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난 결혼을 하기 전까지 연애란 걸 참 끊임없이 한 것 같다. 보통 이별을 하면 그 사람과 만난 시간만큼의 텀을 두는 게, 전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들 하던데 난 참 예의가 어지간히 없었다.
어릴 적엔 멋모르고 나를 좋다고 하면, 특별히 나쁘지 않다면 웬만해선 만나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빠르면 일주일을 만나고 헤어진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진중한 고민들을 시작하고부터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만남을 시작했고, 사귀는 기간도 몇 년씩 길어지긴 했지만, 그마저도 헤어지게 되면 오랜 텀을 두지 않고 또 다른 이성을 사귀었던 것 같다.
그런 사실들을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결혼을 해서 한 남자에게 정착을 하겠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 친구의 농담을 들은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정착(?) 하여 두 아이를 낳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있다.
결혼 후, 가끔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건 애틋하고 설레던 추억보단 어떤 미안함 같은 감정인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야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뒤돌아보면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심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나다. 나를 두고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 했던 엄마와 나의 순수한 의리를 배신했던 사람들. 나는 그런 이유들로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참 웃긴 건, 사람을 믿지 못하지만 여전히 믿고 싶고, 사랑을 믿지 못했지만 사랑이 고팠다. 영원을 믿지 않지만 영원하고 싶었다. 그런 감정들이 스스로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들의 오롯한 피해자는 지나간 연인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배우자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나의 내면 바닥까지 박박 긁어 보여주며, 다 이해하고 보듬어 달라는 떼를 썼던 것 같다. 맞다. 나는 정말 나쁜 여자였다. 한 없이 잘해주고 헌신하다가도 기분에 따라 금방 달라지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요즘 와 드는 생각, 20대의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그런 싱그러운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 한편으론 즐거운 기억도 많지만 단 한 번도 온전한, 제대로 된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영원한 건 없으니까'라는 무의식의 주문 때문이었을까. 상처의 부작용 같은 것이었을까.
나의 아픔과 지랄 맞음을 다 받아주고, 제일 힘들었던 시절 내 옆을 지켜준 인연들에 감사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난 더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난 그저 아팠고, 보살핌이 필요했다고 비겁한 핑계를 대고 싶다. 나는 참 나빴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감사했던 인연들이 어디에선가 늘 행복하길 바라본다.
愛 愛 家
미혜
상처가 애달파
사랑을 포옹한다.
그대를 품고도
사랑은 침묵한다.
영원을 바랐지만,
순진하지 못했던
끊임없는 노크에도
숨을 참던 사랑.
그럼에도 나는
한 사람의 애애가.
사랑해 본 적 없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사랑을 사랑하는.
삼키는 사랑의 무게
미혜
처음으로 영원을 꿈꾸게 해 준, 한 사람.
입이 없는 그대는 예상과 같이 한결같은 사람.
말을 아끼듯 나를 아껴주는 그런 사람.
그대 덕분에 나는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다.
결국 소중한 것을 붙들어 매는 건,
측정 불가한 수준의 어떠한 무게.
진중한 사랑의 언어는
수 없이 뱉는 달콤한 말의 언어가 아니라
수 없이 삼켜주는 입이 없는 말이다.
*바로 위의 시는 신랑에게 바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