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잊고 사는 걸까.

후유증

by 미카

나는 아무렇지 않다.

그저 자고 싶을 뿐이었다.

마음이, 몸이 끝도 없이 늘어지는 요즘이다.

그래, 이건 다 그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려니..




그날



그래, 아마도 그날부터였다. 이십 년 가까이 버텨준 몇 안 되는 절친 중 한 명. 그녀의 어머니는 급성 암이라고 했다. 부산 모임을 갔던 그때, 확정받은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진행이 너무 빨라 더 이상의 치료들은 생명연장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어머니는 마지막을 조금 더 인간답게 살고 가시겠다며 더 이상의 치료들에 거부 의사를 밝히시고 당신의 집에 계신다고 들었다.


이 안타까운 사실을 들은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지난 주말 그녀의 소식이 내게 다시 들린다. 최근 일주일 사이 거동도, 대화도 되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하신다고.. 가족들 모두 출석하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회를 했다고..


눈물이 났다. 한동안 웬만한 아픔에 내어주지 않던 감정을 내어준 그날. 그래, 그날부터였다. 아이들의 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어서야 그나마 정신도 몸도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주 내내 오전 시간엔 짧게라도 잠을 잔 것 같다. 두 시간 알람을 맞추고.. 잔소리꾼처럼 나를 몰아세우는 소리에 나는 다시, 그 얄미운 입을 틀어막고.. 시간을 맞추길 반복하며,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듯 잠의 이불을 꽁꽁 덮고 나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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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들어오는 길, 신랑에게 부재중 메시지가 와있다.



"자기야. 전화했었네?"

"응. 놀라지는 말고, 나 차 사고 나서 구급차 안이야."



교차로에서 빨간 불을 확인하고 좌회전을 하며 들어가는 순간, 직진 차로에서 달려오던 차가 빨간 불에 멈추지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와 운전석 바로 옆을 들이박았단다. 차는 찌그러지고, 유리창은 깨어져 파편이 날리고, 에어백까지 작동했다고, 안 죽은 게 다행이란다. 이 큰 사고를 겪었다기엔 평소와 같이 너무도 침착한 내 신랑.


하..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나는 아직 정신이 깨지 않은 탓인지 멍하다. 놀랍지도,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고 그저 머릿속이 어지럽다.



"나 아직 덜 나은 건가....?"



나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감정에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감정을 시원하게 느끼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미각을 잃고 맛을 보는 그런 느낌처럼. 머리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감정임에도 심장이 개운하게 느끼지 못하는 미지근함이랄까.


신랑과 전화를 끊은 나는 어제와 같이 잠을 청했다. 모르겠다.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깨어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답답한 무력감이 나를 더 견딜 수 없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이상하잖아. 이 상황에 잠이 오다니. 아니지, 자려고 노력하다니...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두 시간쯤 억지로라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때마침 신랑이 병원을 옮겨 입원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나는 입원 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실의 면회가 불가능하여 6층 접수처 앞 대기실에서 잠시 만남이 가능했다. 급히 입원한 바람에, 병원에서 나눠 준 입원복 차림에 어울리지도 않는 구두를 신고 나를 맞이하는 신랑. 나에게 사고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이래저래 경위를 들려준다. 보통은 사고 몇 시간 후부터 온 몸이 아파 온다지만 신랑은 처음부터 척추와 근육들의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팔이며, 다리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신랑의 얘기를 집중해서 한참 듣는다. 오랜만에 나는 신랑의 얼굴을 하나씩, 한참을 뜯어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오빠가 사고가 났어. 엉엉~."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비교적 담담하던 나. 엄마와의 통화에 죽어있던 모든 감각이 깨어났다. 엄마라고 부르자마자 눈물이 쏟아진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의 경험이 있었다. 시신을 눈앞에서 보고도 슬프지 않고 담담하여 내 팔을 꼬집었던 그때. 한참 뒤 할아버지의 상여가 집을 떠날 때, 마지막이니 인사하라고 하시던 엄마의 그 한마디가 마취된 모든 감각을 깨웠던 그때. 오늘이 그날과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너무 큰 일에 오히려 담담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아니.. 너무 큰 일엔 몸의 감각 시스템이 잠시 모든 감각을 마취시키는 듯싶기도 하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고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를 끝내면 서서히 마취가 풀리는, 그제야 허락을 받은 내 눈이 뜨거운 물을 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볼 수 있고, 매일 내 옆에 있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소중한 존재를 망각하곤 한다. 머리론 이미 정해진 답처럼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오늘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만약을 생각해보았다. 내 신랑이 이 세상에, 내 옆에 없다면 나는 어떨까..라는 만약.


신이 인간에게 망각을 선물로 줬다는 말들을 한다. 정말 신은 인간에게 망각을 선물로만 준 것일까? 망각은,

신이 때론 '선물'로, 때론 '벌'로 주는 것이 아닐까. 망각이 필요할 때와 망각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게 함이 또 신의 뜻은 아닐는지. 우리는 언제나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않고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만약, 내가 망각한 채 소중한 '그' 또는 '그녀'를 잃는다면 그것은 신의 '벌'이 아닐까.




쉽게 잠이 들 것 같지 않은 어려운 밤.


그럼에도

신랑이 외상 하나 없이 무사함에 감사한 오늘,

잠시라도 글의 힘을 빌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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