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여긴 피할 수 없는 현실 앞.

by 미카



우리 부부는 고향인 지방의 한도시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살기엔 전문적인 일자리 수가 너무 부족하고 성장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 결혼과 동시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 지역에 신랑의 직장을 따라 뿌리를 내렸다.


신랑은 현재 5년째 양산에서 부산으로 왕복 2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출퇴근 중이다. 부산으로 직장을 얻은 지 2년째 되던 해부터 나는 직장 주변으로 이사를 가길 청했다.



"뭐하러 그래. 지금 아파트는 길도 안 건너고 초등학교 중학교 다 붙어 있고 삶의 질도 좋고, 향후 10년 이상은 우리 아이들 큰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조건에 사는데. 나 혼자 좀 불편하면 되지."


나는 이 말이 괜히 속상하고 싫었다. 물론, 나 보다 겪는 본인이 더 힘들고 아플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것 없이 낡아가기만 하는 그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 않은가. 잃어 본 사람이 아는 법. 겪은 사람으로서 훤히 보이는 미래가 아찔하고 답답할 뿐이다.


나는 고3 초 S전자에 취직하여 이른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9시간 혹은 12시간가량을 교대로 꼬박 서서 일하는 생산직 근무를 하다 보니 고작 1년 6개월 만에 목디스크란 진단을 받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퇴사를 해야 했다.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자 강제적으로 2년 동안 디스크 전문병원을 다니며 치료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 지옥 같던 시간엔 나 혼자만이 초라해 보이던 해맑은 대낮의 시간이 무척 싫었다. 그 당시 2년을 쉬며 벌리는 수익 하나 없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찌나 힘들고 괴롭던지. 건강을 팔아 번 돈으로 다시 건강을 찾고 나면 내게 남는 게 무엇이라고.. 머리로만 알던 그 사실들을 잃고 나서야 치가 떨리도록 체감했고 그제야 막심한 후회가 밀려왔다.


형태가 없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잃고 있을 땐 어마어마한 량이 소진되고 있음에도 우린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간당간당하게 남아 거의 다 소진되었을 즘에야 우린 깨닫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가치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우린 바로 눈앞에 보이고, 잡히는 형태들에만 집착을 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린 모두 어리석은 인간이며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 당시 나는 혼자임에도 그 집착을 쉽게 놓지 못했데 지금 내 신랑은 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이 느껴질게 뻔하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 것 같아 더욱 속상한 것.



"회사를 집 근처로 옮기던, 집을 회사 근처로 옮기던 둘 중 하나를 합시다."



근 3년을 설득했다. 신랑은 최근에서야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5년 전에야 젊었다지만 자신도 이제 40을 바라보니 한해 한해 체력이 틀리다며 드디어 두 손, 두 발을 드는 듯했다. 작년부터는 이명을 시작으로 목, 간, 심장 등등 전신 여기저기에 노란불이 들어왔으니 스스로 몸소 체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매일 2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야근을 밥먹 듯하는데 나이를 막론하고 몸이 성할 사람이 그래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신랑은 최근 차사고로 열흘쯤 입원을 했고 어제 드디어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병실 안에서 조차 마음 편히 쉬지 못하던 신랑을 기억한다. 직장에 밀리고 밀린 업무들이 줄지어 서 오매불망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걱정에, 무료하고 답답하여 마치 감옥 같다고 말하던 병원을 퇴원하면서도 전혀 기쁘지 않다고 말하던 신랑.



"와. 감옥 같은 병원을 탈출하는데도 그렇게 기쁘지가 않네. 회사도 또 다른 감옥이니까."



예민하고 세심한 나는 신랑의 건강 이상과 스트레스의 변화를 바로바로 감지하곤 한다. 신랑의 상태가 나빠질 때면 나는 괜스레 숨통이 조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럼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어 기분을 환기한다.


다행히 둘이 뜻이 같아 내가 재택근무를 택하고 이것저것 도전하여 가정 경제에 조금씩 보태고는 있지만, 한 땐 신랑의 월급 보다도 더 벌리던 일들도 코로나 이후 수입이 크게 줄은 상태다. 사업도, 부업도 들쭉날쭉 한 수입에다 변수가 너무 크다는 걸 느낄 땐, 잠시 쓴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을 갖는 다면 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수입을 보탤 수야 있겠지만 더 큰 꿈과 여유로운 삶을 계획하는 것이 어렵고, 사업이나 여러 도전들은 직장을 갖는 것보다야 꿈은 크게 가질 수 있지만 리스크를 안아야 하며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크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기로.. 어젯밤 신랑과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했다. 최소한 아이들이 내 손을 떠나 어느 정도 스스로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나는 가정에서 뭐든 열정적으로 도전해 볼 것이다. 물론 그 후에도 쭉..



나도, 신랑도 창살 없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그날까지.








어젠 좀 많이 바빴다. 돌아온 신랑에게 정성껏 밥을 차려주고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며, 입원 기간 동안 많이 길어 한껏 지저분 해진 머리카락도 잘라주고, 자기 전 전신 안마까지.. 오늘도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조용하고 묵묵하게 보조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신랑과 함께 어깨의 짐을 나눠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함께 마주 보며...



부모는 아프면 더 서러운 법.

그러니 우리 조금만 아프고 많이 행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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