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미사여구만 남았다는 뜻이다. 결국 브랜드와 마케팅 언어는 고객 인터뷰, 사용 후기, 실제 대화 속에서 길어 올린 ‘고객의 표현’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다소 단호한 문장으로 극단적인 사례를 이야기했지만 이는 모두 나의 첫 프로젝트에서 경험한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한 경험담이자, 처절한 회고록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획은 고객과 만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화려하고 논리적인 전략, 세련된 UI/UX, 근사한 슬로건보다 앞서야 하는 건 단 하나, 고객이 겪는 진짜 문제와 그 맥락에 대한 이해다. 그리고 그 이해는 책상 위에서, 회의실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